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위로의 박사
지난 1일 저녁 서울시청 인근에서 발생한 차량 역주행 사고로 9명의 삶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사고 장소 일대가 종종 지나가던 곳이기도 하고 나와 비슷한 연배의 직장인들이 당한 참사라 그런지 관련 기사에 자꾸 눈길이 갔다. 이 사고 일주일 전쯤 이런 일도 있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스물셋의 대학생 김준오씨가 우버 택시를 타고 가다 절도 차량에 치였다. 병원에서 눈을 뜬 그가 확인한 건 하반신 완전 마비였다.
횡단보도를 건너다, 택시 뒷자리에 앉아 있다가 느닷없이 맞닥뜨린 불의의 사고는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하나님은 왜 저런 고통을 주실까. 저 사람들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저렇게 떠나야 하나. 까닭없는 고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재난이나 참사를 접할 때 떠오르곤 하던 질문인데 명쾌한 대답이나 설명을 들은 기억이 없다. 인공지능(AI) 챗봇인 챗GPT는 어떤 답을 내놓을지 궁금했다.
‘까닭 없이 당하는 인간의 고통을 기독교적으로 설명해줘.’ 10초도 안돼 내놓은 답변은 폭넓고 구체적이면서도 명료했다. ①자유의지와 인간의 타락의 관점: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고 이를 통해 인간은 선악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 인간의 죄로 세상에 고통과 고난이 들어왔다. 즉 자신의 선택으로 고통을 경험하는 측면이 있다. ②시련과 성숙: 고난(고통)은 믿음을 시험하고 성숙하게 하는 도구로 이해되기도 한다(약 1:2~4). 고난은 더 큰 인내와 성숙을 이끄는 과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 ③하나님의 주권과 신비: 어떤 고통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며 하나님의 주권 아래 모든 일이 이뤄진다(사 55:8~9). 그렇기에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존재할 수 있다. 챗GPT가 내놓은 일부 답변이다.
‘인간이 살면서 고통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추가 질문에 챗GPT는 ‘고통을 완전히 피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고통은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이며 이를 통해 성장하고 성숙하고 있다’고 했다. 인생의 선배가 한 수 가르쳐 주는 것 같았다.
하루아침에 장애인 신세가 된 김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가해자들을 원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 와서 미워하면 뭐하나. 달라질 건 없다”며 닥친 상황을 수용하면서도 앞으로의 꿈을 얘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고통당하는 이들을 어떻게 위로하면 좋을까. ‘당신의 감정이 이해됩니다’처럼 경청하고 공감하는 표현만으로도 위로가 될뿐더러 현실적인 도움주기, 비판과 판단 피하기, 함께 시간 보내기 등을 챗GPT는 제안했다. 흥미로운 건 이런 대목이다. ‘만약 상대방이 신앙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함께 기도하거나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음을 알려주세요.’ ‘위로가 될 수 있는 성경 구절이나 찬송가를 공유하며,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를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이상훈(42)씨는 2022년 강릉에서 급발진 의심 사고로 당시 열두 살이던 외아들 도현이를 천국으로 떠나보내야 했다. 도현이가 떠난 지 2년이 흐른 지금, 매일 오전 10시4분이면 도현이네 가족 휴대전화에 카톡 알람이 울린다. 교회 공동체 중보기도방(천사방)에 ‘천사기도문’이 올라왔다는 표시다. 이씨는 “믿음이 흔들리는 순간에도 천사방의 기도 덕분에 도현이를 잃은 상실과 슬픔 속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최근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밝혔다.
얼마 전 출석교회 성도가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구역 식구 4가정은 매일 밤 10시 단톡으로 중보기도문을 나누며 기도로 응원하고 있음을 공유했다. 수술을 무사히 마친 집사님 부부는 정말 큰 힘과 위로를 받았다고 고마워했다.
알 수 없는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고통당하는 이들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일사천리로 안내해주는 챗GPT의 능력에 감탄했다. 동시에 일상 한복판에서 위로자의 삶을 실제 살아가고 있는 신앙공동체의 위력도 실감한다. 누구를 ‘위로의 박사’로 삼아야 할까.
박재찬 종교부장 jee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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