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누구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인가

전성필,산업1부 2024. 7. 27.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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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필 산업1부 기자


두산과 SK가 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단행했다. 두산은 지난 11일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두산밥캣을 분할해 두산로보틱스 100% 자회사로 편입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에너빌리티-밥캣-로보틱스’인 구조를 ‘에너빌리티-로보틱스-밥캣’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의 합병 비율은 1대 0.63으로 정해졌다. SK 역시 비슷한 지배구조 개편을 발표했다. SK이노베이션은 자회사인 SK온이 만성적인 적자를 기록하며 재무적 위기를 초래하자 알짜회사로 불리는 SK E&S를 한 지붕으로 합병하기로 했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 비율은 1대 1.19로 정해졌다.

하지만 재계나 금융투자업계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알짜회사와 적자회사를 합치는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복안을 펼쳤지만 결과적으로 시장의 외면을 받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두산그룹의 주식을 팔아치우는가 하면 SK이노베이션의 주가는 ‘합병은 호재’라는 평가가 무색하게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양사에 대한 투자자들의 실망감은 당연하다고 본다. 사업 시너지 극대화와 주주가치를 높이겠다는 본래의 개편 취지와 달리 실질적으로는 지배주주의 영향력만 키우는 데 활용됐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따라붙고 있어서다.

두산밥캣은 지난해 매출 9조8000억원, 영업이익 1조3900억원을 기록하는 등 그룹 내에서는 든든한 캐시카우로 여겨졌다. 반면 두산로보틱스는 지난해 매출이 530억원에 불과하다. 2015년 설립된 이후로는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하는 등 만성적인 실적 부진을 겪었다. 두산그룹으로선 두산로보틱스를 살리려면 현금창출력을 갖춘 두산밥캣을 구원투수로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두산밥캣보다 두산로보틱스에 유리하게 합병비율이 산정됐다. 위기에 처한 기업의 가치가 더 높다는 점을 일반 투자자들은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지배주주라면 얼굴에 웃음이 지어진다. 합병이 진행되면 지배주주인 ㈜두산만 별다른 비용 투입 없이 두산밥캣에 대한 간접 지분율을 13%에서 42%로 늘릴 수 있다.

밥캣의 외국인 기관투자가 션 브라운 테톤캐피털 이사는 “누구를 위한 합병인가 물었을 때 (지주회사인) ㈜두산이 실질 수혜자”라고 평가한다. 그는 “미국에서 합병비율 산정에 활용하는 기업가치(TEV) 기준 두산밥캣의 적정가치는 15조원이었지만 이번 합병 과정에서 5조원의 가치만을 인정받았다”며 밥캣 주주들이 10조원 가까운 손해를 봤다고 강조했다.

SK이노베이션도 마찬가지다. 정유·화학 사업이 부진한 상황에서 SK온에 대한 대규모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선 그룹 내 캐시카우를 끌어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마침 그룹 내 중복된 사업을 정리한다는 기조가 강해지면서 SK E&S와의 합병 방안이 SK이노베이션의 재무구조를 개선할 사실상 유일한 방법으로 꼽혔다. 그러나 두 회사의 합병은 결국 지주회사인 SK㈜의 지배력만 높였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SK㈜의 합병회사에 대한 지분율은 36.2%에서 55.9%로 늘어난다. 미래 성장사업의 한 축인 배터리 부문의 꾸준한 투자와 모기업의 재정건전성을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지배주주의 몫을 늘리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SK㈜의 SK이노베이션 지분 확대는 더욱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최 회장이 보유한 SK㈜ 지분은 17.73%다. 경제개혁연대는 “SK이노베이션 이사회가 자산가치 절반도 안 되는 시가를 적용해 합병가액을 정한 것은 지배주주 이익에 더 부합하는 의사결정으로 일반 주주 이익을 침해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두산과 SK는 ‘오너 바라기’라는 비판을 극복해야 한다는 무거운 과제를 안았다. 해답은 양사가 각각 밝힌 본래의 합병 취지에 집중하는 것이다. 합병을 통해 재무구조를 대폭 개선하고 실적 개선의 물꼬를 틔워야 한다. 여기에 미래 신산업에 대한 전폭적인 투자를 통해 기업 가치를 끌어올려야 한다. 자연스럽게 투자자들의 지지를 얻어 주가가 상승하는 결과도 보여줘야 한다. 국내 기업들이 주식시장에서 저평가받는 원인으로 꼽히는 ‘오너 위주의 후진적 지배구조’를 오히려 강화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이번 합병이 회사뿐만 아니라 전체 주주를 위한 최고의 선택이었다는 점을 기업 스스로 실력으로 증명해야만 한다.

전성필 산업1부 기자 f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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