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kg 주워야 6000원"…폭염 속 폐지 줍는 노인들 [데일리안이 간다 67]
"하루 종일 폐지 주워 2만 원 버는데 한 끼에 1만 원…물가 너무 비싸 힘들어"
서울시 "공공 일자리 사업 확대 방침…폐지수집 어르신 위한 안전 보험도 계획"
전문가 "한국, 노인 돌볼 수 있는 재정적 여력 충분…근본적으로 폐지수집 활동 없애야"
여름이 절정에 달하면서 무더위가 지속되고 있지만 폐지 줍는 노인들의 고단한 삶은 계속 되고 있다. 데일리안은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과 동묘 인근을 찾았다. 이곳에는 폐지가 한가득 담긴 리어카를 끌고 다니는 노인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아슬아슬하게 길을 건너는 노인도 있었다. 고물상에 들려 폐지를 내린 뒤 돈을 받은 한 노인은 곧장 또 폐지를 줍기 위해 급하게 자리를 떴다.
한 노인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자 "그럴 시간 없다. 더 더워지기 전에 빨리 한 번 더 리어카를 채워 여기(고물상)에 와야 한다"며 걸음을 재촉했다.
인근 고물상 사장 A씨는 "요즘 날이 더워지다 보니 고물상을 찾는 노인들이 많이 줄었다. 그래도 오시는 분들은 매일 하루에 3~4번은 꾸준히 온다"며 "안 그래도 이 동네 자릿세가 비싸 고물상 운영이 버거운데 여길 찾는 노인들도 줄다 보니 우리도 겨우 본전이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효제동에 위치한 한 고물상 앞에서 만난 이원자(77) 할머니는 새벽 4시부터 나와 폐지를 주웠다고 했다. 그는 "오늘만 벌써 고물상 방문이 4번째다. 그렇다고 오늘이 (폐지를) 많이 주운 편도 아니다"며 "이렇게 한번 오면 3000원 정도 받는다. 하루 종일 해서 1만5000원 정도 받는다"고 설명했다.
10년째 폐지 수집을 한다는 이 할머니는 "늙은이를 누가 어디서 쓰냐. 폐지 줍는 일 외에 다른 일은 안 한다"며 "이렇게 번 돈은 주로 병원비로 사용한다"고 전했다.
오전 8시 반부터 나왔다는 김모(80)씨는 "하루에 5번 정도 고물상을 왔다 갔다 한다. 이렇게 해야 하루에 2만원 정도 받는다"며 "요즘 물가가 비싸다 보니 폐지수집하면서 밖에서 밥 사 먹으면 미친놈 소리 듣는다. 한 끼에 거의 1만원인데 그걸 무슨 수로 감당하냐"고 토로했다.
폐지를 한가득 싣고 고물상을 찾은 박모(75)씨는 "이 정도 주우면 (하루에) 1만7000원 정도 받는다. 오늘은 너무 더워서 이만하고 집에 들어갈 예정"이라며 "20년 가까이 매일 같이 종로 일대를 다니며 폐지를 주웠는데 일이 너무 고되다 보니 살이 엄청 빠졌다"고 털어놨다.
고물상 사장 B씨는 "업체 사정마다 다르긴 한데 최근에는 폐지 가격이 10~20원 정도 올라 상황이 그나마 나은 편이다. 요즘 시세로는 폐지 100kg 기준 6000원 정도다"며 "폐지 줍는 분 중에는 90살이 넘으신 분도 있다. 이런 분들이 오시면 요즘 날이 더우니 오후에는 쉬시라고 말씀드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올해 2~5월 기준 전국 시·군·구 단위로 폐지수집 노인 현황 전수조사를 한 결과, 1만4831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우리나라 노인 인구 1000만명 중 0.15%다. 서울시만 살펴보면 3007명이 폐지 수집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중 80대 이상은 1412명으로 전체의 47%를 차지했다.
폐지수집 노인 중 기초연금을 받는 비율은 89.7%로 전국 평균 수급률인 67.4%보다 훨씬 높다. 2024년 기준 기초연금은 단독가구는 33만 4810원, 부부가구는 53만 5680원(1인당 25만 7840원)까지 받을 수 있다. 기초연금만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해 이들은 무더운 여름에도 100kg이 넘는 리어카를 끌고 거리로 나온 것이다. 폐지수집 노인의 지난해 기준 월 평균 소득은 15만1000원이다.
서울시는 폭염 속 폐지수집 노인들에게 보다 편안한 방식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책을 마련했다. 서울 25개 자치구에 '폐지수집 어르신 일자리 전환 담당 기관'을 지정할 예정이다. 공공장소 플라스틱·담배 꽁초 수거, 수변공원 환경미화원 등 건강과 성향을 고려한 월 30시간 내외 저강도 일자리를 연계할 계획이다.
또한 폐지 수집 활동을 계속 원하는 어르신을 위해 공공 일자리 사업인 '폐지수집 일자리 사업단'을 연계한다. 모은 폐지를 자치구 지정 공동 판매처에 갖다주면 판매 금액에 보조금을 더해 현재의 2배 수준(평균 30만원)을 급여로 지급하는 형태다.
시 어르신복지과 관계자는 "폐지수집 노인들 중 다른 일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시간에 얽매인 채 일을 하는 것을 싫어하시는 분들이 있다. 이 분들을 위해 '폐지 수집 일자리 사업단' 규모를 확대해 더 많은 노인 분들이 공공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라며 "올해 하반기 안에 폐지수집 활동 중 다치거나 차를 긁는 등 문제 발생 시 도움을 줄 수 있는 서울특별시 시민 안전 보험에 가입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허준수 교수는 "우리나라는 노인들을 돌볼 수 있는 재정적 여력이 충분하다. 사회복지 제도 중에는 공공부조라는 경제적 사회보호제도도 있다"며 "하지만 폐지수집 노인들 이런 제도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생계유지를 위해 폐지 수집을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근본적으로 폐지수집 활동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선진국 중에 이렇게 많은 노인이 폐지수집을 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며 "이를 위해 정부는 노인 일자리 사업을 단순하게 늘리기만 할 게 아니라 노인들의 참여가 저조한 이유를 파악해 그 부분을 우선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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