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 '계속고용' 실험이 시작됐다 [전민정의 출근 중]
[한국경제TV 전민정 기자]
최근 현대자동차 노사의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이 마무리됐는데요.
역대 최장 6년 연속 '무파업 임단협 타결'과 함께 유독 중장년층의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바로 숙련 재고용 기간 연장입니다.
현대차에선 지난 2019년 만 60세 정년 이후에도 연구소나 기술직 근로자가 원할 경우 1년 더 계약직으로 일하는 '숙련 재고용(촉탁계약직)'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요.
이번 임단협에서 이 기간을 2년으로 늘리기로 한 것입니다.
현대차에 이어 한국GM도 최근 '숙련공 재고용' 대열에 합류했는데요.
한국GM은 올해 임단협 교섭을 마치면서 내년 연말부터 전문기술을 필요로 하는 숙련 직종에 대해 정년 후에도 더 일할 수 있는 재고용 제도 시범 운영을 논의하기로 했습니다.
● 초고령사회 '눈앞'이지만 쉽지 않은 정년 연장…'계속고용'이 대안
내년이면 우리나라 인구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인 초고령 사회가 됩니다.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연금수령 시기가 늦춰지면서 일하는 노인들도 늘고 있죠.
통계청이 내놓은 올해 상반기 취업자 통계에 따르면 60대 이상 취업자는 28만 2천명 늘었는데 이는 전 연령대에서 가장 큰 증가 폭이었습니다. 70대 이상에서도 1년 새 15만명이나 증가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정년 연장'은 중요한 화두가 됐습니다.
하지만 국내 기업의 상당수는 오래 일할수록 임금이 높아지는 연공형 '호봉제' 임금체계를 운영중이기 때문에 고용주 입장에선 비용 부담이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죠.
고임금 근로자가 많아진다는 건 곧 청년층에게 양질의 일자리가 그만큼 줄어들게 됨을 의미하기도 하고요.
따라서 현실적으로 정년 연장을 제도화, 의무화하는 데에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많습니다.
이처럼 당장 정년을 늘리기 쉽지 않은 상황에선 재고용 등 계속고용은 현실적 대안이 되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현대차 촉탁직의 경우 연봉은 신입 초봉 수준으로 줄지만 사실상 만 62세로 정년이 연장되는 효과가 있는데요.
또 회사로서는 인건비를 줄이면서도 더 많은 숙련 근로자를 확보할 수 있고, 근로자는 퇴직 후 소득 공백을 피할 수 있습니다.
현대차발 한국식 '계속고용' 실험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이유입니다.
● 계속고용 위한 사회적 논의 '속도'…고령층 고용촉진 방안도 마련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정년 후 계속고용을 위한 사회적 논의도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지난달 말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인구구조 변화 대응 계속고용위원회'를 발족했습니다.
노사와 정부 대표위원, 공익위원들이 한 데 모인 계속고용위는 저출생과 초고령사회 등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한 고용 노동시스템 구축을 위한 방안을 논의하게 되는데요.
사회적 대화를 통해 청년과 고령자, 기업이 상생하며 퇴직한 이후에도 계속 일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대안을 찾는 게 목표입니다.
정부는 계속고용 활성화를 위해 고령층 고용촉진 방안 마련에도 나섭니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초고령사회 대비, 고령층 고용촉진 및 고용안정을 위한 개선방안 연구' 용역 입찰을 공고했는데요.
연구용역을 통해 연말까지 고령층의 고용촉진·고용안정을 위한 법제·관행·시스템 등 종합적 개선방안을 마련한다는 게 정부의 계획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중장기 인력수급 전망·중장년·고령층 노동시장 특징을 분석하고 계속고용 활성화를 위한 근로기준·노사관계·산업안전 등 노동법제·관행 개선 방향을 제시하게 됩니다.
