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클릭 한 번의 ‘시민 우정’

2024. 7. 26. 00:3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혜령 이화여대 호크마교양대학 부교수

치매 아버지 실종 문자 덕에
겨우 찾아… 이것이 사람이
사람답게 돌봄받는 도시다

지난 5월 알츠하이머 3급인 아버지가 실종됐다. 산책하러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가 아버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다급히 전화했다. 그때가 밤 10시였다. 추적기 2개를 옷에 달아놨지만 아버지는 잠옷 차림이었다. 우리는 아버지가 평소 다니던 길을 여러 차례 돌았다. 온 힘을 다해 찾았지만 길은 이미 너무 어두워서 두려움이 커졌다. 아버지는 평소에도 제법 빨리 걸을 수 있었다.

한 시간이 넘어가면서 112에 실종신고를 했다. 곧 남동생도 합류했다. 충격이 너무 큰 어머니에게는 집을 지키라 하고, 나와 남편, 남동생이 거리를 나눠 뒤졌다. 두 시간 정도 지났을 때 CCTV를 확인한 경찰 담당관은 첫 방향을 알려줬다. 벌써 3시간 정도 지난 시간이었는데 늘 다니던 길과는 완전히 반대 방향이었다. 우리는 다시 뒤지기 시작했다. 자동차로, 자전거로, 오토바이로 큰길과 좁은 길을 모두 뒤졌다. 경찰도 계속 추적하며 경로를 놓치지 않고 알려줬지만 시간 격차가 컸다. CCTV 속 아버지 이동은 놀라웠다. 밤새 영등포구 몇 개의 동을 지나 동작구 대방동과 노량진을 거쳐 한강대교를 넘어갔다. 경찰이 한강대교 진입을 알려 준 것이 새벽 4시였다. 우리는 이미 서울 곳곳을 뒤지고 있었다. 그러나 새벽 6시가 되었을 때 이후 행적이 묘연하다고 했다. 걱정하는 내게 날이 밝으면 시민이 신고해 줄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안전 문자로 실종을 공개하자고 제안했다. 당연히 나는 동의했지만 이상하게 문자는 오지 않았다.

만만했던 서울 거리가 거대하게만 느껴졌다. 대로와 대교를 마구잡이로 넘어가는 아버지의 행적으로 사고가 더 걱정됐다. 밤새 아버지를 찾으며 아파지는 허리 통증에 마음도 약해졌다. 아버지가 아니라 자식을 잃어버렸어도 이렇게 마음이 약해질까. 나는 운전대를 잡고 포기가 떠오르는 나를 원망했다. 실종 9시간째 우리는 집에 모여 잠시 몸을 추슬렀다. 우리가 사는 공간에 그렇게 큰 두려움이 짓눌렀던 적이 없었다. 그래도 다시 찾아 나서는 것밖에는 대안은 없었다. 오전 9시가 되었을 때, 다시 용산 일대를 뒤지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장충동의 파출소에서 아버지를 찾은 것 같다고. 남산에서 발견돼 파출소로 이동 중이니 와서 확인해 달라고 했다. 나는 그때 처음 흐느끼며 울었다.

실종 12시간 만에 파출소에서 만난 아버지는 초췌해 보이기는 해도 침착했다. 우리는 경찰에게 몇 번이고 머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어떻게 찾았냐고 물었더니, 어떤 시민이 실종 문자를 보고 아버지를 알아보고 신고했다고 했다. 감사한 마음을 다 전하지 못한 채, 우리는 아버지와 함께 돌아올 수 있었다.

며칠 뒤 그제야 생각났다. 나는 문자를 받지 못했는데 어떻게 그분은 받았을까. 우리 지역이 아닌데 가끔 다른 주소지 실종자의 문자가 뜨는 것이 생각났다. 문자는 최종적으로 실종자가 CCTV에 찍힌 지역에 발송된다. 그러니 영등포구에 있는 집에 잠시 돌아왔던 동안 문자가 발송된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단 몇 글자의 설명으로 아버지를 알아볼 수 있었을까. 실종 문자를 다시 보니 보이지 않던 링크가 눈에 들어왔다. 그걸 누르자 경찰청 실종센터로 연결됐고 한 실종자의 CCTV 사진이 나왔다. 그제야 그날 용산구 일대의 시민들에게 아버지 사진이 공유된 것을 알았다. 한 시민의 클릭 한 번이 아버지를 찾게 했다. 나는 얼굴도 모르는 분에게 내가 아는 말 중에 가장 큰 감사와 명예를 드린다. 당신이 보여준 선행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시민의 우정(politike philia)’이다. 그것이 우리를 살렸을 뿐만 아니라 우리 도시의 공동선과 좋은 삶에 이바지했다. 나도 다짐한다. 클릭 한 번에, 사진 한 장! 그것이 이 도시를 사람이 사람답게 돌봄받는 도시로 만든다. 문자를 받았는가. 그가 바로 당신 주변에 있다!

김혜령 이화여대 호크마교양대학 부교수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