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만 뜨면 나가는 아내... 30여 년 동안 처음입니다

정호갑 2024. 7. 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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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이네 시골살이 20] 너무나 다양한 꽃 달리아 공부에 빠진 여름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정호갑 기자]

시골살이하면 정원에 심고 가꾸고 싶은 꽃과 나무 가운데 하나가 달리아였다. 그런데 지난해 추석, 옆집에서 달리아꽃 한아름을 선물로 주었다. 늘 마음에 지니고 있었던 꽃이었기에 '고맙다'라는 말을 거듭했다. 그 말을 듣고 내년 봄에 괴근 몇 개를 나눠주겠다고 한다. 빈말이 아니길 속으로 얼마나 바랐는지.

봄이 되니 달리아 괴근 30여 개를 가지고 왔다. 서너 개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많이 주니 고맙고 고마웠다. 우리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더니 심을 곳이 있으면 더 주겠다고 한다. 욕심에 심을 만한 곳을 보여주니 20여 개를 더 가져왔다. '이렇게나 품종이 많으냐' 하였더니, '달리아의 종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으며 우리가 가까이할 수 있는 것만도 50개가 넘는다' 한다. 그러면서 심을 때 주의 사항도 함께 알려 준다.

꼭 키우고 싶었던 꽃, 달리아

소중히 보관해 두었다가 날씨가 더 이상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날(4월 10일), 선물 받은 달리아를 세 곳으로 나눠 정성껏 심었다. 한 달이 지나니 새싹이 올라온다. 그리고 또 한 달이 지나니 꽃망울이 올라온다. 어떤 꽃이 필지 궁금하여 하루에도 몇 번씩 정원으로 눈길과 발길이 절로 간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 김춘수, '꽃'에서

드뎌 꽃이 피었다. 달리아꽃이 나를 아름다움의 세계로 초대하는데 초대자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되겠는가? 달리아를 그냥 '몸짓'으로 놔둘 수 없다. 달리아는 '꽃'이 되어야 한다.

선물 받을 때 괴근에 이름을 붙여 놓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몇 개 되지 않았다. 그것조차 일일이 검색하여 확인한다. 인터넷에서 사진을 찍어 검색하면 '달리아'로 나온다. 그것은 나도 안다. 사진과 비슷한 달리아를 찾기 위해 블로그, 유튜브 이곳저곳을 검색한다. 그렇게 하여 달리아 이름을 배우고 익힌다. 올여름은 달리아 이름 공부에 빠져 있다.

옆집에서 가끔 들르면 아직 이름 모르는 달리아를 물어보고, 찾은 달리아 이름이 맞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달리아를 제대로 키우고 있는지도 물어본다. 이름이 어렵기에 가르쳐 주면 잊지 않기 위해 바로 적어 둔다. 달리아를 처음 키운 사람치고 잘 가꾸었다는 칭찬도 듣는다.
  
▲ 달리아 정원 달리아 정원
ⓒ 정호갑
 
그리고 꽃이 완전히 피었을 때 바로 잘라 주면 주위의 꽃이 더 크게, 많이 핀다고 한다. 여름을 잘 넘기기 위해 그늘을 만들어주면 좋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가을에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온다고 한다. 괴근은 서리가 내리기 전에 캐는 것이 좋다고도 일러 준다.
이곳저곳에서 꽃이 피어나니 꽃 자르기가 바쁘다. 집안에는 달리아꽃이 넘쳐 난다. 심지어 데크 바닥에도 달리아꽃이 있다.
  
▲ 식탁에 놓인 달리아 달리아 꽃꽃이
ⓒ 정호갑
 
우리가 심은 50여 괴근에서 처음으로 핀 꽃은 '프레야스 파소 도블레'이다. 말이 어려워 거듭 보고 익혀야 한다. 이 달리아꽃은 다른 달리아꽃처럼 화려하지는 않다. 그런데 이 꽃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맑고 깨끗하다.
가운데 꽃잎은 국화처럼 밝은 노란색이며 바깥쪽 꽃잎은 하얀색이다. 가지에서 끊임없이 꽃을 피워낸다. 다른 달리아와 달리 이 꽃은 가을에 향기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키가 작아 정원 앞쪽에 심어야 하는데, 뒤쪽에 심어 미안하고 아쉽다.
 
