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기 하나뿐, 이러다 큰일"…지하주차장 전기차 조마조마

이보람 2024. 7. 2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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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5일 서울의 한 복합쇼핑몰 주차장에 마련된 전기차 충전소에서 전기차량들이 충전을 하고 있다. 뉴스1

서울 강동구의 한 대단지 아파트에 근무하는 경비원 김모(72)씨는 최근 잇따라 발생한 리튬 배터리 화재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하 전기차 전용주차구역에 충전기가 설치돼 있고 이를 이용하는 주민들도 상당수 있지만, 전기차 화재 전용 소화기나 질식소화포 등 별다른 전기차 화재 관련 소방안전설비는 아직 구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전기차 화재가 더러 나는 건 알고 있었지만 화성 리튬배터리 공장 화재를 보니 전기차 배터리에서 불이 날까봐 걱정이 크다”며 “주차장 순찰을 돌 때 충전 중인 차량이 있으면 이전보다 더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전기차 등록이 늘어나면서 아파트와 같이 100세대 이상 공동주택의 전기차 충전기 설치 의무가 2022년 도입됐지만, 정작 전기화재 소화 장비 등 화재안전 설비는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 주민 서모(43)씨는 “몇 년 전 지하주차장에 전기차 충전기가 추가 설치됐는데 바로 앞에 소화기를 놓아둔 것 말고는 별다른 화재 진압 시설이 준비돼 있지 않다”며 “불이 나 다른 차량에 옮겨 붙는 등 큰 피해가 생길까봐 우려스럽다”고 했다.

소방안전 책임이 있는 아파트 관리자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경기도 의정부의 한 아파트 관리실 직원 A씨(50대)는 “자꾸 전기차 화재가 나는 걸 보고 불안해 관할 소방서에 문의했더니, 충전기를 비추도록 하는 폐쇄회로(CC)TV나 대형 스프링클러 설치, 질식소화포와 금속화재 전용 소화기 비치 등을 권고받았다”며 “구축 아파트에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하라고 해서 설치했는데 추가 비용이 많이 드는 화재 예방 설비를 구비하는 데는 별다른 지원이 없다고 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강남구 포이초교에 설치된 질식소화포. 사진 강남구청.


시민들의 걱정이 커지자 서울시는 7월부터 ‘전기자동차 전용주차구역의 화재 예방 및 안전시설 지원에 관한 조례’를 시행하고, 공영주차장 130곳 중 전기차 충전기가 설치된 총 54곳 중 22개소에 전기차 화재 진압용 대형 소화덮개 등 5가지 화재 안전설비를 우선 설치하는 등 대책 마련 나섰다. 서울시는 올해 안에 나머지 32곳을 포함해 공영주차장의 전기차 충전기 화재안전설비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민간 공동주택 전기차 충전구역의 소방안전과 관련해선 여전히 별다른 법적‧제도적 대응 방안이 없는 상황이다. 서울·인천·경기 등 지자체들 역시 충전기 설치시 보조금 등을 지원하고 있지만 전기차 화재에 대비한 지원은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의정부 아파트처럼 관할 소방서에서 소방설비를 갖추도록 권고하는 수준에 그친다.

전문가들은 충전 과정에서 배터리가 과열돼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큰 만큼 이를 막기 위한 설비와 함께 화재 진압 설비에 대한 의무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공동주택의 전기차 충전기 90%가 지하 주차장에 설치돼 있어 한 번 불이 나기 시작하면 사실상 진화가 불가능해 예방이 중요한데 이와 관련한 제도적 지원은 전무한 상황”이라며 “현재 보조금 지원에서 나아가 충전기에 과충전 방지기능을 필수적으로 설치하도록 하는 등 기술적으로 화재 예방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정부에서 하루빨리 화재 진압에 필요한 소화기 종류와 용량, 대형 스프링클러 설치 등 전기차 충전시설에 대한 화재 안전기준부터 만들고 이를 소급적용할 수 있는 조항까지 만들어 구축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보람 기자 lee.boram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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