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이 타락한 시절... '노빤다방'을 아시나요? [커피로 맛보는 역사, 역사로 배우는 커피]
[이길상 기자]
"정치적 압력을 받는 저널리즘." 국경 없는 기자회(RSF)가 2024년 세계언론자유지수를 발표하며 평가한 세계언론의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언론자유 순위는 지난해에 47위로 하락한 데 이어 이번에는 62위로 추락했다. 좋음, 양호함, 문제있음, 나쁨, 매우나쁨 등 다섯 범주 중 세 번째 그룹에 들었다. 피부로 느끼는 것보다는 양호한 결과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언론의 자유가 정치 당국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 국경 없는 기자회가 우리나라 언론을 분석한 결과다.
우리나라 언론의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장면을 꼽자면 단연 1980년 11월 초헌법 기구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주도한 언론통폐합이다. 정의사회 구현을 위한 언론사 구조 개선이라는 명분 하에 신문사, 방송사, 통신사를 강제로 폐지하고, 통합하였다. 전두환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인과 언론사를 퇴출시키고, 살아남은 언론을 길들이기 위한 강압 정책이었다. 기자문화를 타락시킨 출발점이었으며, 모욕적 표현 '기레기'를 등장시킨 출발점이었다. '기레기'들은 기사를 스스로 쓰지 않고, 누군가 불러주는 대로 받아쓰면서도 부끄러움을 몰랐다.
언론통폐합 이듬해의 신문 기사를 보면 천편일률적인 제목과 내용이 눈에 들어온다. 체제에 순응한 기자들이 기사를 발굴해서 쓰는 것이 아니리 받아서 쓰기 시작한 것이다. 민감성이 큰 정치나 사회 분야 기사는 받아쓰기식 기사의 절정을 보여주었고, 커피 관련 기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언론통폐합 직후인 1981년에 신문에 보도된 커피 관련 기사는 신문사의 독자성이나 기자의 취재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획일적이었다. 열심히 받아서 썼다. 1981년에 열심히 받아쓴 커피 관련 기사 중 시대상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주제가 몇 가지 있다.
▲ 맥심 등 동서식품의 커피와 커피 관련 품목들 (자료사진) |
ⓒ 연합뉴스 |
첫째는 냉동건조공법으로 생산하는 국산 인스턴트커피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3월 7일 자 <조선일보>, <경향신문>, <매일경제>, 그리고 3월 9일 자 <동아일보>에 동일한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내용은 1980년 12월부터 시판을 시작한 국산 인스턴트커피 맥심이 소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어 외제 커피를 일축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대단하다는 것, 국내 최초, 그리고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냉동건조공법을 이용해 만든 커피 맥심은 가격도 질도 외제에 손색이 없다는 것, 따라서 외제 커피 뒷거래의 폐단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커피 소식을 통해 정의사회 구현에 앞장서고 있는 국민들의 자부심을 일깨우려는 애국적 내용이었다.
둘째는 커피가 췌장암의 원인이라는 불편한 뉴스였다. 3월 12일 자 <동아일보>와 <경향신문>, 그리고 3월 13일 자 <조선일보>에서 동일한 내용을 보도하였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공중보건전문의사 5명이 <뉴잉글랜드저널 오브 메디신>지에 발표한 연구보고서를 인용하여 "췌장암과 커피 소비에 강력한 관계가 있음이 명백"하며, 매일 마시는 커피의 양에 따라 암의 위험도 증대된다는 소식이었다. 췌장암은 미국에서 4번째로 가장 많은 악성 질환으로, 한해 약 2만 명의 미국인들이 이 병으로 사망한다는 내용도 보도하였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 모르몬교도와 제7일 안식일 교인들에게 췌장암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커피와 췌장암의 관계를 반증하는 자료로 제시되었다.
커피가 췌장암의 원인일 수 있다는 주장을 둘러싼 논쟁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 후속 보도로 이어졌다. <조선일보>는 3월 20일, <동아일보>는 3월 21일, <경향신문>은 3월 30일에 후속기사를 게재하여 미국에서는 커피와 췌장암의 관계에 대한 논쟁이 뜨겁게 벌어지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미국에서의 보도는 커피가 췌장암의 원인이라는 연구 결과에 대한 비판이 핵심이었다. 미국암학회와 미국커피협회가 이 연구 결과의 신뢰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는 것이 중심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의 보도는 논쟁이 뜨겁다는 것만을 강조할 뿐이었다.
