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중앙] 인턴기자가 뛴다 | 서울 돈의동 쪽방촌의 고단한 여름 나기
“선풍기 틀어봤자 더운 바람만…무더위쉼터, 쿨링 포그로 견더”
창(窓) 없는 한 평짜리 방에는 습한 열기 가득…“취사는 엄두도 못 내”
서울시, 에어컨·생필품 지원… 인공안개 분사 쿨링 포그 만족도 높아
7월 4일 오후 2시. 서울 지하철 종로3가역 3번 출구를 나서자 습기를 가득 머금은 무더위에 불쾌감이 치솟았다. 휴대전화 날씨 정보의 현재 기온은 섭씨 30도. 3번 출구에서 왼편 골목길로 꺾어 들어가자 허름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쪽방촌이 나타났다. 골목 입구에 한 노인이 더위에 지친 듯 멍하니 앉아 있었다. 골목은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에도 빠듯할 정도로 비좁았다. 장바구니를 들고 지나가는 노인, 담소를 나누는 서너 명의 무리에 골목은 이미 빼곡했다. 골목길 양쪽으로 활짝 열린 문들이 빠끔빠끔 나와 있었다. “다 더워서 나와 있는 거지 뭐. 안에선 버틸 수가 없어.” 더위를 식히러 밖으로 나온 주민 조한식(남·50대) 씨가 말했다.
비좁은 골목 안에 480명의 보금자리가
주민들은 낯선 사람의 방문을 경계하는 눈초리로 쳐다봤다. 기자에게 형사가 아니냐며 따져 묻기도 했다. 최근 외부인의 잦은 방문과 시비로 경찰이 다녀가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이날도 주민끼리 다퉈 경찰이 수차례 방문했다. 한 주민은 골목 구석에 앉아 콩국수를 배달시켜 먹고 있었다. “더운 날씨에 시원하시겠다”고 하자, “예”라며 멋쩍게 웃어보였다. 여름에 주민들이 길에 나와서 식사하는 경우는 흔하다고 한다. 방 안은 덥고 습해서 입맛이 안 돈다는 이유다. 너무 더워서 가스 불을 켜 음식을 해 먹을 엄두조차 나지 않을 정도라고 하니 이곳 주민들의 여름 나기가 얼마나 고단한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동네를 소개해주겠다는 중년 부부를 만났다. 둘 다 짧게 친 스포츠머리를 하고 반팔·반바지에 슬리퍼를 신은 모습이 눈에 띄었다. 부인 김수희(51) 씨의 첫 마디는 “더워 죽겠다”였다. 장마로 인해 이날은 구름에 해가 가려져 그나마 폭염은 피할 수 있었다. “오늘은 선선하지 않으냐”고 말을 건네자 남편 송대현(48) 씨는 “그래도 방 안에 있으면 쪄 죽는다”며 인상을 찌푸렸다.
얼마나 더운지 궁금했다. 부부가 사는 방은 복층 건물의 1층 가장 안쪽에 있었다. 1층에는 총 3개의 방, 공용 주방과 공용 세면시설이 있었다. 조명이 꺼진 탓에 들어가는 길에 신발이 발에 차이기도 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뜨거운 습기가 더욱 짙어졌다.
방은 한 평 남짓 돼 보였다. 누워서 온전히 다리를 뻗기도 어려워 보였다. 너무 비좁은 탓에 바닥에 깔린 이불은 다 펼쳐지지도 않아 끝단을 접어 놓았다. 이불 위에 놓인 접이식 탁자에는 담배꽁초가 든 재떨이와 먹다 남은 음료수 등이 놓여 있었다. 옷과 가방, 취사도구와 냉장고 등이 세 벽면을 가득 채워 방안의 여유 공간은 더욱 부족해 보였다.
습한 공기에 담배와 음식 냄새가 뒤섞여 숨 쉬는 것도 곤욕이었다. 창문이 없어 환기도 할 수 없다. 송씨는 자신이 기초생활수급자라며 “지금 형편으로는 창문 있는 방으로 옮기기도 어렵다”고 했다. 방안을 둘러본 지 3분이 채 되지도 않아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선풍기를 틀어도 되냐고 묻자 송씨는 “틀어봤자 더운 바람만 나온다”며 이만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에어컨 달기 어려운 건물 구조 많아
‘무더위쉼터’를 이용하지는 않느냐고 물었다. 무더위쉼터는 폭염취약계층이 쉴 수 있도록 서울시에서 조성한 공간이다. 서울시립 돈의동쪽방상담소(이하 상담소) 4층에도 무더위쉼터가 마련돼 있다. 하지만 김씨는 한쪽 발목에 감은 붕대를 보여주며 “몸이 불편해서 계단을 올라갈 수가 없다”고 했다. 뇌수막염을 앓고 있는 김씨는 발목이 나아도 계단을 이용하기 어렵다. 문제는 송씨도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것이다. 정확한 병명을 밝히지는 않았으나, 계단을 이용하기가 여의치 않다고 토로했다.