▲ 프레야스 파소 도블레 달리아꽃
ⓒ 정호갑
   
향기가 없어도 좋아라

달리아 꽃들이 시간 차이를 두고 꽃을 피우기 시작하니 그야말로 감동, 감탄의 연속이다. 색깔, 모양, 크기를 저마다 달리하면서 피워낸다. 이렇게 신비로울 수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장마가 시작되니 걱정이 많다. 지지대를 세우고 바람에 흔들릴 수 있는 줄기를 하나하나 묶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었다면, 아내는 달리아를 살피러 나간다. 넘어진 달리아를 세우고, 가지와 줄기를 지지대에 연결하여 안전하게 묶어준다.

집순이 삶을 살았던 아내가 눈을 뜨면 바로 정원으로 나가는 모습을, 그렇게 흐뭇해하는 표정을 짓는 것을 지금까지 거의 본 적이 없다. 나를 보고 그런 표정을, 나의 상태를, 그렇게 열심히 보면 좋겠다며 실없는 농담도 한다. 나는 30여 년 동안 아내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였는데 달리아가 하고 있다.

나탈, 디바, 라일라 사바나로즈, 라일락 타임, 머틀폴리, 비스트로, 실버이어즈, 에든버러, 옥상달빛, 옵틱 일루전, 와인 아이드질, 진세, 칙어디, 파이드 업, 카바나 바나나, 크레이지 러브, 파인랜드 프린세스, 프레야스 파소 도블레, 하베스트 문라이트. 지금까지 우리 정원에 핀 달리아꽃 가운데 이름을 안 것이다. 아직 꽃이 피지 않은 것도 있고, 이름을 찾지 못한 것도 있다.

달리아꽃은 꽃이라면 있어야 할 향기가 없다. 색깔과 모양은 감탄을 자아낼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으나 향기가 없는 것이 아쉬울 수 있다. 그래서 더 좋다. 향기가 좋은 라일락꽃이 우리 정원에 많다. 향기는 이들이 메워 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하나쯤 모자란 것이 좋다.

에이아이(AI)가 지배하는 세상, 규격화되고 정형화된 것보다는 조금 모자라고, 어떨 때는 조금 벗어난 것에 더 애정이 간다. 사람도 그렇다. 완벽한 사람 곁에 가면 내가 설 자리가 없다. 그저 부러워할 뿐이다. 그 부러움에 주눅이 든다. 모자란 사람끼리 서로 모자란 부분을 메워주며 사는 삶이 더 좋다. 그래서 내가 시골살이를 하나?
 
▲ 머틀폴리 달리아꽃
ⓒ 정호갑
 
▲ 옵틱 일루전 달리아꽃
ⓒ 정호갑
 
▲ 나탈 나탈
ⓒ 정호갑
 
▲ 파이드업 달리아꽃
ⓒ 정호갑
 
▲ 라일라 사바나로즈 달리아꽃
ⓒ 정호갑
 
▲ 라일락타임 달리아꽃
ⓒ 정호갑
 
▲ 하베스트 문라이트 달리아꽃
ⓒ 정호갑
 
▲ 옥상 달빛 달리아꽃
ⓒ 정호갑
 
▲ 진세 달리아꽃
ⓒ 정호갑
 
▲ 크레이지 러브 달리아꽃
ⓒ 정호갑
  
▲ 와인아이드질 달리아꽃
ⓒ 정호갑
 
▲ 디바 달리아꽃
ⓒ 정호갑
 
▲ 실버이어즈 달리아꽃
ⓒ 정호갑
 
▲ 칙어디 달리아꽃
ⓒ 정호갑
 
▲ 파인랜드 프린센스 달리아꽃
ⓒ 정호갑
 
▲ 비스트로 달리아꽃
ⓒ 정호갑
 
▲ 에든버러 달리아꽃
ⓒ 정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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