여기에 임금과 생산성 균형성 제고 등 강한 연공급 개선방안, 세대상생형 인사·노무 관리 방안, 전직·재취업 지원방안, 고령층 고용활성화를 위한 지원금 제도 개편방향, 고용촉진형 국민·퇴직연금 제도개선 방안까지 담을 예정입니다.
● '정년 후 재고용' 늘리면 세금도 더 깎아준다
정부도 정년 연장 제도화에 한 발 다가서고 있는데요.
최근엔 정년 후 재고용을 촉진하기 위한 세제 지원책도 마련됐습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25일 발표한 세법 개정안에 내년부터 정년퇴직한 만 60세 이상 근로자의 재고용을 늘린 중소·중견기업의 세금을 더 깎아주는 내용의 통합고용세액공제 개편 방안을 담았습니다.
통합고용세제는 전년 대비 상시근로자 수가 늘어난 만큼 일정 기간 법인세 또는 소득세를 세액공제해주는 제도인데요.
현재 기간제, 단시간 근로자 등을 제외한 상시근로자만 대상인데, 기재부는 이 '상시근로자'라는 지원 요건을 전면 폐지하고 대신 '계속고용'과 '탄력고용'이라는 기준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계속고용의 경우 계약 기간을 정하지 않고 1년 이상 계속 근무한 '계속고용 근로자'를 지금보다 더 늘리면 공제액이 대폭 확대됩니다.
중소기업이 청년 정규직이나 장애인, 만 60세 이상, 경력단절자 등을 계속고용할 경우 수도권 기업은 1인당 1,450만원에서 2,200만원, 지방 기업은 1,550만원에서 2,400만원으로 세액공제액이 각각 750만원, 850만원 늘어납니다.
중견기업 역시 800만원에서 1,200만원으로 세금 감면 폭이 커지게 됩니다.
● '임금체계 개편' 동반하는 계속고용…노사 합의점 찾을까
정부는 최근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연내 '계속고용 로드맵'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면서 계속고용 도입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 '임금체계 개편'을 내세웠는데요.
정부는 계속고용을 둘러싼 법적 불확실성을 줄이고, 노사 자율적인 계속고용 확산을 위해서는 임금체계 개편, 배치전환, 취업규칙 작성·변경 절차 등 근로조건 조정에 대한 법적 근거를 명확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입니다.
생산성 높은 사람이 아니라 오래 근무한 사람이 더 많은 임금을 받는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나 인력 재배치가 자유롭지 않은 '기업 내 인력 이동의 경직성'이 계속고용을 어렵게 한다는 판단에서입니다.
하지만 이를 두고 한국노총은 "연공급제 폐지와 임금 감소를 동반한 고용 연장으로 가기 위한 수순"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노동계는 정년부터 국민연금 수령까지 최대 5년의 소득 공백이 발생하기 때문에 정년 연장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이와 함께 임금 감소를 동반하는 임금피크제에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만큼 계속고용을 통한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반발이 클 수 밖에 없는 거죠.
또 현행 근로기준법은 기업이 임금체계와 같은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이익하게 변경하려면 노조나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도 노동계는 기업이 임금체계 개편을 쉽게 하기 위해 정부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을 완화하려 하는 것 아니냐며 날을 세우고 있습니다.
정부도 정년 이후 재고용 등 계속고용을 통해 근로기간을 늘리면서 근로조건을 조정하는 경우에도 '근로조건의 불리한 변경'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법적 분쟁이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은 인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도 경사노위 계속고용위원회에서 노·사·정, 전문가 간 충분한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합리적 개선방안을 도출해나가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이미 현장에서는 고령 근로자로 인력 공백을 막고 생산성까지 향상시키기 위한 나름대로의 생존 해법 모색이 한창입니다.
하지만 계속고용을 둘러싼 노사간 입장차는 논의가 진행될 수록 더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상황인데요.
퇴직자 재고용이 실험을 넘어 안정적인 제도로 '정착'하기 위해선 사회적 대화를 통한 의미 있는 합의가 하루 빨리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전민정기자 jmj@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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