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조용필 첫 만남, 말없이 소주 십여병…2차서 부른 이 노래
[특별기고] 내가 만난 고요한 거인 김민기
순간, 대형강의동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깨고 중간 열에 앉아 있던 장발의 남학생이 수줍게 손을 들면서 말했다.
“혹시, 드러머 김민기 말씀인가요?”
이 친구는 당시 꽤 많은 마니아들을 거느리고 있었던 헤비 메탈 밴드 시나위의 드러머 김민기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나는 속으로 너무 놀랐다. 이들에게는 ‘아침이슬’이라는 고리를 말해주지 않으면 김민기가 아예 누군지도 모르는구나, 이제 그런 세상이 되고 말았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와 나의 세대에게는 너무나 당연했던 이름이 이 새로운 세대에게는 낯설기 그지없는 이름이 되고 만 것이다. 그것도 90년대 한국 대중문화의 한복판이라는 홍대 거리에서 말이다.
김민기는 내내 어둠 속에 서 있었다. 그가 활동을 시작한 제3공화국 시절에도, 그가 탄압받고 활동 자체를 금지당한 제4공화국 시대에도, 여전히 당국의 요시찰 대상으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한 제5공화국 시대에도, 그리고 마침내 시작된 제6공화국 시대에도 여전히.
음악평론가로 살면서 좋았던 딱 한 가지가 있다면 내가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뮤지션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점이다. 물론 차라리 아니 만났으면 좋았던 경우도 있지만, LP 재킷에서나 만났던 우상을 실제로 대면했을 때의 감정은 한 줄로 설명하기 어려운 벅찬 감동이다. 그 중에서 나의 10대와 20대를 가로지르며 그저 애호하는 대상이 아닌 존경스러운 인물을 만나는 것은 숨막히는 경험이다.
김민기와의 첫 조우는 음악평론가로서가 아니라 ‘노래를 찾는 사람들’ 공연 연출자로서 이루어졌다. ‘끝나지 않는 노래’라는 제목의, 갑오농민전쟁 때 산물인 ‘새야 새야’부터 80년대까지 한국 근대사의 노래들을 서사적으로 재구성한 공연이었는데, 이 공연의 초연이 1992년 당시 막 문을 연 대학로 소극장 학전 무대에서 펼쳐지게 된 것이다.
두어달 간의 장기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그러나 극장장인 김민기와는 대면할 기회가 없었고 마지막 공연날 거나한 뒤풀이 자리에서 처음으로 내 어린 날의 영웅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저 꾸벅 인사만 건넸을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수줍고 겸손했으며 한참 아래 후배뻘인 우리에게도 시종일관 말을 아꼈다. 그에게는 어떤 허식도, 이미 ‘역사적’이라는 형용어가 부여된 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강력한 후광 효과 같은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고요한 거인이었다.
그리고 몇 년 뒤 나는 그를 공식적으로 인터뷰할 수 있었다. 그때나 그 이후에나 언제나 ‘뒷것’을 자처하던 그는 인터뷰를 거의 거절했는데, 나에게 그런 귀중한 기회를 준 것에 대해 지금도 감사한 마음이다. 초저녁부터 시작된 인터뷰는 술과 함께 자정이 넘도록 이어졌다. 이 인터뷰를 기점으로 나는 그냥 그와 소주를 대작할 수 있는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엄청난 애주가, 만취해도 흔들림 없어
술을 마실 때야말로 그의 진면목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다. 주량이 엄청난 애주가임에도 소리가 높아지거나 흥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베이스 바리톤인 묵직한 그의 음성이 조곤조곤 펼쳐내는 이야기들은 그대로 역사적 야화이거나 미학 에세이였다. (그 수많은 이야기들을 기록해 두지 못한 내가 야속할 뿐이다.) 가장 인상적인 건 아무리 만취해도 자신에 대한 나르시시즘이 없다는 것이다. 철저하게 객관적 거리를 두고 자신을 통제한다. 딱 한번 그 선을 넘은 거라면 어느날 대학로 뒷골목의 선술집에서 이렇게 호기를 부렸을 때였다. “야 있잖냐? 그래도 내 노래는 내가 제일 잘 불러.”
삼십년 넘은 음악평론가 생활 동안 딱 하나의 기억만을 챙길 수 있다면 나는 주저없이 1997년 겨울날의 그 위대한 이벤트(!)를 꼽을 것이다. 아이돌 문화의 열풍 속에서 잠시 침묵했던 가왕 조용필이 16집으로 화려하게 왕좌로 컴백했을 때, 나는 김민기와 술을 마시다가 문득 물었다. 조용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냐고. (조용필과 김민기는 1950년생과 1951년생으로 거의 동년배다.) 그는 별로 생각지도 않고 바로 응답했다.
