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의 헌책방] 좌충우돌 인생책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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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인생책' 한 권을 꼽아 달라는 거다.
그러다 한 헌책방 사장님께 인생이 살기 힘들다는 둥 푸념을 늘어놓기에 이르렀다.
아쉽게도 그때 헌책방에는 '크리슈나무르티'가 쓴 책이 한 권도 없어 책을 사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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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인생책’ 한 권을 꼽아 달라는 거다. 인생책이라, 말이야 쉽지 어찌 그 많은 책 가운데서 딱 한 권만을 뽑을 수 있겠는가. 내 인생은 어떤 책 한 권이 아니라 여태 읽은 이런저런 책들이 쌓여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도 하나만 뽑으라면 내게 부끄러움과 성취감을 동시에 안겨준 ‘그 책’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그 책이라기보다 그 작가의 책이라고 해야겠지만 말이다. 사회에 나가 뭘 해야 할지 막막하던 대학 졸업 시즌, 나는 답답한 마음에 도서관보다 헌책방에 주로 돌아다녔다. 그러다 한 헌책방 사장님께 인생이 살기 힘들다는 둥 푸념을 늘어놓기에 이르렀다. 젊은 녀석이 왜 그런 소릴 하냐며 야단을 맞을 만도 한데 사장님은 오히려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줬고 책도 한 권 추천해줬다.
“크리슈나무르티가 쓴 책을 한번 읽어 봐. 아주 훌륭한 사람이야.”
아쉽게도 그때 헌책방에는 ‘크리슈나무르티’가 쓴 책이 한 권도 없어 책을 사지는 못했다. 없는 책을 권해주는 사장님도 좀 이상했지만, 어쨌든 남는 게 시간이었던지라 나는 그날부터 헌책방을 돌며 크리슈나무르티를 찾아다녔다. 인도 작가라면 ‘타고르’밖에 모르던 내게 크리슈나무르티는 이름 자체가 외계어처럼 들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헌책방 사장님들에게 그 작가 이름을 물어보지 않았던 게 가장 큰 실수였다. 당시 나는 좀 삐딱해서 다른 사람에게 책이나 작가를 물어본다는 게 내심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계절이 바뀌어도 책을 찾지 못한 나는 다시 그 헌책방에 가서 사장님에게 이실직고하는 수밖에 없었다. “죄송한데요, 알려주신 두 작가 중에서 한 명도 못 찾았습니다.” 그러자 사장님은 눈을 크게 뜨며 “두 작가라니?” 하며 놀라는 게 아닌가. 덩달아 나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막은 이렇다. 나는 어리석게도 그때 헌책방 사장님이 알려준 작가를 ‘크리슈’와 ‘무르티’ 두 작가로 알아듣고는 ‘크리슈나무르티’가 아니라 크리슈나 무르티 둘 중에 끌리는 작가의 책을 읽어보라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러니 아무리 찾아도 책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좌충우돌 끝에 이번엔 이름을 제대로 받아 적었다. 그의 이름은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헌책방에서 정현종 시인이 번역한 책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책을 많이 읽으면 남보다 아는 게 많아져 우월해진다는 믿음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크리슈나무르티는 우월함이라는 게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알려줬다. 그리고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결국은 아는 것에서 벗어나야만 진정으로 몸과 마음에 자유가 찾아온다는 사실도 배웠다. 이 가르침은 지금까지도 내 삶의 등대가 돼 가야 할 방향을 밝혀준다.
어떤 사람에게 인생책은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처럼 멋지게 나타난다. 하지만 나처럼 엉뚱하게 좋은 책을 만나기도 한다. 작가 이름을 잘못 알아듣고 헤맨 부끄러운 기억이지만, 그마저도 내 마음의 인생책을 만나게 해준 즐거운 추억이라 말하고 싶다.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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