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조 쏟아붓고 적자…SK온 살리기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4. 7. 25.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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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석유’ 사업 붙여 숨통 텄지만…

SK그룹 유동성 위기 진원지로 지목받는 SK온이 비상 경영에 돌입한 가운데, 모회사 SK이노베이션은 SK E&S와 합병을 통해 사업 구조 최적화에 나선다. 2차전지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보고 SK그룹은 약 20조원을 쏟아부었지만 SK온은 2021년 설립 이후 계속 적자 행진이다. SK그룹은 막대한 설비투자(CAPEX)가 요구되는 SK온에 안정적 현금흐름 창출이 가능한 사업부를 붙여 전기차 ‘캐즘’ 장기화에 대비해 생존 기반 마련에 나선다. SK그룹은 2차전지 수직계열화 체제를 갖췄기에 밸류체인 정점에 놓인 SK온 시장 지배력 확대 없이는 전략의 뿌리부터 흔들린다. SK그룹은 ‘SK온 살리기’를 상수로 숨 가쁜 사업 재편을 이어갈 것으로 관측된다.

SK이노-E&S 합병 추진

SK온에 현금흐름 보강

최근 SK이노베이션은 이사회를 열고 SK E&S와 합병안을 통과시켰다. 두 회사 간 합병 과정에서 SK온에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 SK엔텀 등 SK이노베이션 100% 자회사를 합병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크게 ‘현금창출사업부’와 ‘설비투자사업부’ 간 최적화를 위한 사업 재편으로 풀이된다.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은 원유 수입과 석유제품 수출이 주력이다. SK엔텀은 사업용 탱크터미널을 기반으로 유류화물 저장과 입·출하 관리로 수익을 낸다. 3사 주력 사업 분야가 전혀 달라 시너지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자금난에 몰린 SK온을 살리려는 고육지책성 방편으로 풀이된다. 3사 합병으로 SK온은 트레이딩과 탱크터미널 사업에서 나오는 5000억원 규모 감가상각 전 영업이익(EBITDA)을 기반으로 현금흐름을 개선할 수 있게 됐다. SK온 재무적투자자(FI) 측은 지분율 희석 방어를 위해 합병 비율을 두고 기 싸움을 벌일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SK온은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분기 흑자를 낼 때까지 모든 임원 연봉을 동결하고 조직을 축소하는 긴축 경영을 이어간다.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생산책임자(CPO), 최고기술책임자(CTO) 등 C레벨 거취는 이사회에 위임했다. 최고관리책임자(CAO)와 최고사업책임자(CCO) 등은 폐지한다. 성과와 역할이 미흡한 임원은 수시 인사로 교체된다. 올해 분기 흑자전환에 실패할 경우 내년 임원 연봉은 동결된다. 임원에게 주어진 각종 복리후생 제도와 업무추진비도 대폭 축소한다. 이미 시행 중인 이코노미석 탑승 의무화와 오전 7시 출근도 계속한다. 전 직원이 한곳에 모여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사무실 근무를 원칙으로 했다.

관건은 SK온 실적 개선이다. SK온은 최근 10분기 연속 적자다. 누적 적자가 2조2962억원에 달한다. 증권가는 올 2분기에도 SK온이 3000억원대 영업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본다. 누적 적자가 2조원을 넘는 상황에서도 매년 조 단위 설비투자가 요구된다.

SK온 흑자전환 시점을 두고는 시각이 나뉜다. SK온 내부에서는 올 하반기를 기대하는 분위기지만, 현재로선 단기간 흑자전환은 힘들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미국에서 전기차에 비판적인 트럼프 대세론이 굳어지는 등 글로벌 정치 지형 변화로, 전방 산업인 전기차 수요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어서다.

유럽에서는 극우 물결이 거센 가운데 미국에선 ‘트럼프 대세론’에 힘이 실린다. 정치 지형 변화는 산업 판도 변화와 직결된다. 공교롭게도 최근 EU 집행위원회는 2035년까지 내연기관 자동차를 퇴출시킨다는 계획에서 ‘합성연료(이퓨얼)는 예외’라는 조건을 달기로 했다. 자동차 제조 강국인 독일 주도로 지난해 회원국 합의를 이끌어낸 예외 조항을 공식화하기로 한 것. 이번 추진과 별도로 유럽 정치인들은 내연기관차 퇴출안이 포함된 탄소 배출 감축 법안의 실행 가능성에 대해서도 2026년 재검토하기로 했다.

