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와 토끼섬 사이, 지구를 살릴 '보물'이 자란다

최서현 2024. 7. 27.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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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양보호구역 탐사기④] 토끼섬 편

[최서현 기자]

  하도리 해안가에서 바라본 토끼섬
ⓒ 돌핀맨 (이정준)
 
제주도에 속한 작은 섬 중 토끼섬이 있다. 구좌읍 하도리 해안에서 동쪽으로 50m 해상에 위치한 작은 무인도, 토끼섬은 제주 동쪽의 올레 21코스를 걷다가 해안도로 지척에서 볼 수 있다. 물이 빠지면 걸어 들어갈 수 있는 토끼섬은 한국 유일의 문주란 자생지여서 6∼8월의 개화기에는 섬 전체가 하얗게 덮인다. 멀리서 보면 새하얀 토끼처럼 보인다고 하여 '토끼섬'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지난 5월 17일, 제주 해양보호구역 파란탐사대(이하 '탐사대')는 엄청난 양의 용암이 흘러 들어가 만든 토끼섬과 반대섬 주변의 암초가 어우러진 주변 일대를 방문했다. 토끼섬 주변해역의 생태적 중요성을 직접 확인하고 기록하기 위해서다.

토끼섬 주변 바다에는 잘피숲이 있다

제주 본섬과 토끼섬 사이에는 잘피숲이 있다. 바닷속 천연잘피가 군락을 이룬 규모는 7188㎡에 달한다. 2016년, 해양수산부는 잘피의 생태적 가치를 알리고 서식지를 보호하기 위해 토끼섬 주변해역을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해양보호생물인 천연잘피(거머리말) 서식지를 보호하고 잘피숲에 깃들어 사는 정착성·회유성 어류의 성육장에 대한 체계적인 보전·관리를 위해서다.
 
 거머리말 군락지를 포함한 토끼섬 주변해역 0.5933㎢는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 해양수산부 (2023)
   
잘피는 바다에 사는 생물 중 유일하게 뿌리로 영양을 흡수하고, 햇빛을 이용하여 꽃을 피우는 식물이다. 광합성을 하는 잘피는 대부분 수심이 얕은 바다에 산다. 전 세계에  66종이 서식하며 국내에는 9종이 분포한다. 그 중 제일 많이 존재하는 잘피종은 거머리말(Zostera marina)이며, 토끼섬 주변 해역에 서식하는 종도 거머리말에 속한다. 
   
 토끼섬 주변해역 해양보호구역에서 촬영한 잘피군락지
ⓒ 파란탐사대 김보은
 
전 세계적으로 잘피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엄청난 탄소 저장 능력 때문이다. 잘피는 광합성 작용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지구온난화를 막는데 도움을 주는 바닷속 식물이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잘피는 단위 면적(1m x 1m) 당 약 500g의 탄소를 흡수하고, 열대성 잘피는 약 1000g 가량의 탄소를 흡수한다고 알려져 있다.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는 잘피숲, 염습지(갯벌), 맹그로브(열대 해변, 습지의 나무 등의 염생식물) 3종을 블루카본(Blue Carbon)으로 인정하고 있다. 블루카본은 해양생태계가 흡수하는 탄소를 의미한다. 지속 가능한 탄소중립을 위해서 블루카본 확대 정책이 나날이 중요해지면서 세계적으로 잘피의 중요성이 점점 더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잘피는 탄소를 흡수하면 백 년을 저장한다
   
  토끼섬 인근 해역에서 최선경 연구원의 현장 강의가 진행되고 있다.
ⓒ 돌핀맨(이정준)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제주연구소 최선경 연구원은 잘피의 탄소흡수량만큼이나 탄소 저장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제주의 잘피를 꾸준히 모니터링하며 토끼섬 주변 해역에 서식하는 잘피를 10년 간 연구해 왔다.
"제주도 잘피는 2주 간격으로 새로운 잎이 하나씩 나와요. 죽은 잎은 떨어져서 분해가 되는데요. 탄소를 저장한 잎은 분해되더라도 탄소를 육상으로 배출하지 않습니다. 그대로 해저에 남아있어요. 잎이 떨어질 때마다 탄소를 계속 바다에 저장하는 겁니다. 그렇게 저장된  탄소가 다시 방출되기까지 100년 정도 걸린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엄청난 탄소 저장 능력이죠."
 
