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 후보자가 '세월호 오보' 사과 전 봤어야 할 영화
[하성태 기자]
▲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한 뒤 물을 마시고 있다. |
ⓒ 유성호 |
"나 이진숙은 MBC 보도본부장 당시 전 국민에게 트라우마를 안긴 '전원구조'라는 세월호 참사 당시 오보와 2차 가해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그릇된 판단으로 유가족과 국민에게 큰 상처를 입힌 점을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죄송합니다."
지난 24일 열린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 사과문이 등장했다. 사과문에 적힌 대로, 이 후보자는 세월호 참사 당시 MBC 보도본부장이었다. 당시 MBC는 전원구조 오보를 가장 오래 유지했다. 심지어 참사 당일 오후 발 빠르게, 그러나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상해 사망금 1억 리포트'를 방송했다. 이런 세월호 참사 보도를 목도한 국민들은 '기레기'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었다.
안타깝지만, 위 사과문은 이 후보가 작성했다고 보기 어렵다. 이 사과문을 읽을 수 있겠냐는 의원 질의에 답변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대신 이 후보자는 유가족들에게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 사과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의엔 "저희로서는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적으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라고 짧게 답했다. AI보다 못한 의례적이고 마지못한 답이었다.
▲ 장훈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대표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제가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대표할 수 없지만 지금 이 자리를 모면하기 위한 사과라고 밖에 볼 수 없다”며 “진심 어린 사과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그런 사과는 받고 싶지 않다. 못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
ⓒ 유성호 |
유가족은 이 후보의 사과 자체를 거부했다. 청문회장에 출석해 이진숙 후보의 답변을 접한 장훈 세월호 참사 유족은 "이 자리를 모면하기 위한 사과라고 밖에 볼 수 없고, 진심 어린 사과라고 생각할 수 없다"며 "그런 사과는 받고 싶지 않고, 못 받아들이겠다"는 답변을 내놨다. 그리고 작심한 듯 이 후보자를 향한 준비된 발언을 쏟아냈다.
"내 자식이 40m 물속에 있는데, 아직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모르는 그 시간에 보험금 보도를 해서... 10년 넘게 제일 많이 듣던 얘기가 시체 팔이, 아이들 죽음을 이용해서 로또 맞았다, 놀러 가다 죽은 아이들 얼마나 더 보상해 줘야 하나, 이런 얘기밖에 못 들었다. 왜 그런 보도를 했으며 그 보도가 얼마나 많은 유가족들의 가슴을 찢어 놨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하나 더 묻고 싶은 건 (진도 앞바다) 서거 차도, 동거 차도 다 들어가 있었다. (목포 MBC가) 전원구조 오보라고 중앙 MBC로 타전했다. 왜 무시하고, MBC만 제일 오랫동안 전원 구조 오보를 내보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이 후보자는 본인 자녀도 세월호 참사 당시 고등학생이었고, 현재 20대라고 했다. 하지만 "본인 자녀가 생사를 알 수 없었을 때 보험금이 궁금할 것 같느냐"는 의원 질의에 이 후보자는 "그 당시에 최선을 다했다"라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하지만 이 후보자가 '세월호 참사 보도 책임자'였던 당시 MBC 본사는 '전원구조는 오보'라는 목포MBC 보고를 4번이나 묵살했다. 보도지침도 횡횡했다. 단원고 희생자 학생 영상은 보도에서 사라졌다. 세월호 유가족의 구호나 주장은 완전히 배제됐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나 청와대를 비판하는 문구나 그림들도 실종됐다. 세월호 배지도 마찬가지였다. 철저하고 집요했다.
서울 MBC 본사에서 그 보도 참사를 진두지휘했던 책임자가 10년이 지난 지금 국민 앞에 당당한 얼굴을 앞세운 채 "최선을 다했다"는 사과 아닌 사과를 내놨다. 세월호 참사 당시 현장 일선에서 뛰었던 기자들의 생각은 완전히 달랐다.
▲ 다큐 '그레이존' |
ⓒ 주현숙 |
세월호 참사 10주기 다큐 프로젝트 <세 가지 안부>의 에피소드 중 한 편인 <그레이존>에는 이진숙 후보의 후배이기도 한 언론인들의 절절한 고백이 담겨있다.
