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플] "정산금 수억 원대""판매처 정리하겠다"…벼랑 끝 몰린 중소 셀러들

어환희, 김민정 2024. 7. 25.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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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에서 각종 식재료를 판매하는 중소사업자 정모씨는 한두 달 전쯤 티몬과 위메프로부터 프로모션 행사를 여러 차례 제안 받았다. 당시 여러 업무가 겹쳐 거절할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천만다행인 일이었다. 정씨는 “정산금이 한 번 묶이면 한 플랫폼 당 최소 5억~10억 원은 묶이는 거라 정말 힘들어졌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정씨 지인 중에는 프로모션 행사에 대출까지 받아 참여한 사람도 있었다. 현재는 대금은 대금대로 못 받고, 협력사에 지급해야 할 금액까지 있어 매우 곤란한 상황이라고 했다.

티몬·위메프의 판매대금 미정산 사태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수많은 중소 판매자들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소비자 뿐 아니라 판매자들의 피해 또한 커질 조짐이 보이자 정부는 급히 대책 마련에 나섰다.

큐텐 그룹의 티몬과 위메프 판매대금 정산 지연 사태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티몬 본사의 모습. 뉴스1

이게 왜 중요해


티몬·위메프 등 큐텐그룹 계열사에 입점한 업체는 6만여 개다. 이중 상당수는 판매 대금 정산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존폐 위기에 놓이는 중소사업자다. 티몬에서 가공식품을 판매하는 사업자 A씨는 “받아야 할 정산금이 수억 원대다. 이달 말까지 못 받게 되면 정말 힘든 상황이 될 것 같아서 참담하고 두렵다”고 털어놨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아주 영세한 여행사들은 사실 티몬에 입점조차 쉽지 않다. 직원 20~30명 규모의 중간급 업체들이 그나마 입점했을 텐데, 여행 상품의 특성상 정산금이 밀리면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큰 피해를 입지 않은 사업자도 속속 발을 빼고 있다. 티몬·위메프는 물론 다른 판매처들도 정리하고, 좀 더 믿을만한 플랫폼 중심으로 사업을 이어가려는 분위기가 강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소 판매자는 “일단 티몬·위메프는 판매를 중단했다. 현재 플랫폼 열 곳 정도를 (판매처로) 이용하고 있는데, 대형 플랫폼 몇 곳만 남기고 정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생각에 다른 판매자들도 최대한 안전한 판매처를 찾아 이동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25일 오전 서울 강남구 위메프 본사에서 정산 지연 사태 관련 고객들이 환불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사태는 왜?


국내 최초 오픈마켓인 G마켓 창업자 구영배 큐텐 대표의 무리한 사업 확장이 독이 됐다. 구 대표는 물류 자회사 큐익스프레스의 나스닥 상장을 목표로 자산보다 부채가 많은 자본잠식 상태의 1세대 이커머스들을 인수해 왔다. 2022년 티몬 인수를 시작으로 이듬해 위메프와 인터파크 커머스, 올해 AK몰과 미국 이커머스 플랫폼인 위시를 사들였다. 재무상황이 열악한 기업들을 인수하면서 그룹 전반의 유동성(자산을 현금화할 수 있는 능력)은 말라갔다.
박경민 기자


이번 사태가 벌어지기 직전에 티몬·위메프가 중소 판매자들을 상대로 선불충전금, 상품권 선주문 후사용 할인 이벤트 등 각종 행사를 진행했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국내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정산이 늦어지다 보니 행사를 통해 융통할 자금을 확보하려 했던 것 같다”며 “아무것도 몰랐을 판매자들 입장에선 사실상 사기나 다름 없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예방책 있나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공정거래법으로 해결하긴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24일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미정산 문제는 민사상 채무 불이행 문제라 공정거래법으로 직접 의율이 어렵다”고 말했다. 25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정산을 위해 유입된 자금은 정산에만 사용될 수 있도록 은행 등 금융회사와 에스크로 계약 체결을 유도하는 등 판매자 보호를 위한 정산자금 관리체계 강화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동일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한국유통학회 회장)는 “플랫폼과 입점 사업자(판매자) 간의 관계는 단순 거래나 중개가 아니다. 지불 결제를 통한 구매대행 역할이 들어가 있는 만큼 정산이 주기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이번 사태로 취약점이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25일 서울 강남구 티몬 본사 앞에서 내용 증명 등 우편물 도착 안내문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정치권에선 ‘온라인플랫폼법’(이하 온플법)이 신속히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25일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제2의 머지포인트 사태가 우려되는데, 정부는 대책이 없다”면서 “온라인플랫폼법, 전자상거래법 등 관련 법률의 조속한 제정과 개정을 신속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22대 국회에서 발의된 온플법(5개 법안)은 크게 두 가지 축으로 나뉜다. 대형 온라인플랫폼의 독점을 규제하는 것이 하나의 축이고, 다른 한 축은 플랫폼 입점 사업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공정 거래 부문이다. 홍대식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사태는 티몬·위메프 서비스의 안정성 측면에서 드러난 문제점인 만큼 정산 주기 모니터링 등의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온플법은 입점 사업자의 권익 보호를 위한 측면이 있지만, 오히려 자국 플랫폼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우려도 있는 만큼 충분한 컨센서스(합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어환희·김민정 기자 eo.hwa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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