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수학박사·건설업자…'투잡' 선수들[파리올림픽]
'간호사-역도' '수학박사-사이클'
본업 유지하며 운동 병행…훈련비용 마련 등 목적
수학박사 사이클 선수, 전염병 연구원 육상 선수, 간호사 역도선수, 건설업자 포환던지기 선수….
올림픽 출전 선수 대다수는 전업 운동선수지만, 전혀 다른 분야의 본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선수들이 있다.
2024 파리올림픽 여자 사이클 개인도로에 출전하는 오스트리아 국가대표 안나 키센호퍼(33)는 수학박사다. 빈 공과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석사, 스페인 카탈루냐 공대에서 박사 과정을 마친 그는 스위스 로젠 공대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던 2020 도쿄올림픽을 혼자 준비해 출전했다. 깜짝 금메달의 주인공이 된 그는 125년 만에 오스트리아에 사이클 금메달을 선사했다. 그는 올해도 연구실이 아닌 도로 위에서 다시 한번 금메달 사냥에 도전한다.
미국 여자 육상 대표팀의 가브리엘 토머스(29)는 ‘가방끈’ 긴 올림피언으로 도쿄에서부터 주목받은 스타 선수다. 2020 도쿄 올림픽 육상 여자 200m 결선에서 동메달을 딴 그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신경생물학과 국제보건학을 복수전공하고, 텍사스대 대학원에서 전염병 역학을 공부한 재원이다. 지난해 석사학위를 수료한 그는 올해 파리올림픽 준비와 의료 봉사를 꾸준히 하면서 박사과정 진학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토머스는 과거 한 인터뷰를 통해 쌍둥이 오빠가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남동생이 자폐증을 앓고 있어 신경생물학에 관심을 갖게 됐고, 향후 의료 체계에서 인종 간 불평등을 개선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뉴질랜드 포환던지기 신기록 보유자인 톰 월시(34)는 2016 리우올림픽과 2020 도쿄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괴력의 사나이다. 그는 도쿄올림픽 이후 자신의 체육관 건설 프로젝트를 계기로 건설업에 뛰어들어 현장을 바쁘게 오가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파리올림픽 출전을 위해 잠시 현장 일을 접어두고 모처럼 필드 위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기차 검표원으로 일하면서 올림픽에 출전해 인생 역전에 성공한 케이스도 있다. 인도 여자 역도 대표팀의 사이콤 미라바이 차누(31)는 2020 도쿄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이자 세계 챔피언으로 인도 역도 역사상 두 번째 올림픽 메달을 기록했다. 가난한 가정의 6남매 막내로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부터 네살 많은 오빠도 들지 못하는 무거운 장작더미를 척척 들어 올렸다. 미라바이는 양궁을 하고 싶었으나 지역 스포츠센터에서 역도를 권유받았다.
운동을 시작하자마자 곧 재능을 발휘한 그는 2014년 코먼웰스 대회 역도 48kg급 은메달, 2017 세계 역도선수권대회 48kg급 금메달, 2018년 코먼웰스 대회 역도 48kg급 금메달을 휩쓸며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선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미라바이는 기차역에서 검표원으로 일하며 틈틈이 훈련하고 대회 출전을 병행하는 일정을 이어갔다. 그는 도쿄올림픽 메달 획득 성과로 현재는 경찰 간부로 자리를 옮겨 파리올림픽에서 새로운 기록달성에 도전한다.
난민 올림픽 선수단 역도 대표팀의 시릴 찻쳇(30)은 역도선수이자 런던에서 정신과 간호사로 활동 중이다. 그는 카메룬 출신으로 2014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코먼웰스대회 역도 85kg급에 출전해 5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대회가 끝난 뒤 찻쳇은 고국에서 온 신변 위협 메시지를 받고 팀을 이탈해 난민이 됐다. 당시 10대였던 그는 그저 죽음만 생각했지만, 자선단체의 도움으로 거처를 마련하고 다시 역도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2020 도쿄올림픽 역도 96kg급에 출전에 10위를 기록한 그는 미들섹스 대학 간호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학업과 훈련 모두 좋은 성과를 거둔 셈이다. 찻쳇은 자신과 같은 트라우마를 겪는 환자의 재활을 돕는 정신건강 간호사로 런던 해로에 있는 벤틀리 하우스 의료센터에서 근무 중이며, 이번 파리올림픽에도 출전해 새로운 기록을 들어 올릴 계획이다. 그는 지난 도쿄올림픽 공식 웹사이트에 실린 사전 인터뷰에서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올림픽 출전을 꿈꾼다. (다른 난민을 향해) 할 수 있다. 도전하시라!”라고 출전 소감을 밝혔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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