다큐 속 기자들은 세월호 참사 현장을 지옥이라고 표현했다. "살면서 그렇게 힘든 시간이 싶었다. 살면서 그리 무거운 자리는 처음 겪었다"고도 했다. 이들은 단원고 희생자 학생들과 같이 침몰하는 꿈을 꿨고, 자신의 친구를 토막살인하는 등 끔찍한 악몽에 시달렸다. 기자들은 "기자라는 직업에 처음으로 회의를 느꼈다"면서 "팽목항 취재가 미친 짓이란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다"고 고백했다.
사실 기자들의 고백은 흔치 않은 장면이다. <그레이존>을 통해 기자들은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던 현장에서 죄인 마냥 고개를 숙이고, 수첩과 펜을 숨겨야 했던 세월호 참사 당시를 회고한다. <그레이존>은 그렇게 2014년 4월 16일 진도로 향했거나 보도 현장을 지킨 신입 기자부터 백전노장 PD를 카메라 앞에 앉혔다.
해당 PD는 "눈물이 났다. 오보 자막을 넣어서가 아니었다. 참사의 황망함 때문이었다"면서 "'전원구조 오보' 자막을 달았다는 보도채널 작가는 보도국이 난리가 났었다"고 전했다. 본인 마음대로 달 수도 없는 노릇이었지만 되돌아온 것은 "누가 오보 자막 달았느냐"는 질타였다. 책임은 담당 기자나 데스크에 있는데도 그랬다. "전원구조 오보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라든지 정정을 한 적이 없다"는 장훈 세월호 참사 유족의 한탄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유추해 볼 수 있는 증언이다.
참사 당시 사회부 2년 차였던 진보 일간지 기자는 참사 당일 예비군 훈련 중이었다. 그는 "훈련장에서 빠져나와야겠다"는 데스크의 전화를 받고선 팽목항으로 달려갔다가 "아무도 구조를 안 하고 있다"는 유족의 말을 듣고 당황해했다. 해당 기자는 "취재 메모를 회사에 공유했지만 선배들은 유족 주장보다 정부 발표를 더 신뢰했다"고 토로했다.
참사 당일 예쁜 옷 입고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는 시사주간지 기자는 자괴감에 빠졌다. '전원 구조 오보' 탓이었다. 그는 "뒤늦게 진상을 파악하고선 유가족 취재에 몰두했다"며 "이후 주간지 표지를 장식한 기사를 단원고 희생자 부모에게 보여줬다. 5월에 시신을 수습한 한 가족의 보편적인 유가족 이야기였다. 부모들이 '잘 썼다'고는 말해줬지만, 살면서 그렇게 무겁게 느껴진 자리는 처음이었다"고 고백했다.
전장을 누볐다던 베테랑 PD도 팽목항을 지켰다. 그는 "어느 순간 극적인 앵글을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며, 스스로 '미친 XX'라 뇌까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가 열심히 찍은 유가족들 이야기나 구조의 난맥상은 방송되지 않았다. 그는 "보수화된 MBC가 이걸 보도할 수 있겠냐 싶었지만, 예상 그대로였다"면서 "분통이 터졌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낮부터 술을 퍼마셨다. 열받아서 못 살겠어서. 여기서 왜 이러고 있나 하는 직업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고 전했다.
이어 "그때 한 선배의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이 모든 걸 다 기록하기로 했다. 이후 4.16 미디어 기록단을 통해 유가족 옆에 섰다. 그것도 못 할 짓이긴 매한가지였다"고 털어놨다. 그는 "단원고 학생들 시신이 수습될 때마다 가족들이 머무는 진도 체육관에선 지옥이 펼쳐졌다"면서 "한 손에 카메라를 들고, 다른 손으론 친해진 경찰에게 전화를 걸어 희생자 확인에 나섰다. 제 자식의 시신이 맞는지 아닌지, 여자인지 남자인지 확인하는 부모들 모습을 찍고 또 찍어야 했다. 생지옥이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그 상황에서 내가 무슨 신도 아니고. 난 이걸 찍고 있구나. 난 뭐지. 난 왜 이걸 찍고 있지. 사실 당연히 지금도 미안하죠. 진짜 진도 체육관이 지옥이었는데. 죽은 애를 찾았는데 축하한다는 소리를 들어요. 죽었는데 축하한대. 그리고 애 찾은 뒤 장례를 치르고 축하 떡을 가지고 내려와요. 지옥이 이런 지옥이 어디 있느냐고. 전쟁도 여러 번 갔다 왔는데, 거기랑은 비교가 안 되는 지옥이었어요."
