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사도광산

이동훈 2024. 7. 27.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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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니가타현에 있는 사도광산 섬은 임진왜란 패배 후유증을 수습해야 하는 도쿠가와 막부(1603~1868년)에겐 엘도라도였다.

1601년 금맥이 발견돼 막부 전성기엔 1년에 금이 400㎏, 은이 40t 이상 채굴돼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1940년 한해 금 생산량이 1537㎏으로 도쿠가와 막부 전성기의 4배 가까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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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논설위원


일본 니가타현에 있는 사도광산 섬은 임진왜란 패배 후유증을 수습해야 하는 도쿠가와 막부(1603~1868년)에겐 엘도라도였다. 1601년 금맥이 발견돼 막부 전성기엔 1년에 금이 400㎏, 은이 40t 이상 채굴돼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은은 화폐주조에도 쓰였을 정도다. 그러나 금광이 안겨준 막대한 부는 부랑자들을 동원한 노동착취의 산물이다. 섬에 남아있는 ‘무숙인(노숙인)의 무덤’이 이를 증명한다. 니가타현 관광협회 안내문은 1853년 막부 직할지인 오사카·나가사키에서 치안대책 차원에서 체포된 노숙인 1800여명이 보내졌는데 이들은 가혹한 노동으로 수명이 짧았다고 소개한다.

국영이던 사업장 운영은 제국주의 침략기인 1896년부터 금본위제에 대비해 금광 시설을 현대화한다는 명목으로 미쓰비시 합자회사로 넘어가 실적이 ‘퀀텀 점프’한다. 1940년 한해 금 생산량이 1537㎏으로 도쿠가와 막부 전성기의 4배 가까이나 된다. 일본의 침략전쟁이 본격화하면서 조선인 2000여명이 노역에 동원됐기에 가능했다. 노동 착취 대상이 막부 시대 무숙인에서 식민지 조선인으로 교체된 것이다.

궤도 총연장 4000km에 이르는 사도광산은 자원 고갈로 1989년 채굴이 중단돼 이젠 관광지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코로나 팬데믹 당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서두른 것도 관광 산업 빌드업을 위한 노림수다. 일본 언론은 26일 그동안 한국 정부 반대로 막혀 있던 문화유산 등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한·일 정부가 최근 조선인 노동자를 포함한 강제노역 역사를 현장 전시에 기록하기로 거의 합의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27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리는 제46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양국이 표 대결 없이도 등재가 결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다만 한국이 요구하는 노동의 ‘강제성’을 어떻게 표현할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일제 침략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과 수위에 민감한 한국인들을 이해시키지 못하면 제2의 위안부 사태로 발전할 수도 있다.

이동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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