11월 5일 치러질 미국 대선은 2차전지 업황을 가를 핵심 변수로 꼽힌다. 특히, 총기 피습 사건 이후 더욱 힘이 실린 트럼프 대세론은 2차전지 산업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피습 사건 이후 지난 7월 16일(현지 시간) 트럼프 전 대통령은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인터뷰에서 “2030년 전기자동차 50%, 2035년 75% 정책은 실행 불가능하다”며 바이든 정부 친환경 정책을 뒤집겠다는 의지를 재차 피력했다.

미 대선 결과에 따라 변동성이 크게 확대될 것으로 평가되는 정책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다. 트럼프 경제 정책 뼈대는 저렴한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 산업을 되살리고 이를 통한 미국 제조업 경쟁력 강화다. 그는 IRA에 따른 전기차 보조금으로 정부 재정이 낭비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다만, IRA를 폐기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정치적 이유로 ‘모르쇠’로 일관하는 분위기다. 보조금 수혜, 일자리 등으로 얽히고설킨 기업·유권자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현수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2035년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정책에 대한 ‘롤백(roll back)’을 주장한 ‘유럽국민당(EPP)’이 유럽 의회 1당을 차지한 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리스크를 고려할 때, 자동차 고객사들의 향후 2~3년 전동화 계획 조정 리스크가 크다”며 “친환경 정책 강화 기조는 고물가-고금리-양극화 심화-전쟁으로 이어지는 협공에 동력이 다소 약화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SK온이 비상 경영에 돌입한 가운데, 모회사 SK이노베이션은 SK E&S와 합병을 통해 사업 구조 최적화에 나선다. 최근 SK이노베이션은 이사회를 열고 SK E&S와 합병안을 통과시켰다. (매경DB)
캐즘 장기화 대비

내년 고정비·달러부채 부담

사정이 이렇자 산업계와 시장에서는 신산업 수요 정체를 뜻하는 작금의 ‘캐즘’이 앞으로 2~3년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시장에서는 2025년이 고비가 될 것으로 본다. IB업계 관계자는 “현지 생산법인 대여, 현금흐름 적자 등 이유로 일부 업체의 개별 기준 현금이 내년쯤 거의 바닥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SK그룹이 사업 리밸런싱을 서두른 것도 이런 우려를 반영한 결단으로 풀이된다. 캐즘이 단기간 종료되기는 힘들다고 보고 IPO 전까지 ‘데스밸리’를 견딜 현금흐름 창출과 흑자 달성에 사활을 걸었다는 게 산업계 진단이다.

SK온 해외 공장 가동 스케줄은 대부분 2025년에 맞춰져 있어 내년에도 가동률 저하가 지속될 경우 고정비 직격탄을 맞는다. SK온 포드 합작법인 ‘블루오벌SK(2025년 1분기)’, 조지아 현대차 합작공장(35GWh·2025년 4분기)을 포함한 모든 공장이 완공돼 정상 가동될 경우 2025년 SK온 글로벌 생산능력은 220GWh에 달한다.

문제는 가동률이다. 이미 SK온 중대형 전지 국내외 공장 가동률은 60%대로 떨어졌다. 설비투자 기반 산업은 대규모 고정비를 깔고 앉지만 생산량이 일정 수준을 웃돌면 단위 생산비용이 급감하는 이익 레버리지 효과를 누린다. 반대로, 지금처럼 공장 가동률 약세로 생산량이 급감하면 단위원가 부담이 급증하는 ‘레버리지 역습’에 노출된다. 공장 가동률이 줄더라도 고정비는 그대로인 만큼 단위원가 부담이 커진다. 2차전지 셀 제조사가 공장 가동률에 민감한 이유다.

가동률 저하 지속 땐 고정비 부담에 달러부채 급증에 따른 이자 부담까지 떠안아야 할 판이다. SK온은 후발 주자로 2차전지 업계에서 가장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한 탓에 최근 2년 새 달러부채가 2.5배(152%) 늘었다. 대부분 글로벌 공장 설비투자에 쓰였다. 지난해 말보다 원달러 환율 5% 상승 땐 SK온 법인세차감전순이익은 220억원 감소한다.

