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파 독주에 민심 이반…경제 제재 해결은 쉽지 않을 듯[박현도의 퍼스펙티브]

2024. 7. 26.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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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파 대통령 선출한 이란의 향방은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
이란 국민이 새로운 대통령으로 개혁파 마수드 페제시키안을 뽑았다. 지난달 28일 이란 대선 1차 투표에서 페제시키안은 득표율 42.5%로 1위를 차지하며 이변을 일으켰다. 하지만 득표율 50%를 넘지 못하면서 2위 사이드 잘릴리(38.6%)와 지난 5일 결선투표에서 다시 맞붙었다. 결국 페제시키안은 53.7%의 지지를 얻어 잘릴리(43.4%)를 꺾고 대권을 거머쥐었다.

페제시키안의 당선은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드라마였다. 지난 5월 19일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이란 동아제르바이잔주 산림보호구역에서 헬기 사고로 사망했다. 원래 정치 일정보다 1년이나 앞서 급하게 열린 대선이기에 라이시 전 대통령과 정치색이 같은 보수파 후보가 무난히 당선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었다. 이란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대선 후보에 페제시키안을 포함한 것은 투표율을 올리기 위해서였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였다.

「 소수민족 출신 페제시키안 뜻밖 당선…현 체제 체념한 민심 반영
최종 실권은 대통령 대신 최고 지도자가 행사, 정치 체제에 한계
새 대통령 “한계 내 최선 노력” 약속…미국 대선 맞물려 셈법 복잡

하메네이는 투표율이 낮은 서양 국가를 두고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비판해왔다. 2020년 총선 이후 이란에선 세 차례 선거가 있었다. 각각 42.57%, 48.48%, 40.64%로 낮은 참여율을 보였다. 이처럼 서양 국가를 향한 비난이 고스란히 이란에 반사되는 상황에 이르자 투표율을 고려해 개혁파 페제시키안을 대선 후보로 선택했다는 말이다.

결선투표서 개혁파 지지표 결집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6일 테헤란 남부의 이맘 호메이니 영묘를 방문한 자리에서 지지자들에게 승리의 브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번 이란 대선에서도 역시 투표율이 높지 않았다. 1차 투표율은 39.93%, 2차는 49.68%에 그쳤다. 1차 투표는 시간을 연장하면서까지 투표를 독려했지만 투표율이 40%도 넘지 못했다. 보수파 입장에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생각지도 않았던 개혁파 후보가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낳았다. 높은 투표율로 보수파의 승리를 기대했는데 역전타를 연속 두 방이나 맞은 셈이다.

2차 투표에선 1차에 참여하지 않았던 유권자 599만4972명이 투표에 나섰다. 1차에 비해 투표율이 약 10%포인트 올랐다. 이렇게 증가한 표를 거의 다 페제시키안(596만8412표)이 가져가면서 승리했다. 2차 투표는 페제시키안이 당선되도록 개혁파 지지표가 집결한 셈이다.

보수파에 대한 이란 유권자의 마음이 이렇게 차가운 것은 현 이란 정치를 향한 불만이 분노를 넘어 체념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도 개혁파를 향한 기대보다는 보수파의 독주만은 막아보겠다는 몸부림이었다. 보수파가 집권하면 “대충대충 사는 것마저도 불가능하다”는 마음에서 최악 대신 차악을 선택했다는 말이다. 페제시키안을 차악이라고 한 이유는 개혁파가 집권해도 이란의 현재 정치 체제는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개혁파가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정치 체제를 개혁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체념의 발로다.

“누가 대통령이 돼도 실권은 없다”

이란 최고 권력자인 아야툴라 알리 하메네이. AP=연합뉴스

이란의 축구 영웅으로 과거 한국 축구에 뼈아픈 패배를 안겼던 것으로 유명한 알리 카리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번 대선 후보 여섯 명이 모두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와 같은 복장을 한 사진을 올렸다. 그러면서 역대 대통령이 보수파였든, 개혁파였든, 중도파였든 정부의 실정에 항의하는 사람들은 모두 진압당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그는 “대선은 서커스와 같다”며 “어떤 후보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사실상 리더십 교체일 뿐, 누구도 실질적인 권한을 가지지 않는다”고 비꼬았다. 하메네이가 모든 것을 결정할 텐데 대통령이 무슨 소용이냐는 체념이다.

지난달 20일 대선 토론회에서 페제시키안의 고문인 모하마드 파젤리가 진행자와 언쟁을 벌인 뒤 마이크를 던지고 토론장을 떠난 일도 있었다. 이를 두고 이란의 전 중앙은행 총재 압돈나세르 헴마티는 자신의 트위터에 “오늘 파젤리가 이란 공영방송국의 거짓과 잘못 때문에 토론회를 떠났다”고 썼다.

그러자 이란 인스타그램 사용자들이 보인 반응은 얼마나 민심이 차가운지 보여준다. “45년간의 거짓과 불의, 보여주기식 대선에 이란 국민은 화를 낼 권리가 없다. 불만의 목소리를 내면 경찰이 체포하고 구금한다. 그런데 당신들은 단지 하룻밤 거짓과 불의를 견디지 못하고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이란 국민은 45년 동안 당신들을 참아왔고, 여전히 참고 있으며, 심지어 투표까지 해야 한다.”

