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개막식은 없었다, 공식 깨고 '혁명' 쓴 파리올림픽

박장식 2024. 7. 27.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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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파리올림픽] '스타디움 개막식'서 벗어나 30만 파리 시민과 함께... 볼거리도 다양

[박장식 기자]

▲ 화려한 레이저쇼 2024 파리올림픽 개막일인 26일 개회식이 열린 프랑스 파리 트로카데로 광장 행사장과 에펠탑 주위에서 레이져쇼가 진행되고 있다.
ⓒ 연합뉴스
'완전히 개방된 대회'에 어느 때보다도 걸맞은 시작이었다. 센강에서 트로카데로 광장까지, 경기장의 장벽을 넘어 파리 시내 전역이 마치 한 편의 오페라 무대가 된 것과 같았다. 2024 파리 올림픽 개회식은 공간의 장벽을 넘어선 환상의 무대로 기억될 것 같다.

지금까지 올림픽 개회식은 개막식에 앞선 사전 공연과 올림픽기(오륜기) 입장, 그리고 두 시간 남짓 걸리는 선수단 입장, 그리고 성화 봉송과 점화를 주제로 한 공연이 펼쳐지는 전형적인 틀 안에 있었다. 하지만 파리는 순서의 장벽도 깼다. 성화 입장부터 정형화된 공식을 비틀었다. 선수단 입장과 함께 팝스타 레이디 가가가 공연하는가 하면, 메탈 밴드와 소프라노가 함께 프랑스 혁명의 노래를 부르는 등 다양성이 공존하는 프랑스의 모습을 보여줬다.

파리 시내 전체가 개막식의 무대

한국 시간으로 27일 오전 2시부터 펼쳐진 개회식의 첫 번째 등장인물은 배우 자멜 드부즈였다. 자멜 드부즈는 성화를 들고 프랑스의 국립경기장, '스타 드 프랑스'에 입장했다. 의기양양하게 경기장에 들어섰지만, 그는 관중이 한 명도 없음을 보고 당황한 눈치. 이어 '파리 올림픽의 개막식이 센 강에서 열린다'는 뉴스가 나온다.

이후 갑자기 프랑스의 '축구 전설' 지네딘 지단이 나타나 자멜 드부즈로부터 성화를 뺏앗은 뒤 성화를 들고 파리 시내를 질주했다. 지단은 지하철까지 타고 센 강변으로 향할 심산으로 보였지만, 지하철이 제대로 출발하지 못하고 정전되자 자신을 따라오던 세 명의 아이들에게 성화봉을 전달했다.

세 아이들은 성화봉을 받은 뒤 지하 통로를 지나 하수구로 향했다. 그러자 '어쌔신 크리드'를 닮은 괴도가 나타나 아이들에게 배를 타라고 권했다. 배에 올라선 아이들은 눈 깜짝할 새 나폴레옹의 아우스터리츠 전투 승리를 기념하여 지어진 아우스터리츠 다리 사이로 센 강으로 진입했다.
 
▲ 지단, 파리올림픽 성화주자로 26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개회식에서 프랑스 축구 영웅 지네딘 지단이 성화주자로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성화 도착과 함께 근대 올림픽의 발상지, '그리스'의 선수들이 입장했다. 그 뒤로 난민 선수단의 신디 은감바(복싱)와 야흐야 알고타니(태권도)가 올림픽기를 들고 입장했다. 탈레반 정권을 배제한 망명 선수단으로 구성된 아프가니스탄도 입장했다.

센 강을 통해 6km나 되는 긴 거리를 선수들이 배로 따라오는 만큼, 다른 개회식과는 차별화된 무대를 꾸릴 수 있었다. 선수 입장 도중 센 강변에 나타난 팝 스타 레이디 가가는 지지 장메르의 노래인 'Mon truc en plumes'(깃털로 만든 나의 것)에 퍼포먼스를 곁들여 오마주한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선수단 입장 도중 센 강변 베쉰 부두에서 '캉캉'으로 알려진 '지옥의 갤럽'을 추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19세기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사교댄스인 '캉캉'에 맞추어 춤을 추는 이들은 선수단의 입장을 환영했다.