산업계와 시장 일각에서는 SK온 살리기에 방점이 찍힌 리밸런싱 전략을 회의적으로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2차전지는 규모의 경제가 강력하게 적용되는 자본집약적 산업이다. 이런 속성의 산업에서는 일정 수준 이상 점유율을 확보 못하면 설비투자 무한 반복 사이클에 노출돼 유의미한 잉여현금흐름(FCF) 축적이 결코 쉽지 않다. 산업계 관계자는 “낸드 시장에서 SK하이닉스가 10조원을 주고 솔리다임을 인수한 것도 시장 지배력 확대 없이는 생존 자체가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며 “배터리 산업 역시 시장 지배력 확대를 기반으로 한 규모의 경제 구현 없이는 장기 생존이 쉽지 않을 것”이라 우려했다.

문제는 2차전지 산업 헤게모니를 점차 중국 기업에 뺏기는 양상이 짙다는 사실이다. 지배력 확대로 향후 생산량 조절을 지렛대 삼아 2차전지 시장 가격 주도권을 중국 기업이 거머쥘 수 있단 우려가 팽배하다. 시장조사 업체 SNE리서치가 공개한 연간 누적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중국 포함)에 따르면, 중국 CATL은 지난 2023년까지 약 35%의 누적 사용량 점유율로 전체 1위다. 16% 점유율을 보인 BYD가 2위에 올랐다. 반면, LG에너지솔루션(15%), SK온(6%), 삼성SDI(5%) 등은 상대적으로 저조한 점유율로 각각 3위, 5위, 6위에 올랐다. 이들 국내 3개 기업 합산 점유율은 약 26%로, CATL 점유율에 못 미친다. 익명을 원한 2차전지 업종 애널리스트는 “배터리 수직계열화 체제는 정점에 놓인 셀 사업자의 시장 지배력이 있을 때 의미가 있다”며 “핵심은 SK온이 산업 헤게모니를 거머쥘 수준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라 강조했다.

폼팩터·고객사 다각화 사활

AMPC 보조금 확대도 추진

SK온은 폼팩터·고객사 다각화에 사활을 걸고 위기를 버텨낸다.

SK온이 승부를 건 분야는 차세대 원통형 배터리다. 차세대 원통형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와 출력이 대폭 개선돼 전기차 주행 거리를 최대 20% 늘릴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공정 횟수가 적어 가격 경쟁력과 생산성도 좋다. 파우치, 각형에 이어 원통형 배터리까지 생산에 성공하면 한국 배터리 업체로는 처음 3대 폼팩터를 모두 만들게 된다. SK온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공급에도 속도를 낸다. 이르면 2026년 LFP 배터리 생산을 시작한다.

고객사 다각화에도 속도를 낸다. SK온은 현대차·포드·폭스바겐·다임러 외에 고객사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최근 SK그룹은 중국 지리그룹과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SK온과 지리그룹 산하 자동차 브랜드 간 긴밀한 협력 체계가 구축될 전망이다. SK온은 지리그룹 산하 폴스타향 배터리 납품이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를 건다. SK온은 폴스타가 2025년 생산하는 ‘폴스타 5’에 배터리 모듈을 공급한다. 닛산과도 배터리 공급 협상을 지속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SK온과 닛산은 최종 계약을 체결한 것은 아니지만, 원활한 공급을 위해 사전 준비에 돌입한 것으로 파악된다. 닛산용 배터리는 파우치형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로 알려진다.

IRA에 따른 첨단제조세액공제(AMPC) 보조금 확대도 추진한다. 북미 공장에서 IRA 요건을 충족하는 국산 소재로 배터리 셀을 생산해 AMPC 보조금을 늘리는 전략을 편다. 증권가에서는 2026년 SK온 북미 공장이 전부 가동할 경우 6조8000억원 이상의 AMPC 보조금을 받을 것으로 본다.

이석희 SK온 사장은 이번 합병 관련 설명회에서 “시너지를 공동 창출해 미래 성장 가치를 향유하는 구조로 합병하는 것”이라며 “앞으로 10년 후에도 차별적 우위를 가지며 장기 성장성을 유지하는 강건한 SK온이 되기 위해 교두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SK온 성장성과 SKTI·SK엔텀의 안정성을 갖춘 글로벌 배터리·트레이딩 회사로 변화할 것”이라며 “3사 간 합병으로 시너지를 창출해 원소재 공급 경쟁력을 갖추고 트레이딩과 스토리지 사업을 통해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해나갈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9호 (2024.07.24~2024.07.3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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