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빚 가진 사람이 부럽다

황인호 2024. 7. 26.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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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가진 사람이 부럽다." 한참 휴대폰으로 뉴스를 보던 A가 이렇게 중얼거렸다.

한 게임 업체 공모청약에 빚내서 투자한 사람이 많다는 내용도 있었다.

A는 "빚도 자산"이라며 "이렇게 빚을 낼 수 있는 것도 능력"이라고 했다.

불과 4~5년 전만 해도 이 친구 좌우명은 '빚지지 말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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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호 경제부 기자


“빚 가진 사람이 부럽다.” 한참 휴대폰으로 뉴스를 보던 A가 이렇게 중얼거렸다. 슬쩍 보니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중심으로 가계부채가 늘었다는 기사였다. 한 게임 업체 공모청약에 빚내서 투자한 사람이 많다는 내용도 있었다. A는 “빚도 자산”이라며 “이렇게 빚을 낼 수 있는 것도 능력”이라고 했다.

불과 4~5년 전만 해도 이 친구 좌우명은 ‘빚지지 말자’였다. 중고차였지만, 첫 차도 수년간 모은 돈으로 일시불로 샀다. 카드 할부도 빚이라던 그였다. 그런 그의 심경에 변화가 일어난 건 2021년 무렵이었다. 돈을 모아 집을 사겠다던 A는 자고 일어나면 억 단위로 오르는 집값에 마음을 고쳐먹었다. “1년 전만 해도 매매가였는데, 눈 떠 보니 전세가가 됐다”는 게 당시 A가 입에 달고 살던 말이었다.

주변에서는 ‘영끌’ ‘빚투’ 열풍이 불었다. A도 고민했다. 그러나 앞선 자신의 결정들에 후회를 하면서도 쉽사리 합류하지 못했다. 그간의 관성 때문인지 결국 그는 집 사려고 모은 돈으로 전세를 들어갔다. A라고 집을 갖고 싶지 않았을까. 나중에 한 얘기지만 당시 많이 불안했다고 한다. 천정부지로 오르던 집값이 그해 말 떨어지기 시작해서야 마음에 위안을 찾았다고 했다.

2년 전세 계약이 끝날 무렵 A는 또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섰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전세계약 갱신이었다. 빚지지 말자라는 좌우명은 내다 버린 지 오래였지만 무리하고 싶진 않다고 했다. 3년 전 빚 4억원을 내서 집을 샀던 지인은 매달 빚 갚는 데에만 200만원 넘게 쓴다고 했다. 빛나는 솔로가 되고 싶지, 빚내는 솔로가 되고 싶진 않다고 했다. 오히려 전세가격이 떨어져 보증금 일부를 돌려받았다고 좋아했다.

그런 A가 요즘 다시 흔들린다. 최근에 만난 그는 “인사청문회 나온 어떤 후보자도 10년 넘게 무주택자라며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면서도 “이러다간 평생 내 집 마련은 어렵겠다”고 씁쓸해했다. 월급 절반 이상을 빚 갚는 데 쓴다는 지인에 대한 평도 “그래도 걔는 집이 있지”로 바뀌었다.

주변 상황은 2021년 그때와 비슷하게 흘러간다. 영끌·빚투 열풍이 3년 만에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고, 1년 뒤 집값이 지금보다 더 오를 것이란 기대는 2년8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7월 주택가격 전망 소비자동향지수는 115로 집계됐는데, 이는 2021년 11월(116)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집값이 급등하던 2021년만큼 시장에서 상승 예측이 많다는 의미다.

이런 A를 보고 누군가는 “바보야, 지금이 (집 살) 마지막 기회야”라고 할지 모르겠다. 정부도 사실상 빚내서 집 사길 권하지 않나. 금융 당국은 가계부채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대출규제 강화 조치(스트레스 DSR 2단계)를 시행 일주일 앞두고 갑자기 두 달 연기했다. 이는 주담대 막차 수요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뒤늦게 은행들을 압박해 대출금리를 올리고 있는데, 시장금리가 떨어지면서 당장의 효과는 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이제 대출 받기 힘들어지니 빨리 대출 받으라고 재촉하는 꼴이 됐다.

법원 등기정보광장의 소유권이전등기(매매) 신청 매수인 현황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전국에서 생애 첫 집합건물(아파트, 오피스텔, 다세대주택 등)을 구입한 이는 20만7155명이었다. 전년 동기보다 약 31% 증가했다. A와 같은 30대의 경우 지난 4월부터 6월(등기 완료일 기준)까지 3개월 연속 1만7000명 이상이 생애 첫 집을 마련했다. 과연 A는 이번엔 어떤 결정을 할까.

황인호 경제부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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