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소화제의 강력한 라이벌...20세기 한국 풍미한 ‘까스’의 원조

반진욱 매경이코노미 기자(halfnuk@mk.co.kr) 2024. 7. 27.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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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산 소화제’의 원조 삼성제약 까스명수
삼성제약 까스명수는 탄산을 넣은 소화제로 한때 시장을 제패했다. (삼성제약 제공)
국내 액상형 소화제 시장 1인자는 동화약품 브랜드 ‘활명수’다. 시장점유율이 70%에 달한다. 127년 동안 꾸준히 시장에서 압도적인 위치를 고수해왔다. 지금이야 압도적 1등이지만, 활명수도 1960~1990년대 사이에는 좀처럼 힘을 쓰지 못했다. 이 시기 활명수를 궁지로 몰아간 제품이 바로 삼성제약의 ‘까스명수’다.
국내 최초의 액상형 탄산 소화제 ‘활명수’의 아성을 무너뜨리다
까스명수는 삼성제약이 1965년에 내놓은 액상형 소화제다. 삼성제약 2대 회장인 김영설 회장이 개발했다.

당시 액상형 소화제 시장은 동화약품 ‘활명수’가 휩쓸고 있었다. 다른 후발 주자도 활명수를 모방한 제품을 내놓는 데 급급했다. 남들과 똑같은 제품을 내놓으면 승부가 어렵다고 내다본 삼성제약 측은 변화를 시도했다. 청량감을 높여주는 탄산에 주목했다. 대중 사이에서 탄산음료인 콜라와 사이다가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시기였다. 연구를 거쳐 1965년, 국내 최초 탄산계 액상형 소화제 ‘까스명수’를 선보였다. 인기는 대단했다. 단숨에 소화제 시장 판도를 흔들었다. 활명수를 제치고 액상형 소화제 점유율 1위까지 치솟았다. 다급해진 다른 회사들은 연달아 탄산을 넣기 시작했다.

기존 소화제 시장 1위였던 활명수의 입지도 흔들렸다. 타성에 젖어 변화하지 않던 활명수는 ‘까스명수’ 성장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결국 ‘원조’의 자존심을 버리고 후발 주자 까스명수의 전략을 모방했다. 까스명수 대항마로 1967년 활명수에 탄산을 넣은 ‘까스활명수’를 공개했다. 강력한 라이벌 등장으로 인해 까스명수의 짧은 독주도 끝이 났다. 이후 1990년대까지 두 제품은 치열한 대결을 펼쳤다. 엎치락뒤치락 점유율을 가져가며 경쟁을 계속했다. 활명수는 ‘소화제 원조’임을 내세워 시장을 공략했다. 이에 맞서 까스명수는 ‘탄산 소화제의 시초’라는 점을 내세워 적극적인 광고를 펼쳤다.

30년에 걸친 대결의 승자는 동화약품 까스활명수다. 2000년대부터 ‘부채표가 없는 것은 활명수가 아닙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공격적인 마케팅을 앞세워 점유율을 대폭 끌어올렸다. 까스명수 역시 ‘왕관표’라는 브랜드를 앞세워 광고를 전개했지만, 동화약품의 물량 공세를 막아내기는 역부족이었다. 2000년대 이후 액체형 소화제 왕좌는 까스활명수를 내세운 동화약품이 되찾았다.

비록, 1인자 자리를 내주며 기세가 한풀 꺾인 까스명수지만,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여전히 대단하다. 탄산 소화제 원조라는 명성에 걸맞게 높은 매출을 자랑한다. 2023년 한 해 동안 31억9700만원의 판매고를 올렸다. 삼성제약 전체 매출의 6%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까스명수 브랜드 ‘롱런’ 배경은 퍼플오션 전략, 판로 다양화
강력한 경쟁자의 시장 공습에도 ‘까스명수’ 브랜드가 롱런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브랜드 전문가들은 크게 3가지를 꼽는다. 퍼플오션 전략, 과감한 판로 다양화 그리고 헤리티지 전략이다.

까스명수는 퍼플오션 전략을 가장 잘 활용한 브랜드다. 퍼플오션이란, 치열한 경쟁 시장인 레드오션과 경쟁자가 없는 시장인 블루오션을 조합한 말이다. 빨간색(레드)과 파란색(블루)이 섞이면 보라색(퍼플)이 나온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경쟁자가 많은 기존의 시장(레드오션)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나 기술 등을 적용, 자기만의 새로운 시장(블루오션)을 만드는 것이다. 즉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가치의 시장을 창조했다는 의미다.

1960년대 소화제 시장은 과포화 시장이었다. 제품 형태도 고만고만했다. 1위 업체인 활명수 제품을 모방한 상품이 대부분이었다. 삼성제약은 변주를 줬다. 액체형 소화제를 만들되, 탄산을 넣어 명백히 차이점을 마련했다. 새로운 제품에 소비자는 열광했고, 후발 주자였던 까스명수는 단숨에 업계 최상위 브랜드로 도약했다. 까스명수의 퍼플오션 전략은 제대로 먹혀들었다.

과감한 판로 다양화도 ‘까스명수’ 브랜드의 경쟁력 강화에 한몫했다. 2011년 보건복지부는 박카스D, 까스명수 등 일반의약품 48개를 약국이 아닌 곳에서도 판매가 가능한 ‘의약외품’으로 전환했다. 의약품 구매가 불편하다는 여론이 커지자, 판로를 늘리려는 당국의 선택이었다. 경쟁 제품 다수가 약국이라는 창구를 벗어나지 못할 때, 까스명수는 슈퍼와 편의점까지 판로를 늘리며 점유율을 높일 수 있었다.

오랜 역사를 앞세운 헤리티지 전략은 ‘활명수’에 맞서 치열한 경쟁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헤리티지 전략이란 기업이나 브랜드가 자신의 역사, 과거의 성과를 활용, 브랜드 인식을 높이는 방법을 뜻한다. 소비자의 감정을 자극해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를 높이는 게 핵심이다. 까스명수는 ‘탄산계 소화제’의 원류임을 매번 강조했다. ‘왕관표’라는 로고까지 제작, 소비자의 뇌리에 까스명수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덕분에, 30년간 ‘절대강자’였던 활명수와 긴 싸움을 펼칠 수 있었다.

머나먼 1위, 뒤쫓는 후발 주자 ‘넛크래커’ 상황 피할 수 있을까
오랜 시간 살아남은 ‘까스명수’에 남은 고민은 ‘넛크래커’ 상황이다. 넛크래커란 호두를 부수는 기계에서 유래한 말로, 업계 선두와 후발 주자 사이에 끼여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액상 소화제 시장에서 동화약품의 ‘까스활명수’는 70% 가까운 점유율로 타사를 완전히 따돌렸다. 약 4%에 그친 까스명수로서는 버거운 상대다. 후발 주자의 추격 역시 만만찮다. 동아제약의 ‘베나치오’ 광동제약의 ‘솔표 위청수’ 등이 빠르게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삼성제약은 ‘영업망 확대’ ‘해외 진출’ 등 정책을 내세워 위상 회복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영업망 확대를 위해 제일헬스사이언스와 일반의약품·의약외품 상품 판매 계약을 맺었다. 제일헬스사이언스는 까스명수를 포함한 삼성제약의 상품 9종에 대한 독점 판매권을 획득했다. 전국에 1만곳 이상의 직거래 거래처를 보유한 제일헬스사이언스의 유통망을 활용, 판로를 키우겠다는 복안이다.

2016년부터는 캄보디아를 시작으로 해외 진출에 나섰다. 과포화된 국내 시장을 벗어나 판매량을 적극 끌어올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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