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 2024 우승 스페인의 근간, 이 리그에 있다
[김형욱 기자]
월드컵과 더불어 지상 최대 축구 축제로 정평이 난 유로 2024가 스페인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2010년을 전후해 전 세계를 호령했다가 세계 축구의 흐름을 따르지 못해 오랫동안 높은 곳까지 도달하지 못했던 스페인이 12년 만에 메이저 타이틀을 되찾은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의 근간에는 '라리가'가 있다.
라리가는 스페인 최상위 프로축구 리그의 명칭이다. 우리나라 선수의 진출이 타 리그에 비해 적은 편이어서 명성에 비해 우리에게 자세히 알려져 있진 않다. 라리가의 절대 양강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정도가 익히 알려져 있을 뿐이다. 더구나 2010년대 세계 축구계를 양분했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리오넬 메시가 각각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서 꽤 오랫동안 활약했기에 라리가의 타 클럽에 관해서는 시선이 가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한편 범죄 다큐멘터리와 더불어 스포츠 다큐멘터리에서 극강의 포스를 뿜어내는 넷플릭스가 라리가를 가만히 놔뒀을 리가 없다. 이미 F1과 테니스, 미식축구, 육상, 치어리더, 나스카를 자세히 다뤘으니 말이다. 축구의 경우 각 리그의 주요 클럽들과 유명 선수들을 다룬 바 있다. 그리고 드디어 라리가 2023~2024 시즌을 다룬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라리가 24시>가 공개됐다.
작품은 <F1, 본능의 질주> 스타일을 상당 부분 가져온 듯하다. 구단의 고위급 관계자, 감독과 선수들이 나와 도시와 사람들 그리고 구단을 나름의 방식으로 소개하고 20개 클럽이 각각 38경기를 치르는 동안 분기점이 될 만한 경기와 순간들을 간략하게나마 보여준다. 축구에 대해 조금만 알아도 익숙한 이들이 다수 출현하니 그 자체로 흥미진진하거니와, 딱히 이야깃거리가 없는 클럽은 아예 나오지도 않으니 재미를 보장한다. 그야말로 핵심 중의 핵심만 쏙쏙 뽑아 보여준다.
▲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라리가 24시> 포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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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그랬지만 라리가 2023~2024 시즌 동안에도 많은 일이 있었다. 최상위권에서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돌풍, 유럽대항전 진출을 위한 상위권의 치열하기 이를 데 없는 싸움, 스페인 각지에서 전쟁처럼 펼쳐지는 전통의 라이벌전, 당연한 듯 누리고 있는 것들을 잃어버리는 2부 리그 강등을 피하기 위한 혈투까지.
클럽에 오랫동안 헌신한 감독의 사직, 역시 클럽에 오랫동안 헌신한 선수의 은퇴, 성적 부진으로 해고당하는 감독, 온갖 클럽을 수없이 오가는 선수들의 이야기도 중요하다. 그런가 하면 클럽의 연고지가 크든 작든 클럽의 성적에 따라 지역 전체 분위기가 크게 좌우된다. 예상 성적보다 좋으면 지역 전체가 들썩거리며 분위기가 끌어 오르고 좋지 않으면 지역 전체의 분위기가 침체된다.
라리가 2023~2024 시즌 최고의 아웃풋은 단연 '지로나 FC'의 최상위권 도약이다. 1930년에 창단해 불과 몇 년 전인 2017년 최초로 라리가에 입성했다가 두 시즌만에 2부 리그로 내려갔지만 세 시즌만에 다시 라리가에 입성했고 이후 다시 세 시즌만에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사상 최초의 챔피언스리그 진출 업적을 세웠는데, 2021년 부임한 미첼 산체스 감독의 공이 절대적이었다. 이런 형국이라면 그는 오래지 않아 빅클럽의 감독으로 갈 게 분명하다. 그 이후 클럽이 어떻게 흘러 가느냐가 중대 갈림길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FC 바르셀로나의 재정 위기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좋은 선수를 데려오긴커녕 오히려 좋은 선수를 팔아야 하는 상황이고 데리고 있는 선수들 연봉도 깎아야 하는 형편이다. 와중에도 2021년 클럽의 레전드 사비 에르난데스가 감독으로 부임해 라리가 우승도 차지했다.
하지만 2023~2024 시즌에 성적이 빼어나지 못하자 자진 사임을 시사한다. 그때 라포르타 회장이 붙잡았고 사임을 철회한다. 그런데 얼마 못 가 사비는 해고당하고 말았다.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전개다. 라리가를 넘어 세계 최고 명문 클럽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아닌가 싶다.
▲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라리가 24시>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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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3강 바로 아래 위치하며 유로파리그의 절대 강자로 군림한 세비야 FC가 크게 흔들린다. 근 20년 동안 10위권 밖으로 나간 적이 없건만 2022~2023 시즌에 이어 2년 연속으로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18년 만에 돌아온 전설 세르히오 라모스가 제 몫을 해줘도, 감독을 두 번이나 바꿔도, 클럽의 상징 이반 라키티치를 벤치로 보내도 바뀌는 게 없었다. 이번 시즌도 이번 시즌이지만 다음 시즌이 더 큰 문제다. 계속 이런 식이라면 전통의 강자이자 명문 클럽으로서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아틀레틱 클루브와 레알 소시에다드는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편이지만 라리가에서 잔뼈가 굵은 전통의 명가이자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최대 라이벌이다. 그들은 일명 '북부의 왕'을 차지하려 매년 혈투를 벌인다. 외국인 선수를 적절히 데려와 좋은 성적을 내는 레알과 달리 아틀레틱은 바스크 순혈주의 정책을 시행하고 있기에 성적 유지에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둘은 사이좋게(?) 좋은 성적을 내고 있으니 서로 좋은 시너지를 내고 있다고 본다.
그런가 하면 셀타 비고와 카디스 등은 시즌 중후반까지 치열한 강등권 싸움을 벌이다가 극후반에서 셀타는 치고 올라간 반면 카디스는 주저앉고 말았다. 승정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만큼 그들끼리의 경기에서 강등권 승부가 판가름 났을 것이다. 단 한 골의 싸움이었을 게 분명하다. 강등권 승부에선 공격적이기보다 수비적으로 임하는 게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엄청난 돈과 명예와 기쁨, 그리고 반대되는 상황이 극명하게 갈렸을 것이다.
▲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라리가 24시>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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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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