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은 어쩌다 히틀러를 찬양하는 극우의 나라가 됐을까 [썰로벌]

이영미,전병준 2024. 7. 25.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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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을 터뜨리고는 손뼉 치며 환호하는 이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군인들입니다.


2023년 10월 하마스의 기습공격 이후 몇개월째 가자지구 민간인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전방위적인 공격이 이어지고 있는 와중에, 이스라엘의 군인들은 개인 SNS를 통해 이런 영상들을 퍼나르며 자축하는 중입니다.


이것도 이스라엘 군인들의 SNS 영상인데, 피난 떠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귀중품을 약탈하고, 살림살이를 흔들며 조롱합니다. 군인들만 이런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인플루언서들도 비슷한 영상을 찍어 올리며, 폭격당하고, 파괴되고, 죽어나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현실을, 전기와 물이 끊긴 팔레스타인의 비참한 삶을, 이렇게 웃음거리로 만들며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우리가 본 영상은, 소수가 벌인 일탈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이스라엘의 평범한 시민들 상당수가 공유한 인식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24년 현재의 이스라엘을 기준으로 판단하자면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정부 인사들의 발언을 보면 상황은 더 분명해집니다. ‘민간인’이 이스라엘 군의 합법적인 타깃이라고 말한 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였고, 가자지구 인구를 ‘소멸’시켜야 한다고 말한 건 재무장관, 그리고 가자에 사는 사람들을 ‘인간 동물들’이라고 부른 건 국방장관이었습니다. 현재 이스라엘 정부를 움직이는 핵심인사들이 팔레스타인인을 ‘죽이거나 내쫓아내야 하는 열등한 존재’로 규정한 겁니다. 그것도 공개적으로 말입니다.


그러고는 이런 일들이 벌어졌죠. 그러니까 총리 말대로, ‘민간인’들을 겨냥한 것이 명백한 학살이, 또 재무장관의 말대로, 가자인구 전체를 굶겨죽이려는 의도가 의심되는 일종의 ‘소멸작전’이 벌어졌습니다. 홀로코스트를 홀로코스트로 만든 게 산업적 규모의 인종청소 프로젝트라고 한다면, 지금 이스라엘이 벌이고 있는 일이야말로 홀로코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뀐 건 하나, 대상이 유대인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라는 것뿐입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끔찍한 일들은 최근 하마스 테러가 만든 일시적 현상일까요? 이스라엘인들은 테러의 충격 때문에 잠시 이성을 잃은 것일까요? 아닙니다. 뿌리는 보이는 것보다 훨씬 넓고 깊습니다.


이건 2019년 공개돼 파문을 일으킨 영상인데요, 이스라엘 군인들을 교육하는 종교학교의 랍비가 유대인 학살의 주역인 히틀러를 옹호하는 장면입니다. 그는 “히틀러가 한 말은 다 옳았다. 단지 잘못된 편에 서있었을 뿐”이라면서 히틀러를 찬양했는데, 다시 말하자면, 히틀러의 학살 행위 자체는 옳았지만, 대상으로 유대인으로 지목한 게 잘못이었다는 뜻입니다. 아마 이 랍비가 생각한, 사라졌어야 할 인종은 팔레스타인인들이겠죠. 같은 학교의 또 다른 랍비는 ‘비유대인들은 유전적 결함 때문에 유대인의 노예가 되는 게 최선’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충격적인 발언이지만, 덕분에 사람들은, 그동안 이 지역으로부터 전해졌던 수많은 뉴스들을 좀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건 프랑스 방송에 공개돼 전세계를 놀라게 한 영상인데, 아빠와 함께 있던 팔레스타인의 12살 소년이 이스라엘 군의 집중사격을 받고 살해되는 장면입니다.


