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 그려 선물했는데, 어머니가 한숨을 쉬셨습니다

박승일 2024. 7. 25.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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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도 여자였다... 생신 맞아 한 달 넘게 그린 초상화, 집안 구석에 방치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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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일 기자]

지난해부터 그림을 배우고 있습니다. 전문적으로 미술교습소에서 레슨을 받으며 유화를 시작했습니다. 사실 경찰관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은 다소 낯설고 상상이 안 됩니다. 저도 시작하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막상 도전해 보니 생각보다 재밌고 집중도 잘됩니다. 그리고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던 일상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경찰공무원으로 입문한 뒤 17년을 내근(사무직)으로 근무했습니다. 그러다 지난 2019년 하반기부터 현장 근무(지구대, 파출소)를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매일 술에 만취한 사람이 있는 112 신고처리 현장에서는 특히나 힘들었습니다. 그들은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명을 해도 술에 취한 상태라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많아지면서 조금씩 지쳐갔습니다.

그리고 한 달에 서너 번씩 변사 사건 현장을 출동하면서 죽음에 대한 복잡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번아웃이 찾아왔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림을 시작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매우 만족스럽습니다(관련 기사: 20여 년 현직 경찰인데 요즘 유화 배웁니다, 왜냐면 https://omn.kr/27316 ).

그렇게 유화를 시작한 지 1년이 되었습니다. 그림을 전문적으로 그려본 적이 전혀 없던 내게 미술 교습소 원장님은 연필과 목탄으로 도형 그리기를 시켰습니다. 진짜 쉽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빛의 방향에 따라 명암을 표현하고 완성되어 가는 과정이 신기했습니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림을 시작했습니다.

현재 초상화만 그리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생각입니다. 어려서부터 사람의 표정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변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래서 초상화만 그리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8명의 초상화를 완성했습니다. 모두 주변 사람들입니다. 앞으로 100명을 완성해 전시회를 여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 어머니 초상화 그림을 배우기 시작해 처음으로 그린 어머니 모습
ⓒ 박승일
 
첫 번째로 완성한 초상화는 어머니였습니다. 올해 3월 초 어머니 생신에 맞춰 1월 말부터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계획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더욱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생신에 맞춰 첫 작품을 완성하고 어머니께 선물해 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유화의 특성상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최종 완성하기까지는 한 달여가 소요됩니다. 기본적으로 유화는 기름으로 그리다 보니 물감이 마르고 굳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입니다. 다른 재료로 그림을 그려보지 않았지만, 유화만큼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 없는 듯합니다.

아크릴 물감으로도 그림을 그려봤는데, 그건 그리면서 바로 마르다 보니 수채화보다도 빨리 마릅니다. 그래서 짧은 시간 내 완성할 수 있지만 유화는 매우 천천히 마르고, 그만큼 시간과 공을 더 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점이 맘에 들어 유화를 시작했었고 지금도 가장 큰 매력이라고 봅니다.

처음에 '어머니의 어떤 모습을 그릴까'를 두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 80대 후반인 어머니의 모습을 그려서 선물하는 것은 괜히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휴대전화에 저장된 가장 젊었을 때의 모습을 그리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60대 후반의 모습이었습니다.

사실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이 많지도 않습니다. 어려서부터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하셔도 제가 싫다고 했던 탓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죄송하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아무쪼록 몇 장 없는 어머니의 사진 중에 가족들이 함께 수목원에 놀러 갔을 때 찍었던 사진을 그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이후 그림이 완성되기까지는 한 달 반이 걸렸고 간신히 어머니 생신에 맞춰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생신 맞춰 꽃다발과 그림을 이쁘게 포장해 고향을 갔습니다. 그림 크기가 20호(61㎝*71㎝)였는데, 포장은 돼 있었지만 누가 봐도 액자임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얼마나 감동하실까? 설마 펑펑 우시는 건 아니겠지? 언제 그림을 배워서 선물까지 했는지 기뻐하시겠지?'라는 다소 들뜬 마음으로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자신 있게 선물을 내밀었습니다.

그림을 몇 초간 아무 말 없이 보시던 어머니

"어머니. 생신 선물이에요. 한번 풀어 보세요"라고 하자, 어머니의 반응은 예상과는 달랐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나는 현금이 좋은데 매번 현금을 주더니 오늘은 액자라니, 난 현금이 좋은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어머니께서는 몇 년 전부터 어떤 선물보다도 현금으로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누나들도 현금으로 드리는 게 좋겠다고 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손자, 손녀들 용돈이며 노인학교에서 친구분들과 식사도 하고 살 것도 의외로 많아 현금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문구점에서 포장지를 사고 직접 포장한 거라고 몇 번을 말한 탓인지 어머니께서는 조심스럽게 개봉하셨습니다. 그렇게 한 달 반 동안 그린 그림이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림을 몇 초간 아무 말 없이 보시던 어머니께서는 긴 한숨을 내쉬셨습니다.

"아니, 누가 그림을 실제와 똑같이 그리냐? 그래도 여자인데 이쁘게 그려야지."
"아니 어머니, 그림은 실물과 똑같이 그리는 거죠. 제가 사진 보고 그린 겁니다."

"말을 말아라 그냥. 저기 베란다 에어컨 실외기 옆에 갖다 놓아라."
"네? 밖에 그림을 두라고요? 감동 아니세요?"

"아니 지금보다 더 이쁘게 그렸어야지. 나는 하나도 맘에 안 든다."
"그래도 한 달 반 동안 열심히 배워서 그렸는데 서운합니다."
 
▲ 어머니 초상화 어머니의 초상화는 베란다 늙은 호박 옆에 방치되었다.
ⓒ 박승일
 
이를 말없이 지켜보던 누나는 어머니 편에 서서 제게 한마디를 건넸습니다. 그러더니 직접 액자를 베란다 안쪽 구석에 늙은 호박과 함께 놓았습니다.

그 뒤로 서너 달이 지났지만, 지금까지도 그림은 그 자리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어머니께서 왜 그렇게 서운해하셨는지 알 듯합니다. 

생각해보니, 어머니께서는 제 어머니이기 이전에 한 명의 여성이자 '여자'였습니다. 비록 나이는 들고 얼굴 여기저기에는 세월의 주름이 많아지셨습니다. 하지만 분명 어머니께서도 젊은 청춘의 시절이 있으셨고, 그때는 분명 아름다웠을 겁니다.

그걸 왜 지금에야 알았을까요. 그래서 그때의 모습을 그림으로 다시 한번 도전해 볼까, 합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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