 토끼섬 천연잘피 서식지 근처 수생 식물과 물살이들
ⓒ 파란탐사대 김보은
 
잘피는 넓은 초지 형태로 자라기 때문에 바닷속 숲이라고도 불린다. 잘피숲에는 새우, 숭어, 돔, 고둥류 등 다양한 해양 생물이 어우러져서 살아간다. 잘피숲은 또한 물살이들에게 산란장, 피난처가 되어준다. 바다에 잠겨 자라는 잘피는 이와 같이 해양생물의 종 다양성을 높게 유지하게 도와주며, 수산자원을 풍부하게 만드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질소나 인 등 물질을 빠르게 흡수해서 적조현상, 부영양화 등으로 인한 재해로부터 연안의 환경을 정화시켜주는 보물 같은 존재다.

잘피가 살기 힘들 정도로 심각해진 제주 바다

전 세계적으로 잘피 서식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2012년 네이처지오사이언스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전 세계 잘피 군락지의 29%가 무분별한 개발행위와 인간으로 인한 해양오염으로 파괴되었다. 국내에서는 1970년대 이후 매립, 준설과 같은 개발로 인해 기존에 자생하던 잘피의 절반 이상의 군락이 훼손되었다. 가덕도와 부산 사이 바다가 대표적인 예로, 원래 가덕도와 부산 바다에 걸쳐 13.6㎢에 달하던 잘피 군락은 대규모 매립과 댐 건설, 항구 개발 등으로 인해 사라진 바 있다. 이와 같이 인간 활동으로 인해 전 세계 잘피 군락지는 매년 1.5%씩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네이처지오사이언스의 발표 결과다. 

제주의 천연잘피 자생지는 성산 시흥리, 구좌 종달리, 오조리 연안습지, 다려도, 추자도, 토끼섬 주변해역이다. 그런데 제주의 바다 환경이 변해가면서 천연잘피 생육 환경도 변해가고 있다. 최선경 연구원에 따르면 성산읍 오조리에서 서식하는 천연 잘피의 경우, 1미터까지 자라던 잎이 80센티미터로 짧아지며 가늘어지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이와 같은 천연잘피의 형태적인 변이는 기후위기로 인한 수온 상승과 연안의 오염, 개발의 결과다.

최선경 연구원은 또한 육지의 잘피에 비해 제주 잘피의 유전자 다양성이 떨어지는 것을 확인했다며, 이와 같이 유전자풀이 계속해서 떨어진다면 수온이 급격히 올라가거나 광합성을 할 수 없는 급격한 환경 변화를 견뎌내지 못할 것이라고 전했다. 잘피가 살아갈 수 없는 바다는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할 수 없다. 이는 지구 생태계와 직결되는 문제라는 점에서 반드시 주목해야 하는 문제다.
 
 토끼섬 주변 암반지대에 말라붙은 구멍갈파래
ⓒ 파란탐사대 최서현
 
탐사대는 토끼섬 주변해역의 천연잘피 서식 환경을 살펴보기 위해 해안가의 바위지대를 지나 토끼섬과 가장 가까운 곳까지 들어가 보았다. 울퉁불퉁한 바위를 조심스럽게 딛는 곳마다 말라붙은 구멍갈파래가 널려 있었고, 이들이 말라붙고 썩으면서 발생하는 악취가 진동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해안가에 구멍갈파래가 떠밀려와 쌓이는 현상은 제주에선 흔한 풍경이다. 구멍갈파래 급증과 같은 녹조류 대발생(green tide)은 연안에 생기는 파래류가 과도하게 성장하여 연안의 바위를 뒤덮거나 조류에 떠밀려 해안에 쌓이는 현상이다.
구멍갈파래는 영양염류 흡수율이 월등히 높아 다른 해조류를 결핍시키는 등 연안에 서식하는 저서 생물의 생존을 위협한다.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은 2020년부터 육상오염원으로 인한 구멍갈파래 증식 문제와 황폐해지는 연안 생태계의 심각성을 알려왔다. 육상에서 흘러나온 오폐수의 질소와 인 성분이 파래 생육을 촉진한다고 발표하기도 하였다.
 
 구멍갈파래가 토끼섬 주변 해안가를 뒤덮고 있는 모습
ⓒ 파란탐사대 최서현
 
제주환경운동연합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1912톤이었던 파래류 수거량은 2021년 5106톤, 2022년 5409톤 등으로 10여 년 동안 세 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처럼 제주 연안을 뒤덮은 파래 종류 중 하나인 구멍갈파래는 수면 위를 떠다니며 바닷속으로 투과되는 빛을 차단한다. 구멍갈파래의 이상 번식은 광합성을 통해 탄소를 흡수하고 물속에 산소를 공급하는 잘피의 생장에 위협이 되고 있다. 천연잘피 서식지 감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제주 바다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하는 이유다. 

안내판이 있어도 읽을 수 없는, 무용지물 해양보호구역 시설물

탐사대는 주민과 이용객들이 잘피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현장 조사를 진행했다. 잘피를 보호할 가치가 높다고 판단해 일정 구역을 정하고 체계적인 관리를 하기로 약속한 토끼섬 주변해역. 잘피 해양보호구역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알려져 있을까. 
 