이건 이스라엘 정착민의 차량이 팔레스타인 소년을 밀어버린 사건이고,


이건 총에 맞은 팔레스타인 소녀를 돕기 위해 나선 휠체어 탄 팔레스타인 남성을 이스라엘 경찰이 휠체어째 밀어버리는 영상입니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건 힘의 차이인데요, 어린이와 장애인처럼 대항 능력이 거의 없는 약자에게, 이스라엘 공권력이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행사하는 이유는, 아까 랍비들의 주장, 그러니까 팔레스타인인은 죽여 없애야 할 열등한 인종이라는 주장과 깊이 연관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냥 주장이 아닙니다. 이런 생각은 지난 수십년간 이스라엘 정부의 체계적인 인종분리 정책을 통해서 이스라엘에서는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현실이 됐습니다. 그 첫번째가 장벽입니다.


팔레스타인 땅이 이스라엘에 점령된 건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아랍 연합군이 패배한 뒤였는데요, 1990년대엔 가자지구 주위에 철제 펜스가, 2002년엔 서안지구에 거대한 장벽이 건설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에는 팔레스타인 땅에 들어오고 나가는 모든 것들, 전기·물·생필품·석유부터, 아이들이 먹는 우유와 기저귀까지, 모든 것들이 이스라엘의 통제를 받게 됐습니다. 사실상의 감옥입니다.


두번째 정책은 신분증입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서안지구·동예루살렘·그리고 이스라엘 땅에 사는 팔레스타인인이라는 4개의 신분증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을 분류하고 통제해왔습니다.


이 시스템에 따라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매일 일터에 오갈 때도 이런 수백개의 검문소를 거쳐야 하고, 다른 ID를 가진 사람들은 심지어 가족 간에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세번째는 일종의 슬럼화 전략입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는 방식으로 팔레스타인 땅의 개발을 철저히 막아왔습니다.


이건 또 다른 측면에서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인들의 삶을 쥐고 흔드는 무기가 됐습니다. 건축허가를 안 내주니 팔레스타인인들이 짓는 건물은 죄다 불법건물일 수밖에 없는데, 그래도 살아가자면 사람들은 계속 건물을 지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이스라엘 경찰은 원할 때는 언제든 이렇게 멀쩡한 집을 불법건물이라며 부수고, 젊은 남성들을 체포해갈 권한을 갖게 된 겁니다.


글로벌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가 이스라엘의 정책을 ‘아파르트헤이트’라고 규정한 이유입니다. 지난 세기 사라진 남아공의 흑백분리, 바로 그 아파르트헤이트입니다.

여기서 기억할 건, 이스라엘이 1948년 건국 당시부터 지금과 같은 노골적인 인종주의 국가였던 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초창기 이스라엘 정치의 주류 세력은 아쉬케나지 유대인으로 불리는 중·동부 유럽과 러시아 출신들이었는데, 이들 가운데는 유럽식 자유주의 혹은 좌파 성향 지식인이 많았고, 권력을 차지한 것도 이들을 기반으로 한 노동당이었습니다. 이 흐름은 현재 완전히 반전됐는데요, 이렇게 되기까지 3차례의 거대한 변곡점이 있었습니다.

①첫번째는 1977년 선거입니다. 그해 선거에서는 29년 만에 집권 노동당이 우파 리쿠드당에 패배를 하고 정권을 내주는 정치적 격변이 일어납니다.


리쿠드당은 현재 이스라엘 집권당이죠. 이 역사적인 정권교체를 이해하려면 이스라엘 사회의 인구 변화를 알아야 합니다. 아까 이스라엘의 주류가 유럽 출신의 아쉬케나지 유대인이라고 했잖아요. 초기 이스라엘의 국가적 목표 중 하나는, 아랍 인구를 줄이고 유대인을 늘리는 거였고, 이를 위해 건국 주역들은 이라크·예맨·이집트·에티오피아 등지에서 오래된 유대인 공동체의 이주를 추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중동의 유대지구에 폭탄을 터뜨려 공포에 질린 유대인들이 대거 이주하도록 유도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이스라엘로 대거 옮겨온 이들이 중동계 유대인을 뜻하는 미즈라흐 유대인들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합류한 중동 및 북아프리카계 유대인들은 그후 이스라엘 사회의 하층민으로 오랫동안 핍박과 차별을 받았죠. 얼마 전에는 에티오피아 유대 여성들이 정부 관리로부터 피임약 복용을 종용받았다는 폭로가 나왔는데, 흑인 인구를 줄이기 위한 일종의 우생학 프로젝트로 의심받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이렇게 건국 초기 대규모로 이주한 중동 및 북아프리카계 미즈라흐 유대인들은 이웃 아랍국가에 대해 유럽계보다 훨씬 적대적이었습니다. 상당수가 고향에서 박해를 받다가 떠나온 사람들이었으니까요. 세속화된 유럽계와 달리 종교적 전통에 충실하다는 점도 특징이었습니다. 우파 리쿠드당은, 이들 가난하고 차별받던 중동계 유대인들이 새로운 지지기반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고, 그 정치적 힘이 1977년 선거에서 정권 교체로 표출된 겁니다. 이때부터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 정착촌을 건설하는 프로젝트도 힘을 받게 됩니다. 먼저 이주한 유럽계와 달리 나중에 합류한 미즈라흐 유대인들에게는 땅이 없었기 때문에, 이들은 팔레스타인 땅에 정착촌을 건설하는 일에 훨씬 적극적이었습니다.

