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유수유 가능한 올림픽" 파리 선수촌에 어린이집이?[파리올림픽]
'엄마 선수' 모유 수유 위한 공간 확보도
시대 변화 목소리 커져…육아·운동 균형 찾기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2024 파리올림픽 선수촌에 어린이집이 등장했다. 선수촌에서 육아가 엄격히 금지됐던 과거에서 벗어나 시대 변화를 반영해 육아 중인 엄마·아빠 선수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특히 육아 비중이 높은 엄마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활약할 수 있는 환경이 서서히 마련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파리올림픽조직위원회는 글로벌 기업 P&G와 함께 올림픽과 패럴림픽 기간 중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선수촌 내 어린이집을 운영한다. 선수촌 어린이집은 바닥을 육상 경기장 레인으로 꾸미는 등 올림픽 분위기를 조성했고, 각종 아기용품과 실내 자전거 등 장난감을 비치했다. 고품질 기저귀와 물티슈 등도 제공한다. 동시에 프랑스올림픽조직위원회는 어린이집 외에도 선수촌 인근 호텔에 모유 수유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프랑스 국가대표 선수들은 선수촌이 아닌 호텔에서 아이와 함께 할 수도 있다. 보통은 자녀가 선수촌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데, 패럴림픽 기간만 선수의 이동 문제를 고려해 만 1세 이하의 자녀가 있는 경우 '게스트 패스'를 별도로 발급한다. 게스트 패스가 있는 선수의 아이들은 하루에 두차례씩 선수촌 안으로 입장할 수 있다.
올림픽에서 부모인 선수들을 배려해 어린이집을 만들고 모유 수유 공간을 내어주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2024 파리올림픽에서 선수의 성비가 50 대 50으로 동일해 '성평등 올림픽'을 달성했다고 발표한 상태다. 육아 부담이 아직 여성에게 쏠려 있는 현실 앞에서 여성의 스포츠 참여를 확대하는 차원에서 이러한 조치가 취해진 것으로 보인다.
앞서 2021년 개최된 2020 도쿄 올림픽에서 IOC는 자녀를 포함한 가족이 선수와 동행하는 것을 금지한 바 있다. 선수와 감독 등 코치진이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고 팬데믹(세계적 대유행)도 고려한 조치였다.
그러나 당시 모유 수유 중이던 캐나다 농구 선수 킴 고셰가 딸 소피를 올림픽에 데려오려는 과정에서 IOC 측에 문제를 제기했다. 3개월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여성 선수의 육아가 동시에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냈고 여성 선수들의 지지를 받았다. 결국 IOC는 이의제기를 받아들여 육아 중인 선수의 상황을 고려해 선수촌에서 육아와 경기 출전을 동시에 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이러한 조치는 앞서 올림픽에 출전하며 엄마이자 선수로 고뇌를 겪었던 선배 엄마 선수들의 노력이 반영된 결과다. 임신·출산·육아와 운동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막고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 전환이 올림픽에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강하게 작용했다.
IOC 선수위원회 위원장인 핀란드 하키 선수 출신 엠마 테르호는 올림픽 홈페이지 인터뷰 코너에서 "아이를 낳은 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경험이 있다"며 "엄마가 된 뒤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임신이 선수 경력의 마침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라며 "선수촌 어린이집은 선수들이 올림픽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는 좋은 사례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IOC 선수 위원으로 현역 시절 올림픽 금메달을 7개나 딴 미국 단거리 육상 선수 출신 앨리슨 펠릭스는 C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딸을 낳은 이후 정상급에서 경쟁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됐다"며 "IOC 선수위원회에 합류한 뒤 엄마 선수들의 목소리를 전달해 경쟁이라는 압박 속에서 걱정거리를 하나라도 덜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성이 엄마가 되어도 최고가 될 수 있고, 한순간도 놓치지 않아도 된다는 걸 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프랑스 선수위원회 위원장인 펜싱 선수 출신의 아스트래 귀야르도 "(선수촌에 등장한 어린이집은)전례 없는 일이며 앞으로 영구적으로 자리 잡길 바라는 일이다. 파리 올림픽에서 일회성으로 이뤄지는 일이 아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올림픽엔 아이를 키우는 엄마 선수들이 다수 출전한다.
2020 도쿄 올림픽 여자 63㎏급에서 금메달을 딴 프랑스 유도 국가대표 클라리스 아그벵누는 2022년 6월 딸을 출산했다. 출산 이후 지난해 5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 딸을 데리고 와 경기를 준비하는 웜업존에서 모유 수유를 했고, 우승 후 시상식을 기다리면서도 딸을 안고 있는 모습이 화제가 됐다. 아그벵누는 올해 1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내 딸과 올림픽 선수촌에서 함께 지내며 올림픽 경기에 전념하고 싶다"고 건의했다.
한편, IOC 선수 위원에 도전하는 '한국 골프 여제' 박인비도 둘째를 임신한 엄마로 파리올림픽에서 선거 운동을 시작했다. 2014년 프로 골퍼 남기협 코치와 결혼한 박 프로는 2022년 임신 소식을 알린 뒤 지난해 4월 첫째 딸을 낳았다. 2022년 8월 AIG 여자오픈 이후로 대회에는 출전하고 있지 않다. 다만 선수 위원 유세를 위해 올림픽 현장 곳곳을 다니며 선수들을 만나 워킹맘이자 국가대표 선수라는 점을 어필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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