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천의 컷 cut] 제대로 상처받을 때 넘어설 수 있다
지난주였다. 오랜 만에 기자 후배와 만났는데 대화가 깊어졌다. 그는 내가 기자 시절 쓴 글에 대해 ‘흔들린 지점’을 이야기했다. 나는 솔직히 받아들이기 싫었지만 가만히 듣고 있었다. 정확한 지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일까. 주말에 ‘드라이브 마이 카’를 다시 보았다. 영화는 잔잔하지만 격렬함이 숨어 있다. 연출가이자 배우인 가후쿠는 어느 날 사랑하는 아내의 외도를 우연히 목격한다. 모든 게 무너지는 게 두려웠던 걸까. 그는 묻고 싶지만 묻지 못한다. 그러다 아내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뜬다. 물어볼 기회를 영영 놓치고 만 것이다.
어느 순간, 어느 계기에, 어떤 이 앞에서 가후쿠의 마음속 댐이 붕괴되고 만다. 그는 말한다. “나는 제대로 상처받았어야 했어. 진실을 지나치고 말았어. 실은 깊은 상처를 받았지. 미쳐버릴 정도로. 그렇기 때문에 계속 못 본 척했어….”
‘제대로 상처받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의 본능은 아픔을 싫어한다. 그래서 스스로 상처받았다는 걸 알면서도 될 수 있으면 아무 일 아닌 듯 넘기려고 한다. 진실을 회피하고 상황을 모면하려고 한다. 그러나 직시하지 않으면 상처를 넘어서지 못한다. 늘 그 주위만 맴돌고 있을 뿐이다.
힐링이라는 값싼 거즈로 상처를 덮지 말자. 어설픈 변명이나 다른 이의 몇 마디 위로로 구원받으려 하지 말자. 이를 악물고, 마우스피스를 단단히 끼우고 링 위에 올라서는 거다. 아프다는 이유로 감추려 끙끙대기보다는 과감히 대면하는 거다. 그럴 때 그 아픔은 또 다른 삶의 차원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과정이 된다.
영화는 “진실보다 두려운 것은 진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후배가 ‘흔들린 지점’이라고 말한 것을 똑바로 응시하고 곱씹어 보려고 한다. 결론이 어떻게 나든 그것은 진실에 다가서는 것일 테니까. 그것은 내게 특별한 이정표가 돼 줄 테니까.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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