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억의 마켓 나우] 아프리카를 빈궁하게 만드는 유럽의 규제
아프리카 동부에 있는 커피의 원산지 에티오피아는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1900여 달러인 최빈국이다. 수출품의 37%를 차지하는 커피에 1500만 명의 생계가 달렸다. 요즘 이곳 커피 농부들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유럽연합(EU)이 제정한 산림황폐화방지법(EUDR) 때문이다.
12월 30일 발효될 이 법에 따르면 EU에 수출할 커피나 코코아·대두·위생용품 등은 2021년 이후 벌목으로 산림을 훼손해 조성한 농장에서 생산되지 않았다는 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증명서가 없으면 EU 수출길이 막힌다. 수입업자들은 제품의 생산지를 명시해야 하고 위반 시 매출액의 최대 4%를 벌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당장 에티오피아의 커피 농부들에게 생산지 정보 등을 명시해야 하는 과제가 떨어졌다. 작년 6월 말에 제정된 산림황폐화방지법의 준비 기간은 1년 6개월에 불과하다. 에티오피아 커피농가협회에 따르면 새 규정을 준수하려면 각 농장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는 등의 작업에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이는 가뜩이나 가격 인하 압력에 시달리는 커피 업계에 큰 부담이다. 아울러 농부들은 시한이 너무 촉박해 생산지 등의 증명서를 제때 맞출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런던의 싱크탱크 ODI는 추가비용 때문에 에티오피아 커피의 수출가격이 10% 정도 오르면 수출 감소로 GDP는 0.7% 하락한다고 추산했다. 다른 커피 수출국인 우간다와 코트디부아르도 비슷한 처지다. 열대림으로 유명한 브라질이나 인도네시아도 이 법이 오히려 현지인들을 더 빈곤으로 내몰아 결국 산림이 더 황폐해진다고 비판한다. 이들 역시 준비 기간이 더 필요하다며 법의 발효 연기를 요구한다.
반면 원래대로의 발효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강경하다. EU 27개국 4억 5000만 명의 시민들이 커피와 코코아, 종이 등을 소비하느라 1년에 런던보다 큰 산림을 황폐하게 한다며 응당 더 늦기 전에 법을 제대로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에티오피아와 우간다 정부는 인공위성을 이용, 벌목으로 농장을 가꾼 곳을 적발해 더는 농사를 짓지 못 하게 하고 그렇지 않은 곳에 대한 증거를 EU에 제출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정부가 보증해줄 터이니 개별 농가의 부담을 덜어달라는 요구다. EU는 아직 이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기후위기는 선진국은 물론이고 개도국도 함께 참여해야 할 글로벌 이슈다. 그러나 EU가 산림황폐화법의 문제점을 시정하지 않는다면 개도국의 기후위기 대응 참여가 어려워질 수 있다. 커피 수출국의 어려움을 고려하는 EU의 유연한 정책 시행이 필요하다.
안병억 대구대 교수(국제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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