송씨 부부와 헤어진 뒤 돈의동 무더위쉼터를 찾아갔다. 에어컨 덕분에 내부 공기는 쾌적했고, 4개의 간이침대가 놓여 있었다. 더위를 피하기에는 충분한 환경이었다. 하지만 최근 나흘간 쉼터를 이용한 주민은 480여 명 중 2명에 불과했다. 공익요원은 “사람들이 거의 오지 않는다”고 했다. 쪽방촌 주민들이 무더위쉼터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김씨 주장과 달리, 쉼터 건물은 쪽방촌 골목 입구에 있고 엘리베이터도 설치돼 있어 이용하는 데 큰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바로 옆 골목에 있는 여성 전용 무더위쉼터 상황도 확인해봤다. 복층 전체가 쉼터인 이곳은 1층부터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어 계단 이용이 불편한 주민도 충분히 이용할 수 있었다. 1층은 취사도구·냉장고·식탁 등이 놓인 부엌이고, 2층에는 기다란 소파와 빈백(Bean Bag) 4개가 마련돼 있었다. 그럼에도 이곳 역시 지난 나흘간 여성 주민 이용률이 25%에 불과했다.
상담소 측은 정책에 확실히 효과가 있다고 했다. 최선관 실장은 “5년 전만 해도 쪽방촌에서 온열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 그런 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에어컨 지원을 받지 못한 송씨 부부의 불만을 전하자 “에어컨을 달기 어려운 건물 구조도 많다”며 “또 서울시가 아무리 지원해주려 해도 건물 주인이 허락하지 않으면 설치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무더위쉼터의 접근성도 부족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최 실장은 “거동이 불편한 쪽방 주민 20여 명은 특별 관리를 하고 있고, 상담소 건물에 엘리베이터도 운행하고 있다”며 “거동이 불편한 분들도 충분히 무더위쉼터를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이런 내용을 몰라서 이용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묻자 “마을 게시판을 통해 정책 내용과 이용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며 “안타깝다”고 했다.
상담소에서 나오는 길에 장바구니를 든 노인과 마주쳤다. 서울시에서 쪽방촌 주민들을 위해 마련한 일종의 슈퍼마켓인 ‘온기창고’를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여기서 콜라는 꼭 사 먹어. 시원하잖아.” 그는 매주 이곳을 방문해 생필품을 챙긴다고 했다. 온기창고 없이는 생필품을 구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의 장바구니 안에는 물, 콜라, 3분 카레, 즉석밥이 있었다.
온기창고는 생필품을 따로 보관할 수 없는 쪽방 환경을 고려해 서울시가 지난해 여름부터 운영을 시작했다. 주민은 지원받은 포인트로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후원물품을 구매할 수 있다. 대부분의 식료품은 실온 보관이 가능한 즉석식품이다. 벽 한쪽에는 선풍기, 내복, 샴푸 등 생필품도 있었다. 온기창고 근무자는 “주민들이 기호에 따라 재량껏 물품을 골라 가는 편인데, 다들 물은 꼭 챙겨 간다”고 말했다. 최 실장은 “본래 정해진 물건을 수동적으로 지원받는 형태에서, 주민들이 능동적으로 지원물품을 고를 수 있도록 바꿨다”고 전했다.
온기창고를 다녀간 주민은 이번 주에만 450명이 넘었다고 한다. 쪽방촌 거주자가 총 480여 명인 걸 감안하면 꽤 높은 이용률이다. 서울시 정책에 회의적인 송씨 부부도 매주 온기창고에서 물과 즉석밥을 구한다고 했다.
오후 5시쯤 되자 외출했던 주민들이 하나둘 돌아오기 시작했다. 장모(남·66) 씨는 목욕탕에 갔다 오는 길이라고 했다. 목욕탕에서 땀을 많이 흘렸는지 5분 남짓 대화하는 동안 기자가 건넨 이온 음료 한 병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쿨링 포그’ 아래서 먹는 생수 한 모금
장씨가 특히 만족해하는 건 ‘쿨링 포그’다. “요즘 살 만해진 건 이거 덕분이 제일 크다. 예전에는 밖에 있으면 정말 죽을 것 같았다.” 여러 정책에 불만을 표했던 송씨 부부도 쿨링 포그 하나만큼은 인정했을 만큼 쪽방촌 주민들 만족도가 아주 높다. 쿨링 포그는 인공안개를 분사해 주위 온도를 낮추는 장치다. 쪽방촌 골목길에는 머리 높이 언저리로 쿨링 포그를 만드는 특수 노즐이 골목 전체에 깔려 있다. 쿨링 포그는 간헐적으로 약 2분 동안 작동한다. 노즐에서 뿜어내는 안개는 골목의 온도를 3도가량 낮춰준다고 한다.
쿨링 포그에서 물방울이 흩뿌려지자 김씨는 아이처럼 안개를 만져보려고 손을 내밀어 흔들기도 했다. 쪽방촌을 누비느라 이내 녹초가 된 기자도 쿨링 포그 아래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쪽방촌 골목을 가득 메웠던 무더위가 물방울과 함께 씻기고 있었다.
- 글·사진 송선교 인턴기자 ddoong04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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