 토끼섬 주변해역 해양보호구역 안내판. 부식되어 글자를 읽을 수 없다.
ⓒ 파란탐사대 최서현
 
토끼섬을 지척에 둔 해안가에 해양보호구역 안내판이 있었지만 석조물로 만들어진 시설물은 훼손되어 내용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토끼섬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관광객들에게 토끼섬 주변해역에 잘피가 서식하는 것을 알고 있는지,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인지 물어봤지만 대부분 잘 모른다고 했다. 토끼섬 인근의 상인들은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잘피 보호를 위해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사실은 거의 다 모른다는 반응을 보였다.

토끼섬과 육지 해안선의 거리는 300m지만, 썰물 때 간조 노출지와 거리는 약 50m에 불과하다. 썰물 때에는 누구나 걸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얕고 가까운 섬, 여름철이면 스노클링을 즐기는 이들이 종종 보인다고 했다. 해안과 토끼섬 사이에 해양보호생물 잘피가 서식하는 것을 알리고, 해안가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잘피를 훼손하지 않도록 안내하는 시설물이 필요해 보였다.
  
보호구역에 살면서 보호받지 못하는 잘피

토끼섬 해양보호구역 관리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탐사대는 하도리 어촌계를 방문했다. 한성홍 하도리 어촌계장은 토끼섬과 주변 해안가에 밀려오는 해양쓰레기와 구멍갈파래 문제가 심각하다고 토로했다. 비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자원봉사단과 마을이 함께 쓰레기 청소를 하고는 있지만 행정기관은 다 모아놓은 쓰레기를 수거하는 것 외에 다른 관리를 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토끼섬 주변 해안으로 밀려 올라온 해양쓰레기
ⓒ 파란탐사대 이루리
 
토끼섬 해양보호구역 관리를 담당하는 제주시에 문의해 보니, 토끼섬 해양보호구역 지정 이후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지속적으로 시행한 사업은 해양쓰레기 수거 뿐이라고 했다. 잘피 보호를 위해 주민과 이용객들의 잘피 인식을 증진하고, 잘피의 서식 환경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며 주민이 참여해서 보호구역을 제대로 운영하기 위한 사업은 진행된 적이 없었다. 제주시는 가장 시급한 과제인 해양쓰레기 수거사업을 우선하여 시행하고 있는 것이라며, 그 밖의 다른 계획은 중장기적으로 실행해 나갈 것이라고 답변했다.
 
▲ 토끼섬 주변해역 천연잘피 군락지 ⓒ 파란탐사대 김보은

"이대로 제주 연안 오염이 더 심각해지면 잘피 서식지는 무너질 겁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잘피가 자정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 시간을 주면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잘피가 장기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것, 우리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선경 잘피 연구원은 잘피 군락지가 펼쳐진 바다가 건강한 바다라고 강조했다. 토끼섬 주변해역의 천연잘피 서식지를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한 지 8년. 제주 바다 환경은 빠르게 변했고, 잘피의 생육 환경도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다. 지구의 탄소를 흡수하고 바다에 산소를 공급하는 천연 잘피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연구하는 것은 지구를 살리는 데 중요한 일이다. 바닷속 푸른 숲이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해양보호구역 관리를 위한 행정적 수준의 체계적인 관리가 절실하다. 

[참고문헌] 
박정임∙박재영∙손민호(해양생태기술연구소)(2012). 제주도와 추자도에 자생하는 잘피의 분포 현황. 환경생물학회지(환경생물) Vol. 30 No. 4 p. 339-348.     

제주환경운동연합(2024). 제주지역 어업활동 여건과 해양환경 변화에 대한 어민면접조사 보고서.
해양수산부(2023). 토끼섬 주변해역 해양보호구역(해양생태계) 관리계획 재수립. 

James W. Fourqurean; Carlos M. Duarte; Hilary Kennedy; Núria Marbà; Marianne Holmer; Miguel Angel Mateo; Eugenia T. Apostolaki; Gary A. Kendrick; Dorte Krause-Jensen; Karen J. McGlathery & Oscar Serrano(2012). Seagrass ecosystems as a globally significant carbon stock. Nature Geoscience volume 5, pages 505–509.

Park, Sang Rul; Kim, Jong-Hyeob; Kang, Chang-Keun; An, Soonmo; Chung, Ik Kyo; Kim, Jeong Ha; Lee, Kun-Seop(2009). Current status and ecological roles of Zostera marina after recovery from large-scale reclamation in the Nakdong River estuary, Korea. In Estuarine, Coastal and Shelf Science 2009 81(1):38-48.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와 제주투데이에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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