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트뤼도 이어 한동훈과도 했다…尹의 ‘러브샷 정치’
두 사람이 잔을 든 손을 엇갈리게 낀 채 술을 마시는 행동을 뜻하는 ‘러브샷(love shot)’은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이 발간한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 등재됐을 정도로 회식 문화가 널리 퍼진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술자리 친교 행동이다. MZ세대에겐 꼰대스러움의 하나일지 모르나 40대 이상 직장인 중 러브샷을 안 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 러브샷이 국민의힘 전당대회 다음날인 지난 24일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신임 대표가 참석한 ‘당정 대화합 만찬’에도 등장해 화제가 됐다. 4·10 총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던 한 대표의 갈등은 크게 불거졌고, 전당대회 과정에서도 김건희 여사 ‘문자 읽씹(읽고 무시)’ 논란이 쟁점으로 떠올랐을 정도로 두 사람의 불편한 관계는 여권 전체의 뇌관으로 꼽혔다.
그런 상황에서 만난 두 사람은 여권의 우려가 무색할 정도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특히, 대표 후보였던 윤상현 의원의 제안으로 각각 맥주와 제로 콜라를 채운 잔을 든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러브샷을 하는 모습은 이날 행사의 화룡점정이었다. 행사 참석자들은 입을 모아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고 전했다.
이처럼 러브샷은 윤 대통령의 친교 활동에 자주 쓰이곤 한다. 특히, 외국 정상과 만날 때도 러브샷을 활용한 친교 외교를 해오고 있다. 2019년 문재인 정부가 파기 선언했던 지소미아(GSOMIA,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를 복원하고, 2011년 이명박 정부 때 중단된 한·일 셔틀 외교를 재개한 지난해 3월 일본 방문 때가 대표적이다.
당시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정상회담 뒤 도쿄 긴자에서 2차에 걸친 친교 만찬을 했는데, 2차 장소인 128년 역사의 경양식집 ‘렌가테이(煉瓦亭)’에서 두 사람은 러브샷을 했다. ‘한·일 관계의 융합과 화합의 취지’로 일본 에비스 생맥주와 한국 진로 참이슬을 섞어 만든 ‘소맥’을 나눠 마셨다고 한다.
2022년 12월과 지난해 5월 각각 방한한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국가주석과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의 정상회담 뒤 만찬에서도 러브샷이 등장했다. 각각 막걸리와 샴페인으로 주종은 달랐어도 양국 정상이 러브샷을 하는 모습은 이채로운 풍경이었다.
물론 정치권에서 러브샷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열쇠가 되지는 못한다. 러브샷이 화제가 된다는 건 그만큼 두 사람 사이가 어색하거나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는 걸 뜻하기 때문이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는 극적으로 후보 단일화 방식에 합의한 뒤 소주 러브샷을 했지만 결국 대선 막판 두 사람의 단일화는 어그러졌다. 2017년 9월 바른정당의 진로를 놓고 당시 김무성·유승민 의원이 갈등할 때도 러브샷에 이어 입맞춤까지 했지만 결국 바른정당의 분열을 막지는 못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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