노트르담 성당의 화재를 복구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통해 파리 시민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보내는 장면도 이어졌다. 파리 소방대, 국립과 지역 음악원의 단원 등이 파리 시내 곳곳에서 연주를 하고, 춤을 추는 모습을 보여주며 올림픽 준비 과정에서 불편을 감수한, 그리고 지금의 파리를 만든 시민들에게 감사를 건넸다. 

프랑스 혁명을 오마주한 장면도 이어졌다. 프랑스의 메탈 밴드 고지라가 프랑스 혁명을 상징하는 장소이자 왕궁에서 감옥으로 변한 곳, 콩 시에르 주리에 올라섰다. 강렬한 메탈 연주와 함께한 것은 소프라노 마리나 비오티. 고지라와 마리나 비오티는 프랑스 혁명의 상징곡인 'Ca ira'를 협연했다.

48번째 대한민국·205번째 프랑스... '철의 여인' 올림픽기 운반했다

공연에 이어 선수 입장이 다시 이어졌다. 대한민국은 세계 선수단 가운데 48번째로 입장했다. 김서영과 우상혁이 태극기를 든 채 코스타리카·쿡 제도 등 4개 국가와 같은 배를 타고 행진한 대한민국 선수단은 밝은 얼굴로 개막을 축하했다. 

선수 입장과 더불어 스포츠와 예술을 조합한 공연도 함께 이어졌다. 프랑스의 정원을 형상화한 구조물 위에서 선수들이 자전거와 스케이트보드를 타기도 했고, 브레이크 댄서이자 오페라 테너인 야쿱 조제프 올린스키는 브레이크 댄스와 바로크가 조합된 공연을 펼쳤다. 

개최국 프랑스는 차기 올림픽 개최국인 미국에 이어 205번째, 마지막 순서로 입장했다. 프랑스가 드빌리 다리 위를 지나는 순간, 다리가 프랑스 삼색기(적·청·백) 색으로 변하며 자국 선수들의 입장을 축하했다.

유럽연합을 상징하는 방식은 '유로 댄스'였다. 프랑스의 입장 이후 유럽연합 회원국의 시민들이 한데 모여 1980년대 유행한 전자음악인 유로 댄스에 맞추어 춤을 추면서 하나 된 유럽을 보여줬다 '올림픽을 상징하는 노래'가 된 존 레논의 'Imagine'은 이번 올림픽에도 연대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등장했다.

올림픽기 입장도 '파리'다웠다. 올림픽기를 망토처럼 두른 채, 금속 말을 탄 철의 여인이 나타나 센 강 위를 질주했다. 입장한 모든 국가의 국기를 호위하듯 두르고 드로카데로 광장에 들어선 철의 여인은 올림픽기를 받아 게양했다.

이어 토니 에스탕게 대회 조직위원장은 환영사를 통해 "앞으로 16일 동안 선수들은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될 것"이라며 선수들을 반겼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도 "피에르 드 쿠베르탱이 근대 올림픽을 창조한, 빛의 도시 파리의 따뜻한 환영에 감사하다"라고 인사했다.

열기구 위에 타오른 성화... 셀린 디옹의 '사랑의 찬가' 퍼졌다
 
▲ 2024 파리올림픽 개막 2024 파리 올림픽 개회식이 열린 26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이에나 다리 인근에서 관중들이 각국 선수단의 센강 보트 행진을 관람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대회 개회선언 이후 개회식의 하이라이트, 성화 점화의 순서가 이어졌다. 지네딘 지단이 다시 무대로 나타나 앞서 파리 시내를 누볐던 괴도에게 성화봉을 넘겨받았다. 지네딘 지단은 프랑스 오픈의 최다 우승자, 테니스의 라파엘 나달에게 성화를 전달했고, 나달은 센 강으로 향했다.

