하루 1회만 틀 수 있는 악기…유튜브엔 없는 '소리'의 미학 [비크닉]

이소진 2024. 7. 2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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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플레이스

「 “거기 가봤어?” 요즘 공간은 브랜드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장소를 넘어 브랜드를 설명하고, 태도와 세계관을 녹여내니까요. 온라인 홍수 시대에 직접 보고 듣고, 만지며 감각할 수 있는 공간은 좋은 마케팅 도구가 되기도 하죠. 비크닉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끄는 매력적인 공간을 탐색합니다. 화제의 공간을 만든 기획의 디테일을 들여다봅니다.

서울 서초구에 개관한 오디움 외부 전경 ©Audeum Audio Museum 사진: 이남선

지난 6월 5일, 서울 서초구 신원동에 개관한 오디오 전문 박물관 오디움(Audeum)이 음악 애호가 사이에서 화제입니다. 오디오를 전문으로 수집·연구·보존하는 박물관으로는 국내 최초이다보니, 예약 자체가 ‘피켓팅’이라는 말이 벌써부터 나옵니다. 특히 빈티지 오디오 마니아로 알려진 KCC 정몽진 회장이 설립하고, 세계적인 일본 건축가 쿠마 켄고가 건축을 맡았다고 알려지며 더욱 유명해졌죠.

박물관은 연면적 22만4246㎡, 지상 5층 지하 2층 규모로 건물 전체가 오직 수집품의 전시와 최적의 청음 경험을 위해서 설계되었습니다. 예약하면 무료로 투어할 수 있는데, 개관을 맞아 좋은 소리의 의미를 탐구하는 상설 전시 ‘정음(正音): 소리의 여정’을 진행 중입니다. ‘소리 체험’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현장을 비크닉이 다녀왔습니다.


자연을 닮은 음악의 숲


건축가 쿠마켄고는 2만 개의 알루미늄 파이프를 통해 숲속에서 비추는 빛의 변화를 구현했다. ©Audeum Audio Museum 사진: 이남선
‘소리를 가시화한 공간’.
오디움은 오직 소리를 위해 태어난 공간입니다. 먼저 알루미늄 파이프 2만 개를 빽빽하게 감싼 파사드가 눈에 띕니다. 불규칙적으로 배치된 파이프는 마치 대나무 숲처럼 자연스럽게 빛과 그림자를 만들어내죠. 여기엔 박물관을 하나의 숲으로 만들고자 한 건축가의 의도가 담겨 있어요.
“훌륭한 소리를 감상하기 위한 공간이기에 자연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쿠마 켄고는 설립 후기 인터뷰에서 오디움에 들어서는 과정을 ‘소리에 도달하는 경험’으로 디자인했다고 말합니다. 전면도로에 입구를 만들지 않고 외부 계단을 통해 들어가게 한 것도 그 이유죠. 정문에 위치한 로고는 그의 오랜 동료이자 디자인계 거장인 하라켄야가 작업했습니다. 스피커를 형상화한 심볼을 적용해 오디움의 시각적 정체성을 드러냈어요.
돌벽은 10cm 이상의 석재를 '혹두기'라는 기법을 통해 거칠게 마감했다. 계곡을 지나 음악의 숲으로 들어서는 경험을 디자인하기 위한 것. ©Audeum Audio Museum 사진: 이남선

내부에 들어서니 높은 층고의 로비가 웅장한 규모를 드러냅니다. 차가운 금속 소재가 기본이 되는 것 같지만 바닥과 벽은 자연 소재인 나무로 마감했어요. 또 건축물로 이어지는 시퀀스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어요. 입구에서 거친 돌, 알루미늄을 거쳐 부드럽고 따뜻한 나무를 만납니다. 특히 알래스카에서 공수한 편백나무는 관람객의 시각과 후각을 동시에 일깨웁니다. 나무 벽은 불규칙한 단차를 둔 ‘우드 드레이프’ 방식으로 마감해 소리가 부드럽게 울릴 수 있도록 고안했습니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소리 여행


