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인도 편하게 주문하도록” 수어 배운 카페 사장님 [아살세]
영상 본 청년, 김씨 카페 찾아와
꽃과 현금 건네며 “좋은 곳에 써 달라”
김씨, 자신의 돈 보태 기부하기로
손님과 수어로 대화하는 카페 사장님의 영상을 보고 “좋은 곳에 써달라”며 꽃 한 송이와 현금을 들고 온 청년, 그리고 그 현금에 자신의 돈을 보태 기부한 사장님의 사연이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서울 종로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30대 김혜진씨입니다. 김씨는 지난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시작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수어와 관련된 영상을 올리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김씨의 계정에 공개된 영상은 8개에 불과하지만, 김씨와 청각장애를 가진 손님들의 ‘손의 대화’는 많은 팔로어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지난 24일 김씨의 카페에서 그를 만나 수어 영상을 만들게 된 계기와 소감을 들어봤습니다.
단발머리와 시원한 미소가 인상적이었던 김씨는 우연한 계기로 수어에 관심을 두게 됐다고 합니다. 이후 초급 수어 수업에 등록해 기본적인 손짓을 배웠다는 김씨. 그는 수업을 듣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카페에서 손님과 수어로 대화를 나누게 됐고 “곧 장애인의 날이 다가오니 대화 모습을 영상으로 올리면 어떨까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김씨의 게시물 중 가장 화제가 된 것은 꽃 한 송이와 현금을 들고 찾아온 한 청년에 대한 영상입니다. 비장애인인 청년은 김씨의 영상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아 카페에 직접 방문했다고 합니다. 그는 김씨에게 꽃을 선물하며 현금을 노년층 고객이나 아이들의 음료값으로 써달라고 했습니다. 김씨는 “현금은 못 받는다”며 여러 차례 거절했지만, 청년의 단호한 모습에서 선한 의지를 느꼈다고 합니다. 결국 돈을 받아 든 그는 고민 끝에 그 액수만큼 자신의 돈을 보태 기부하기로 결정했죠. 기부에 앞서 청년의 동의도 구했습니다.
인터뷰 말미에 김씨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수어는 하나의 언어이고, 자신이 그 언어를 배우고 있는 중이라면 그들의 언어에 맞춰 주문을 받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요. 그렇게 말하며 미소 짓는 김씨의 모습에서 그의 따스한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수어를 배우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어느 날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젊은 대학생 두 명이 수어로 대화하는 모습을 봤다. 그때 수어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서울농아인협회에서 초급 수어 수업을 등록해 들었다.”
수어 영상을 올리게 된 이유는
“수업을 듣다 보니 장애인의 날을 맞아 협회에서 여러 행사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뒤로 카페에서 농인 손님과 수어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장애인의 날을 맞아 당시 모습을 담은 영상을 만들어 올리면 어떨까 싶었다.”
수어 영상을 보고 찾아온 청각장애인 고객도 있는지
“있다. 카페를 운영하다보니 출입문을 자주 보게 되는데 카페에 들어오실 때 ‘안녕하세요’라고 수어로 인사하며 들어오는 분들을 보면 ‘농인이시구나’라고 생각한다. 영상을 보고 멀리서도 찾아와주신다.”
청각장애인들이 카페에서 주문할 때 어떤 어려움이 있을까.
“키오스크가 있는 카페에서는 큰 불편함이 없지만, 키오스크가 없는 곳이라면 주문을 하기 위해 종이나 볼펜 등이 필요하다. 젊은 청각장애인들은 휴대전화 기능 중 메모장을 활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수어로 주문할 수 있으니까 편안해하시는 것 같다. 물론 내 수어 실력이 기초 수준이라서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청각장애인이라며 양해를 구하지 않고 비장애인처럼 자연스럽게 주문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
화제가 됐던 영상의 청년이 왔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나
“당시 출입문 밖으로 그분이 꽃을 들고 카페를 향해 걸어오는 걸 먼저 봤다. 여기가 데이트 장소로 유명한 거리니까 여자친구를 만나려는 줄 알았다. 1시간 정도 있다 가셨는데 나가시기 전 꽃을 내미셔서 굉장히 놀랐다. 그분께서 “수어 영상을 보고 왔어요”라고 말씀하셔서 꽃을 받으려 했는데, 현금이 든 봉투를 주시길래 처음에는 거절했다. 그런데 그분이 굉장히 차분한 말투로 “노인 분들이나 아이들이 오면 이 돈으로 써주세요”라는 말을 반복하시더라. 결국 돈을 받은 뒤에 ‘이 돈을 어떻게 써야 하나’라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청년이 준 돈에 본인 돈을 더해 기부했다. 기부를 결정하게 된 이유가 있나
“지난해부터 어린이날마다 서울대 어린이병원에 기부하고 있는데 기분이 좋더라. 또 그분께서는 아이들과 어르신들을 위해 써달라는 건 하나의 예시였다며 지혜롭게 써달라고 말씀하셨다. 수어 영상을 보고 오셨다고 하기에 그분의 의사를 물어본 뒤 농학교에 기부하게 됐다. 그분의 따뜻한 마음에 저의 마음을 더해서 좋은 일에 함께 참여하고 싶었다.”
영상 조회수가 480만회를 넘을 정도로 화제가 됐는데
“첫 영상 조회수가 1만 정도 나왔을 때도 놀랐는데 지금은 얼떨떨한 걸 넘어서 현실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다. 이렇게까지 화제가 될 줄은 전혀 생각도 못 했다. 많은 관심에 감사하다.”
‘수어로 주문 가능한 카페가 되길 바란다’는 댓글도 달렸다
“애초 의도를 가지고 올린 영상이 아니라서 거창한 목표는 없다. 다만 카페에 찾아온 한 청각장애인 고객분이 ‘수어로 주문해 본 게 처음’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래도 이런 카페가 서울에 몇 곳 정도는 있을 줄 알았는데 깜짝 놀랐다. 수어를 더 열심히 배워서 능수능란하게 소통하는 게 목표 아닌 목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꽃을 준 남성분께서는 수어로 소통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며, 이 영상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저도 같은 마음이다. 제 영상을 보실 분들, 이 기사를 보실 분들 모두 마음이 따뜻해지면 좋겠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김민경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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