②두번째는 1995년 11월 4일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 암살 사건입니다.


두해 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중재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오슬로 평화협정에 서명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죠. 그 주역인 라빈 총리가 극단주의 청년의 총격에 암살되는 사건이 벌어졌고, 이후 평화의 동력은 떨어지고, 이스라엘 사회는 급격히 우경화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평화의 희망이 짓밟힌 겁니다.

③라빈 총리의 비극적 죽음은, 30년의 시차를 두고 2022년 12월 세번째 사건, 이스라엘 극우정부의 탄생으로 이어집니다. 선거가 치러질 무렵, 네타냐후는 계속되는 부패 스캔들로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이었고,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극우세력과 손을 잡고 이스라엘 최초의 극우 연정을 출범시킵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극우정부는 30년 전 라빈 암살과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요? 두 사건을 연결하는 건 바로 이 사람, 네타냐후 총리입니다.

정치인 네타냐후가 1996년 처음 권력을 잡게 된 출발이 바로 라빈 암살이었습니다. 네타냐후는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까지도 라빈 암살을 선동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데, 당시 그가 했던 거리 연설 때문입니다. 라빈의 오슬로 평화협정 발표 후 이스라엘에서는 우파의 협정 반대 시위가 불붙었고, 그 반대시위를 대표한 얼굴이 네타냐후였던 거죠.


그리고 네타냐후 연설 2주 후 라빈이 암살됩니다. 당시 라빈의 아내는 암살을 선동한 책임이 네타냐후에게 있다고 공개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논란에도 불구하고 네타냐후는 이듬해 총리에 선출되며 라빈 암살의 최대 수혜자가 됐고, 30년 뒤엔 ‘극우 2인방’으로 불리는 두 사람을 정치판 주류로 끌어들이며 이스라엘에서 본격적으로 극우의 시대를 열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내각에 합류시킨 이 사람, 벤 그비르 국가안보장관 역시 라빈 암살과 관련있는 인물입니다.


당시 그는 라빈의 차량 엠블럼을 훔친 뒤 인터뷰를 한 시위대 중 한명이었는데, 정치 테러를 암시하는 이런 위험한 발언을 했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그후 그는 인종혐오 발언을 공공연히 하고, 의원 신분일 때는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총으로 위협하기도 했으며, 29명의 무슬림을 학살한 테러범 사진을 사무실에 모셔둔 걸로 유명할 뿐만 아니라, 인종증오 혐의로 유죄 판결까지 받았습니다.


또 다른 각료인 스모트리치 역시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 간의 완벽한 분리를 주장하는 걸로 악명높은 인물입니다.

몇년 전만 해도 주류 정치권에서는 쳐다보지도 않던 극우 선동가들이 네타냐후의 손을 잡고 이스라엘 정치판의 한복판에 들어오게 된 겁니다. 그리고 그들의 입을 통해 그동안 이스라엘 사회의 밑바닥에서 들끓던 인종주의와 파시즘이 양지로 나와 주류 사회를 점령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 또 이렇게, 그리고 결국에는 이렇게 비극적인 모습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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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 영상센터장 ymlee@kmib.co.kr
전병준 기자 jb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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