2015년 12월 하메네이는 이란 체제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대선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관련 발언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그러면서 하메네이는 대선 투표가 이란 체제를 인정하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체제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더욱 투표를 꺼렸다. 이란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부패한 정부에는 투표하지 않겠다. 무능한 정부에는 투표하지 않겠다. 투표는 부패한 정부를 승인하는 일이다. 투표하지 않겠다”는 글이 호소력을 발휘했다.

보수파 분열과 국고 낭비 논란

이란 대통령 보궐선거 투표일 이틀 전이자 공식 선거운동 마지막날인 6월 26일(현지시간) 유력 보수 후보 모하메드 바게르 갈리바프 마즐리스 의장이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동안 투표율이 낮으면 보수파가 유리하다는 것이 이란 정치의 상식이었다. 이번에는 이런 상식이 여지없이 깨졌다. 선거전에 들어서기 전부터 당선이 유력한 후보로 꼽혔던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는 선거 초반부터 자신으로 단일화를 요구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선거 막판에 두 명의 보수 후보가 사퇴했는데 오히려 국고 낭비라는 비난을 받았다. 선거 광고 비용에 상당한 국고 보조금을 소비한 채 사퇴한 점이 민심 악화, 특히 젊은 층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이란에서 국립대 학비는 무료지만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거나 휴학한 뒤 다른 국립대로 가면 이전 학교에서 받은 교육비 혜택을 반납해야 한다. 국립대 졸업 후 해외 유학을 떠나려면 그동안 받은 교육비 혜택을 돌려줘야 한다. 국립대 무상 교육은 미래를 위한 국가의 투자인데, 해당 학생이 이란을 떠난다면 자신이 받은 혜택을 반환해야 한다는 논리다. 지난 10년간 이란에선 해외 유학과 인재 유출을 제한하기 위해 이런 비용을 몇 배 인상했다.

이번 대선에선 후보 두 명이 1000억 토만(약 172만 달러) 이상의 국고 보조금을 불필요하게 낭비하면서 사퇴했다. 그런데도 선거 비용을 한 푼도 반납하지 않았으니 젊은 층은 불의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만일 보수파 잘릴리와 갈리바프가 단일화에 성공했다면 페제시키안의 승리는 불가능했다. 1차 투표에서 두 사람의 득표율을 더하면 52.4%였다. 결선투표가 필요 없는 승리를 보수파가 가져갈 수 있었다. 그러나 갈리바프의 선거 참모들은 결선투표에서 페제시키안을 찍겠다고 공언할 정도로 두 후보 사이에 감정의 골은 깊었다. 선거 초반에는 잘릴리와 갈리바프가 단일화에 실패하고 페제시키안이 2위로 결선투표에 진출하는 것이 최선이란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페제시키안은 1차 투표 1위에 이어 결선 투표에서 승리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선거 이변이 정치 변화 부를까

이란 대선에서 당선된 마수드 페제시키안. EPA=연합뉴스

이란에서 스스로 개혁파라고 밝힌 대통령은 페제시키안이 두 번째다. 첫 번째는 1997년부터 2005년까지 재임했던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이다. 페제시키안은 하타미 정부에서 보건의료교육부 장관(2001~2005)을 지냈다. 2006년부터는 타브리즈를 지역구로 둔 의원으로 의정 활동을 해왔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는 국회 부의장으로 활약했다.

심장외과 전문의 출신인 페제시키안은 1954년생으로 이란 북서부 서아제르바이잔주 마하바드에서 태어났다. 아제르바이잔 출신 아버지와 쿠르드 출신 어머니를 둔 소수민족에 속한다. 이란에서 유일한 국어인 페르시아어를 모어로 한 사람은 약 61%이고 나머지 39%는 학교에서 페르시아어를 배우는 소수민족이다. 그중 아제르바이잔어(16%)와 쿠르드어(10%)를 쓰는 사람이 큰 무리를 이룬다.

페제시키안이 태어난 마하바드는 쿠르드인들이 1946년 1월 22일에 세운 마하바드 공화국의 수도였다. 소련군이 물러나면서 1년도 채 안 된 시점인 같은 해 12월 15일 독립의 꿈을 접어야 했다. 하지만 근대에 성립한 유일한 쿠르드 국가였다. 페제시키안이 성장한 곳인 타브리즈는 동아제르바이잔주의 주도로 주민 대다수가 아제르바이잔어를 쓰는 도시다.

이런 출생과 성장 배경의 영향 때문인지 페제시키안은 소수 그룹과 약자의 권익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왔다. 2022년 히잡을 올바르게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됐던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으로 촉발된 히잡 시위를 비롯해 민중 시위를 강경 진압하는 정부를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아끼지 않은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동시에 이란 대통령의 한계를 잘 아는 냉철한 현실 감각을 지닌 정치인이다. 그는 이란 국민을 향해 외로이 버려두지 않겠으니 함께해달라고 부탁하면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한다. 일반적 세평은 이란의 경제 제재 해제가 불가능하다고 본다. 이런 세평을 깨고 페제시키안은 이변을 일으킬 수 있을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대선 후보 사퇴로 셈법이 다시 복잡해진 오는 11월 미국 대선과 맞물린 페제시키안 해법을 찬찬히 지켜볼 일이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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