1930~40년대 스피커 컬렉션을 살펴볼 수 있는 2전시실 ©Audeum Audio Museum 사진: 이남선

1877년 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한 이후 음향기기는 기술 혁신과 대중 시장의 확대로 발전해 왔습니다. 개관을 기념한 ‘정음(正音): 소리의 여정’은 150년 오디오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로, 전문 도슨트가 1회당 25명씩 90분간 프라이빗 투어를 진행해요. 순서는 시대의 역순입니다. 3층에서 1950~60년대 가정에서 사용한 스피커 컬렉션을 살펴보고 2층에서는 1920~30년대 빈티지 오디오 시스템을, 1층에서는 18~19세기에 발명한 뮤직박스를 둘러보며 청음하는 시간을 갖죠.
3층에서 해설사는 같은 노래를 가정용 오디오로 한번, 실제 음향과 가장 비슷한 퀄리티의 하이파이(High fidelity) 사운드 시스템으로 한번 들려줍니다. 좋은 오디오는 현장에 서 있는 듯 생생한 현장감은 물론 피아노 건반의 눌림 세기와 같은 작은 차이를 감지할 수 있게 하죠.
웨스턴 일렉트릭, 혼 16-A, 16-B 사운드 시스템, 1930 ©Audeum Audio Museum 사진: 이남선


2층에 내려와서는 영화 산업과 궤를 같이한 오디오의 역사를 살펴봅니다. 극장에 모인 수백, 수천 명의 관중에게 균일한 소리를 들려주기 위해 진공관 앰프부터 하이파이 시스템까지, 오디오는 점차 발전합니다. 1930년대 미국 영화산업이 황금기를 맞으면서 정점에 달하고요. 유명 오디오 제작사인 웨스턴 일렉트로닉이 넓은 장소에서 고음향을 전달할 수 있는 혼 스피커와 제한된 공간 안에 맞는 커브혼 스피커를 개발한 것도 이때입니다.
“스피커가 지금의 형태가 된 건 모두 영화관에 넣기 위해서였죠. 극장에서 눈에 띄지 않으려면 검은색이어야 했고, 제한적인 공간에 효율적으로 배치하기 위해 달팽이 모양의 곡선 형태를 띤 커브 혼 스피커가 탄생했습니다.”
전시장에서 그 음질을 느껴볼 수 있는데요. 각 스피커에 최적으로 어울리는 곡을 매칭해 둘만큼 세심하게 신경 쓴 점도 인상 깊습니다.

18~19세기 때 만들어진 뮤직박스 컬렉션을 살펴보고 청음할 수 있다. ©Audeum Audio Museum 사진: 이남선

1층에 마련한 엑시트갤러리에는 축음기 이전의 기계 악기들을 소개합니다. 17세기 유럽에서 시계의 작동 원리를 이용해 발명한 것으로 19세기에 이르러 독립적인 기능을 갖춘 ‘뮤직박스’로 발전하는데요. 우리나라에서 흔히 ‘오르골’이라고 불리는 악기죠. 회전 손잡이를 돌리자 흥겨운 노랫소리가 흘러나옵니다. 이렇게 음악은 오래전부터 사람들을 황홀한 즐거움의 세계로 안내해 왔을 겁니다.


유튜브에는 없다, 발품과 시간으로 완성한 수집 미학


'부드러운 건축'을 지향하는 쿠마켄고는 반투명 패브릭 소재를 활용해 빛과 소리를 은은하게 뿜어내는 환상적인 공간을 만들어냈다. ©Audeum Audio Museum 사진: 이남선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지하 2층 라운지입니다. 하얗고 부드러운 섬유로 만든 꽃 형태의 조형물이 신비로운 숲을 연상케 해요. 극적인 공간을 연출할 뿐 아니라 소리와 빛을 부드럽게 전하는 역할을 하죠. 가운데로는 벨기에에서 공수했다는 거대한 주크박스가 놓여 있습니다. 100년 전 제작된 악기로 워낙 오래되어 지금은 하루에 1회만 틀 수 있다고 하는데요. 맞은편으로는 설립자가 그동안 모으고 기증받은 10만장의 희귀 LP가 전시되어 있어 애호가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좋은 물건을 고르고 모은 수집 구경의 즐거움은 이뿐만 아닙니다. 벽면 가득 빈티지 카메라가 놓인 특별 전시실에서는 사진가 후카오 다이키의 사진전 ‘수집과 기록’이 열립니다.

오디움은 일주일에 3일, 목요일부터 토요일만 운영합니다. 대부분 장비를 구하기 어려운 빈티지 오디오인 관계로 정비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예약 자체가 어렵지만 백 년 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 체험은 그만큼 희소가치가 있습니다. 디지털의 무한반복과 정반대에 있는 ‘오리지널’의 매력, 소리만을 위한다는 공간의 본질이 새삼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이소진 기자 lee.soj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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