“너 내가 조용필은 별로 안 좋아한다고 말할 줄 알았지? 아니야. 지하 형(시인 김지하)이 서대문 구치소에 있을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조용필의 노래를 듣고 감동했다고 했어. 나도 그래.”
사실 난 적잖이 놀랐다. 음지의 영웅이 지상의 가왕을 높이 평가하다니. 그리고 며칠 뒤 나는 방배동에서 조용필과 술을 마시다가 또 불쑥 물었다.
“형님, 형님은 김민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가왕의 응답도 바로 튀어나왔다.
“김민기? 난 존경해.”
가왕은 횡설수설하지 않고 언제나 단문으로 정확히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 뭐 좋아할 순 있는데 또래나 다름없는 사람을 존경한다니.
“존...경이요? 왜요?”
“난 그 길이 어떤 길이든 일관되게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은 존경해야 된다고 생각해.”
내가 생각지도 못한 응답이 가왕의 입에서 나왔다. 이 두 사람은 그 때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순간도 스치지도 못한 사이다. 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두 분의 만남을 제안했고 가왕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졸지에 두 정상의 회담(?)을 주선하게 된 나는 생각을 많이 해야 했다. 만나는 장소는 어디서? 술값은 누가 내지? 등등. 그래도 한 살 위인 가왕의 동네에서 보기로 하고 술값은 주최자가 내는 것으로 합의.
약속날 나는 미리 대학로로 가서 김민기 형을 모시고 택시를 탔다. 반포대교를 넘어 방배동까지 가는 동안 김민기는 거의 말이 없었고 덩달아 나도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불쑥 느닷없는 말,
“헌아, 오늘 술값은 내가 내는 거다.”
하마터면 실소를 흘릴 뻔했다.
“술값을 형이 왜 내요? 그냥 가만 계세요.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그리고 동네 횟집에서 시작된 술자리. 과묵한 두 거인은 안부 인사 말고는 묵묵히 소주잔을 비운다. 나까지 세 사람이 마신 술이 스무 병이 넘도록, 무슨 고승들의 선문답도 아닌데 조용한 방안의 공기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가왕의 노래 미동도 없이 눈 감고 들어
그렇게 우린 겨울 한밤의 골목으로 나왔는데 그 이후의 계획까진 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이대로 헤어질까 하는데 조용필 형이 가게의 불빛을 발견하고는 저기서 2차를 하잔다. 그렇게 들어간 동네의 후미진 카페는 손님이 하나도 없었고, 가왕을 알아본 여주인은 방으로 우리를 안내하고 양주를 한 병 내왔다. 그리고 첫 잔을 건배한 뒤 자리에서 일어난 가왕은 방구석에 놓여 있던 노래방 기기 앞으로 가더니 번호를 꾹꾹 누른다. 가왕은 술자리에서도 자신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라 당연히 자신의 노래를 부를 줄 알았다. 그런데 흘러나온 전주는 놀랍게도 ‘아침이슬’!
나는 취기가 오를대로 오른 상태에서 그저 멍하게 노래방 반주에 맞추어 가왕이 부르는 ‘아침이슬’을 들었다. 그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환영과 같은 상황이다. 김민기는 미동도 없이 그저 눈을 감고 가만히 있었다.
물론 김민기의 답가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나중에 이 얘기를 듣고 당시 MBC 피디였던 주철환 형이 왜 자기를 그 역사적 현장에 부르지 않았냐고 질책했지만, 나는 그 전무후무할 영광을 남과 나눌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당연히!
그리고 시간은 흘렀다. ‘아침이슬’이 세상에 나온 지 오십년이 되던 2021년, 나와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 그리고 박학기는 헌정음반을 만들기로 마음을 모았다. 그리고 김민기의 반응 또한 예상한 대로였다.
“뭘 또 그런 쓸 데 없는 일을 벌이냐? 그런 짓 좀 하지 마라.”
이제 익숙해져서 그냥 그러려니 한다.
“아 이건 형과는 상관없는 일이에요. 우린 ‘아침이슬’이라는 노래에 헌정하는 것이니깐. 그러니까 그냥 가만히 계세요.”
이렇게 빨리 가실 줄 그땐 몰랐다. 그래서 살아계셨을 때 그 앨범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을 정말 다행으로 생각한다.
형님, 감사했습니다. 이젠 편히 쉬세요. 그리고 하늘에서는 가끔 노래도 좀 부르시고 그러세요.
강헌 음악평론가·소설가·명리학자. 1962년 부산생. 서울대학 국문학과와 같은 대학 음악대학원 졸. 저서로 『전복과 반전의 순간』 『명리』 등이 있다.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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