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22대 국회는 수명 다한 ‘단통법’ 속히 폐지하길
극한 정쟁이 일상이 된 요즘 여야가 한목소리를 내는 광경을 좀처럼 보기 어렵다. 그런데 최근 여야가 ‘단통법(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폐지에 의견 일치된 것을 보면서 모처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단통법이 2014년 12월에 제정돼 이듬해 1월에 시행됐으니 법 제정 기준으로 올해 만 10년이 된 셈이다. 이제 단통법은 역할과 수명을 다했다. 제정 10주년을 맞아 단통법의 공과를 따지고, 단통법 폐지 이후의 단말기 시장을 포함한 이동통신 시장을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지 지혜를 모을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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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와 여야, 폐지 필요성에 공감
이통사들 경쟁 사라져 부작용 커
폐지 이후 보완 장치 마련할 필요
」
단통법은 이동통신사의 단말기 보조금 지급을 투명하게 하고, 소수에게 집중된 보조금을 누구나 차별 없이 누릴 수 있게 해 이용자 편익을 증진하자는 취지에서 제정된 법이다. 단통법이 제정될 무렵에는 잦은 단말기 대란이 있었다. 이른바 ‘성지’라고 불리는 곳에서는 최신 단말기가 공짜로 판매되기 일쑤였고, 고령자 등 정보력이 부족한 고객들은 제값을 주고 단말기를 구매하면서 ‘호갱’ 신세가 됐다.
호갱은 어수룩해 이용당하기 쉬운 고객을 얕잡아 부르는 표현이다. 이 단어가 휴대폰 유통 분야에서 최초로 쓰인 용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단통법은 극심한 이용자 차별 문제를 해소하고 이용자가 호갱이 되는 현상을 막으려고 제정된 법률이다. 단통법에 따르면 가입하는 요금제 수준에 비례하는 합리적인 단말기 지원금 차등이 아닌 다른 이유로 인한 차별적인 지원금 지급을 금지한다. 지원금을 투명하게 공시하고 게시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이다. 특히 단말기를 구매하지 않은 기존 고객들에게도 지원금에 상응하는 할인을 제공하도록 했다. 단말기를 새로 구매하지 않아도 통신 요금을 절감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불필요하게 잦은 단말기 교체로 인한 단말기 과소비도 억제하려는 뜻이 담겨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단통법 시행 초기에는 강력한 규제로 인해 이통사의 마케팅이 위축되고 지원금이 크게 줄어들면서 불만이 컸었다. 법이 시행되자마자 국회를 중심으로 즉각적인 법 개정 요구가 제기될 정도였다. 정부는 단말기 유통법에 대한 다양한 보완책을 제시하면서 시장에서 성과가 나오기를 기다리자는 정책을 견지했다.
그 결과 서서히 성과도 나타났다. 이통사 유통채널이 아닌 자급제 단말기 유통채널이 활성화됐고, 자급제 단말기와 저렴한 ‘알뜰폰’ 요금제를 결합해 통신비를 절감하는 패턴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단통법 시행 이후 단말기 대란의 빈도는 크게 줄었고, 가장 중요한 법 제정의 목표인 이용자 차별이 완화된 측면도 분명히 있다.
법의 부작용은 이통사의 경쟁 분야에서 발생했다. 단말기 지원금 규제가 딱히 다른 경쟁, 즉 요금 경쟁이나 서비스 경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용자 차별을 완화하려다 보니 기기 변경 때와 번호이동 때의 지원금 차등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이통사들의 경쟁이 크게 둔화했다. 소비자가 이통사를 변경하는 데에는 위약금, 결합 할인, 장기 가입 혜택 등으로 상당한 전환 비용이 존재하는데 이를 지원할 합법적 방법이 없었다. 실제로 2013년 1116만 건이던 번호이동 건수는 2022년 453만 건으로 감소했다. 경쟁이 많이 위축된 결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법이란 시대 상황에 따라 바뀌어야 하고, 시대의 요구를 반영해야 한다. 단통법도 마찬가지다. 단통법 제정 당시의 상황과 지금 상황은 상당히 다르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동통신 시장은 포화 상태가 됐으며 시장의 성장 동력이 없다. 사업자들의 경쟁이 부족한 상황이어서 지금은 경쟁을 제약하는 요인들을 제거할 때다. 단말기 유통 부문에 이례적인 강한 규제를 별도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글로벌 스탠더드와도 맞지 않는다. 단통법은 이제 수명을 다했다.
물론 단통법 폐지로 이용자 차별이 다시 심해지는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고민해야 한다. 특히 취약계층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이용자 피해에 대한 대책은 보완할 필요가 있다. 지금 대다수 국민은 단통법 폐지를 바라고 있다. 국회와 정부가 폐지에 뜻을 모았으니 22대 국회는 일부 각론상 이견을 극복하고 단통법을 신속히 폐지하길 기대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배경율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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