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먼 길 떠나는 노래

2024. 7. 26. 00:37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지난 21일 향년 73세로 김민기 선생이 영면에 들었다.

고인의 노래를 떠올리면 어느 여름날 언니들과 동그랗게 둘러앉아 수저로 감자껍질을 벗기던 저녁이 떠오른다.

나는 언니들이 부르니까, 뜻도 모르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언니들의 신산한 삶에 띄울 한 자락 노래마저 없었더라면 우리는 그 시절을 무엇으로 기억할까.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지난 21일 향년 73세로 김민기 선생이 영면에 들었다. 고인의 노래를 떠올리면 어느 여름날 언니들과 동그랗게 둘러앉아 수저로 감자껍질을 벗기던 저녁이 떠오른다. 우리들은 한 사람씩 돌아가며 노래를 불렀다. 언니들은 ‘아침 이슬’이나 ‘작은 연못’을 불렀다.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부분에 다다라서는 고음을 제대로 내지 못해서 서로 옆구리를 쿡 찔러가며 놀리기도 했다. 나는 언니들이 부르니까, 뜻도 모르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부러 외울 것도 없이 절로 외워졌는데, 그만큼 유년 시절에 흔히 들려오던 노래였다. 고인이 부른 ‘공장의 불빛’ 가사처럼 언니들은 어린 나이에 객지로 떠났다. ‘희뿌연 작업등’ 아래서 보냈을 언니들의 ‘춥고 지친 밤’을 떠올리면 이내 코가 시큰해진다.

이후 2019년 토지문화관에 입주했을 때 선생을 처음 만났다. 나는 어쩐지 말 붙이기 어려워 숫기 없이 굴었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지켜만 보았다. 선생은 입주한 작가 몇몇과 함께 산책하거나 종종 술자리 모임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휴게실에서 모두 모이게 되었는데, 그때도 선생은 지극히 말을 아꼈다. 잠자코 술잔을 기울일 뿐이었다. 소란한 침묵 속에 고요히 놓인 사람 같았다. 그것이 내가 마지막으로 본 아티스트의 모습이었다.

한때 나는 예술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는 말에 의문을 가졌다. 그것이 ‘편리한 승화’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르다. 언니들의 신산한 삶에 띄울 한 자락 노래마저 없었더라면 우리는 그 시절을 무엇으로 기억할까. 고인이 ‘뒷것’을 자처하며 소외된 삶을 앞세우지 않았더라면 기억은 한층 더 외롭고 가난하게 재생되었을지도 모른다. 작별 인사를 건네듯 담담하고 낮은 고인의 노래를 듣는다. “먼 길 가는 친구야/ 이 노래 들어요/ 나 가진 것 하나 없어/ 이 노래 드려요/ 언제나 또다시/ 만나게 될는지/ 잘 가시오 친구여/ 부디 안녕히.”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