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혁 기자의 ‘예며들다’] 교회, 전투함보다 구조선 역할부터 해야
40대 A씨는 모태신앙으로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왔다. 청년지도자로, 교회학교 교사로 교회에서 봉사도 꽤 해왔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그는 최근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소위 ‘멘탈’(심리상태)이 무너졌다. 평소처럼 기도하며 신앙에 의지해봤지만 쉽사리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하나님이 아닌 누군가에게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을 터놓고 싶어졌다. 그동안 알고 지낸 수많은 목사님 얼굴이 스쳐 갔다. 하지만 문득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왔음에도 자신의 고민을 터놓고 얘기할 만한 목회자 한 명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니 마음이 더 슬퍼졌다고 한다.
A씨의 사연에 공감이 갔다. 한국교회 목회자의 ‘목양’ 사역을 곰곰이 생각해봤다. 주변에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온 이들이 많아 그들은 어떨까를 생각했다. 고개가 저어졌다. A씨와 별다른 상황이 아닐 것 같았다. 중대형교회를 다니는 이들에게 담임목사는 마치 연예인처럼 만나기 어려운 존재였고, 공동체 담당 목회자는 2년 안팎이면 인사이동으로 다른 곳으로 떠나기 마련이라 친밀한 관계를 맺기 어려워 했다. 대화하더라도 결국 돌아오는 건 “기도해보라”는 원론적인 대답뿐이라는 자조적 반응도 있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가 2021년 조사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의 ‘우울 위험군’ 비율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보다 6배 높게 나타났다. 코로나 상황에서 심리적 어려움을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된 사람으로는 ‘가족’(64%)이 가장 높았으며, ‘친구·직장 동료’가 21%로 뒤를 이었다. 성직자라고 답한 비율은 찾을 수 없었다.
지난 칼럼에서 한국교회가 사이비·이단에 맞설 전투함이 돼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구조선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예수를 통한 진정한 구원의 길로 이끄는 구조선뿐 아니라, 세상이라는 망망대해에서 갈 바를 몰라 표류하는 이들을 구할 구조선이 돼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신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구원의 확신으로 믿음 생활에 들어섰지만 때론 믿음이 흔들린다. 영원한 기쁨과 안식,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지만 때론 세상 풍파에 흔들리고 현혹돼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삶의 현장 한복판에 서 있게 된다. 오직 말씀 하나 붙잡고 치열하게 분투하고 있을 신자들에게 교회와 목회자는 구조선이자 구조대가 돼줘야 한다.
“기도하면 돼. 기도 안 해서 그래”라는 식으로 떠넘기면 곤란하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모든 걸 맡기고 기도하면 다 들어주시겠다고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다.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이끄심을 구하는 것이 바른 신앙이라고도 말한다. 그게 기도의 힘이고 신앙생활에 있어 중요한 자세이다. 기도는 거창한 게 아니라 하나님과의 대화라고는 하지만, 때론 신자들도 현실의 문제가 주는 힘에 억눌려 기도는커녕 숨쉬기조차 버거울 때가 있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다른 누군가를 찾으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인간의 심리다. 그걸 신앙이 부족하다고만 나무랄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일반적인 표현으로 흔히 ‘신께서는 모든 곳에 계실 수 없어서 어머니를 보냈다’고 한다. 그 말처럼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모든 걸 맡기고 기도하면 안식과 평안, 위로를 주겠다고 하시지만, 동시에 주변 사람을 통해 그 위로를 건네시기도 하신다. 교회의 몸이 된 신자들에게 공동체를 주신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이 공동체가 주는 힘을 경험했다. 거창하거나 대단한 위로가 아니어도 그저 “응원한다” “잘 될 거야” “기도하겠다”는 단순한 한마디가 주는 힘을 말이다.
여기에 더해 목회자의 목양이 조금 더 세밀하게 신자들의 삶으로 들어와 아픔과 고민을 보듬어주면 어떨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셨듯 말이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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