그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
참사 직후, 정부의 확성기 노릇을 했다. 구조 현장은 정부 발표와 거리가 멀었다. 아무것도 하는 게 없는데도, 그걸 유가족들이 다 봤는데도 그랬다. 유가족들과 기자들이 완전히 척을 지게 됐다. 멀어졌다. 욕도 숱하게 먹었다. 돌을 던지는 유가족도 있었다. 수첩과 펜을 가리고, 핸드폰 녹음기만 켜고 돌아다녔다. 기자들은 진도체육관 2층에 자리 잡은 채 유족들과 분리됐다. 한국 언론이 기레기로 재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 모든 게 일선 기자들에게도 트라우마로 남겨졌을 터다. 이태원 참사 때도 세월호 참사 때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당시 이들이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던 현장에서 이 후보자 같은 책임자들은 무얼 했을까. 어쩜 그리 당당할 수 있을까. 10년이 지난 지금도 울분에 찬 채로 질문을 던지는 유족들에게 어떻게 답할 건가.
"기자라면 마땅히 아픈 사실이라도 사실 만을 보도하고 그 사실이 국민께 제대로 전달되도록 하는 게 기자의 본분 아니겠나. 유가족은 전원구조 오보라는 것에서 시작해서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의 구렁텅이로 빠져서 아직도 지옥을 헤매고 있다. 그 첫 단추가 전원구조 오보다. 그렇지만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사과라든지 오보에 대한 정정을 한 적이 없다. YTN 한 군데만 했다. 당시 보도본부장 보도국 사람들 한 명도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다." (장훈 세월호 참사 유족)
지난 2019년 11월 세월호 유족 등은 KBS·MBC 등 보도 책임자 등 8명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 혐의로 고소했다. 유족들은 방송사들의 전원구조 오보가 해경과 민간의 구조 업무를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같은 달 출범한 대검찰청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은 2021년 1월 보도 책임자들 모두를 무혐의 처분 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이었고,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던 시기였다. 과연 이 후보자도 면죄부를 받은 것일까.
"오보 여파가 얼마나 컸냐면, 구조하러 가던 해경들이 1분 1초가 아까운 시간에 전원구조 오보를 보고 속도를 늦췄다. (진도로) 내려오다 차를 돌렸다는 민간 잠수사들 이야기도 직접 들었다. 이 참사를 발생하게 해놓고… 방금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 백번 양보해서, 실수를 했다면 실수에 대해 바로 사과하고 바로잡아야지 않나." (장훈 세월호 참사 유족)
'그레이존'은 어느 영역에 속하는지 불분명한 중간 지대를 뜻한다. 과연 세월호 참사 보도가 진실했는지, 이쪽과 저쪽 회색지대에서 부유하지 않았는지 묻는 제목이라 할 수 있다. 전원 구조 오보가, 더 나아가 세월호 참사 보도 전체가 그렇다. 제작진은 한 기자의 입을 빌려 "(언론들이) 믿고 싶은 대로 보는 모든 일(보도)의 빠르고 많은 총합"이라고 결론 내린다. 확증편향이란 표현과 함께.
청문회 자리에서 이 후보자는 책임을 "통감했다"고 했다. 유가족에게는 "(당시) 최선을 다했다"면서 "사과를 했다"는 말만 반복했다. 우선 <그레이존>을 보시기를. 후배들의 트라우마와 회한을 정면으로 마주하시기를.
그 다음 <세가지 안부> 속 다른 에피소드인 10년 째 아들의 휴대폰을 해지하지 못하는, 독실했던 종교마저 내버린 엄마들의 이야기(<흔적>)와 중고교 동창을 떠나보낸 1997년생 세월호 참사 생존자의 트라우마와 이를 이겨내는 씩씩함(<드라이브97>)을 목도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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