그러자 오륜 마크가 설치된 파리의 상징, 에펠탑에서 강렬한 미디어아트와 레이저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강렬한 레이저 쇼는 파리 전체를 수놓았던 개막식이 드디어 끝을 향해 달려간다는 신호와도 같았다. 

센 강에서 다시 배에 오른 나달. 배 위에서는 각 종목의 '전설'이 그와 함께했다. 여자 테니스의 세레나 윌리엄스, 육상의 칼 루이스, 그리고 체조의 나디아 코마네치가 배를 타고 루브르 박물관으로 향했다. 이제 성화는 역시 프랑스의 테니스 전설인 아멜리 모레스모, 미국프로농구 명예의 전당에 오른 토니 파커에게 이어졌다.

지금까지의 성화 봉송과는 다른 양상이었다. 성화를 봉송한 사람은 다음 주자에게 성화를 이어주면 대열에서 빠지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프랑스의 핸드볼 레전드인 미카엘 기구, 파리 패럴림픽의 기수단으로 나서는 난테닌 케이타와 알렉시 앙캥캉에 이어지기까지, 모두가 함께 달리며 튀를리 정원에 들어섰다.

튀를리 정원에 자리한 것은 대형 열기구. 올림픽 육상 3관왕 마리 조제 페렉과 역시 올림픽 유도 3관왕인 테디 리네르가 열기구에 불을 붙였다. 열기구가 거대한 성화대였던 셈. 그리고 성화를 실은 열기구가 파리의 밤하늘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도시 안의 모두가 볼 수 있는 형태로 성화가 피어오른, 파리다웠던 성화 점화였다.

파리 시민 모두가 볼 수 있는 성화 점화와 함께 마지막 공연도 이어졌다. 모두가 예상했던, 하지만 모두가 반겼던 불세출의 팝스타 셀린 디옹이 에펠탑 위에서 나타나 '사랑의 찬가'를 불렀다. 전신근육강직인간증후군으로 활동을 중단했던 셀린 디옹은 이날 '사랑의 찬가'를 열창하며 감동의 무대를 선사했다.

올림픽 틀 깬 개막식... 대한민국 국호 실수 '큰 흠'
 
▲ 파리시내가 올림픽 개막 무대 2024 파리올림픽 개막일인 26일(현지시간) 개회식이 열린 프랑스 파리 알렉상드르 3세 다리 주변에서 관람객들이 행사를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지금까지 올림픽 개막식의 시간적, 공간적 틀을 모두 깬 개막식이었다. 커 봐야 10만 명이 들어오기 어려웠던 스타디움을 벗어나, 30만 명이 넘는 파리 시민들과 함께, 그리고 길어야 300m 정도 되는 스타디움의 장벽을 넘어 6km가 넘는 파리 시내를 누비며 한계를 깼다.

개회식 방송을 중계하던 KBS 송승환 해설위원도 "이번 파리 올림픽 개막식은 지금까지의 어떤 올림픽 개막식에서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개막식이었다"라며 "부분적으로 과욕을 부리지 않나 싶은 부분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올림픽의 틀을 깨고 새로운 개막식의 시대를 연, 혁명의 나라다운 올림픽 개막식이었다"고 총평했다.

이렇듯 프랑스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준 개막식으로 팡파르를 울린 2024 파리 올림픽은 오는 8월 11일까지 16일 간의 여정에 돌입한다. 이번 대회에선 한국 선수단 143명을 포함해 206개국 1만714명이 경쟁에 나선다.

전체적으로 눈길을 끈 개막식이었지만, 한국에는 당황스러운 상황도 벌어졌다. 선수단 입장 때 장내 아나운서가 대한민국의 영어·프랑스어 국호 대신 북한의 국호를 연호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어로 대한민국의 정식 국호는 'Republique de Coree'인데, 북한의 국호인 'Republique Populaire Democratique de Coree'로 연호해 물의를 빚었다. 대한체육회는 개막식 현장에서의 국호 호칭을 실수한 데 대해 상위 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에 상황을 보고, 대응에 나설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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