이 연구를 주도한 브라이언 맥마흔 하버드대 교수가 하루 3~4잔씩 마시던 커피를 끊었다는 내용이 모든 언론에 빠짐없이 등장했다. 이 기사를 접한 많은 사람들이 커피 마시는 데 경계심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하였다. 국산차 애용운동을 벌이던 정부의 의도에 부응하는 모습이었다.
▲ 1981년 5월 20일 자 <경향신문> 기사 |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
셋째는, 일본에서 유행한다는 이른바 '노빤다방' 소식이었다. 노빤다방은 노팬티다방의 일본씩 표현이었다. 동경에서는 여종업원들이 팬티를 입지 않은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남자 손님들을 유혹하는 이른바 노빤다방이 성행함으로써, 일본 경찰이 단속에 나서고 있다는 소식을 <동아일보>와 <매일경제>에서 4월 24일에, <경향신문>에서는 5월 20일에 크게 보도하였다.
보도 내용은 동일하였고, 동일한 수준으로 외설적이었다. 이들 여종업원들은 다방 앞에 서 있다가 남자들이 지나가면 살짝 치마를 들어 '아찔한 구경'을 시켜주고는 다방으로 유혹해 들어가는데, 커피 한 잔 값은 무려 1500엔이었다. 긴자 거리 등 동경에만 당시 경찰 추산으로 노빤다방이 173개나 되었다고 한다. 당시 언론을 위축시키려던 전두환 정권이 확장시키려 했던 것 중 하나가 외설 문화였다. 이런 류의 자극적인 외신 보도는 적극 권장되는 분위기였고 언론은 이에 부응했다.
넷째는 커피 드립용 커피여과지 사용금지 소식이었다. 보건사회부는 1981년 10월13일 가정과 다방에서 사용하는 커피여과지에서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가 검출됐다고 밝히고, 이의 사용을 전면 금지하도록 지시했다. 고려대학교 김강진교수팀이 국산품 4점과 수입품 4점 등 8점의 여과지를 수거하여 국립보건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한 결과 커피 1잔에서 1백 마이크로그램의 폼알데하이드가 검출되었다는 소식은 모든 신문에 동일한 내용으로 빠짐 없이 보도되었다.
<경향신문>, <동아일보>, <매일경제>는 10월 13일 자에, 조선일보는 10월 14일 자에 일제히 보도하였다. 이 지시를 받은 전국의 모든 시와 도에서는 수입품이든 국산이든 모든 커피여과지의 사용을 일제히 금지시켰다. 드립식으로 내린 원두커피를 제공하던 업소들에게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나 다름없는 소식이었다.
종이여과지의 원조인 서독의 멜리타여과지를 수입 시판하고 있던 미주산업에서는 항의를 하고 나섰다. 일본 식품위생협회와 연세대학교 환경공해연구소의 실험 결과 멜리타 제품에서는 폼알데하이드 등 발암물질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제히 판매 금지를 시켜서 판매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12월 5일 보건사회부는 국립보건원의 검사 결과 안정성이 입증된 미주산업과 한국특수제지에서 수입 판매하는 여과지에 한해 사용을 허용한다고 발표하였다. 커피와 함께 발암물질 폼알데하이드가 유명해졌다.
문제는 여론이었다. 받아쓰기식 보도는 받아쓰기 문장을 읽어주는 사람들의 의도에 맞는 여론을 만들어내기 시작하였다. 국산커피에 대한 호평 기사와 드립용 여과지의 폼알데하이드 검출 뉴스가 대비되면서 국산 인스턴트커피의 판매는 약진했다. 커피가 췌장암의 원인이라는 보도는 커피에 대한 일시적인 기피와 국산차의 일시적인 유행을 가져왔다. 정부 주도로 시작된 국산차 애용 운동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였다. 일본식 노빤다방 뉴스는 티켓다방의 출현 등 마침 불기 시작한 다방의 퇴폐화를 부추기는 데 일조하였다.
9시를 알리는 소리와 함께 모든 뉴스는 "전두환대통령께서는..."으로 시작하던 땡전뉴스의 시대가 열렸고, 커피에 관한 대부분의 기사는 새로 등장한 '기레기'들이 누군가 불러주는 글을 받아쓰기 시작하면서 점차 획일화, 저급화되었다. 커피에 관한 신문 기사 수준이 당시 유행하던 인스턴트커피 수준보다 낮았다.
(<커피가 묻고 역사가 답하다>의 저자, 교육학교수)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동아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 매일경제 1981년 기사 일체. 이길상(2021). 커피세계사+한국가배사. 푸른역사. 이길상(2023). 커피가 묻고 역사가 답하다. 역사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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