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세법개정]상속세 최고세율 50→40%로 인하…자녀공제 5억원으로
정부가 상속세 최고세율을 현행 50%에서 40%로 내리고, 자녀공제액을 5억원(현재 5000만원)까지 확대한다. 낡은 세제를 재정비해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수준으로 세 부담을 낮추려는 포석이다.
정부는 25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2024년 세제개편안’을 발표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상속세 개편에 대해 "변화한 경제 여건을 반영해 낡은 세제를 정비해 경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24년 만에 세율 과표 조정… 대주주 할증도 없애
정부는 먼저 세계 최고 수준인 상속세 세율을 조정하기로 했다. 기존 50%의 최고세율을 40%로 하향 조정하고, 10% 세율이 적용되는 최저 과세표준 구간을 1억원에서 2억원으로 확대하는 것이 이번 상속세 개편의 골자다. 상속세제는 1999년 세법 개정 때 최고 과세표준 구간을 '50억원 초과'에서 '30억원 초과'로 낮추고 최고세율을 45%에서 50%로 높인 이후 현재까지 유지돼 왔다.
정부는 ‘30억원 초과’의 최고 과표구간을 없애고 ‘10억원 초과’(40%), ‘10억원 이하’(30%), ‘5억원 이하’(20%), ‘2억원 이하’(10%)의 4단계로 개편한다. 현재 한국의 상속세 세율은 5단계의 과표구간에 따라 10~50%의 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현행 최고세율 50%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일본(55%)에 이어 2위로 회원국 평균 최고세율(26%)보다 2배가량 높다. 대기업 최대주주가 적용받는 할증평가를 포함하면 실질 최고세율은 60%에 달한다.
이번 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최고세율이 40%로 인하되고, 대기업 최대주주가 적용받아온 할증평가(20%)도 폐지되면서 상속세 부담은 크게 완화될 전망이다.
30억원을 초과하는 과표 구간 조정으로 혜택을 보는 대상은 2400명이다. 국내에서 기업을 경영하는 오너 대부분이 이 구간에 속한다. 기업 경영자들이 고령화하고 이들의 상속세 준비가 본격화하는 상황에서 2000년 이후 24년째 묶여 있는 상속세제를 효율적으로 개선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다만 과세표준 30억원을 초과하는 과세 대상자는 전체의 5%에도 미치지 못해 초부자를 위한 감세라는 비판도 동시에 나오고 있다.
자녀공제 한도 5억원으로…가업 승계 稅 부담도 완화
자녀에게 재산을 상속할 때 적용되는 공제 금액도 1인당 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상향된다. 상속재산이 25억원이고 배우자 1명, 자녀 3명인 경우 이번 개정을 통해 22억원을 공제받아 4000만원의 상속세를 내게 되는데 이는 종전(4억4000만원)보다 4억이 적은 것이다. 정정훈 기재부 세제실장은 “중산층 다자녀 가구의 세 부담 경감과 물가 자산가격 상승 등을 감안해 상속세 자녀공제 금액을 상향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괄공제와 배우자 공제 금액 상향은 이번 개편안에 담기지 않았다. 상속세 공제 한도는 1997년 이후 28년째 10억원(일괄공제 5억원+배우자 공제 5억원)에서 제자리였다. 이 기간 경제규모와 자산 가격은 크게 불어났다. 1997년 상속세 공제한도 개정 이후 국내 국내총생산(GDP)은 4배 이상, 서울 아파트 한 채 가격(34평 기준)은 5.7배 상승했지만 상속세는 9.7배 증가했다.
이번 상속세 개정에 따른 세 감소 효과는 5년간 4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정정훈 실장은 "최고세율 인하에 따라 1조8000억원, 자녀공제 상향에 따라 1조7000억원 등의 세 부담 감소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기업 승계 과정에서 세 부담도 완화한다. 밸류업을 위해 노력한 기업에 대해 가업상속공제 한도를 현행 600억원에서 1200억원으로 2배 확대한다. 가업상속공제는 연매출 5000억원 미만인 중소중견기업을 10년 이상 경영한 오너가 회사를 물려줄 때 최대 600억원까지 상속재산을 공제해 주는 제도다.
정부는 밸류업, 스케일업, 기회발전특구 창업 이전 기업에 한해 연매출 5000억원 미만 조건도 면제해 중소중견기업 전체(상호출자제한기업은 제외)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공제 한도도 현행 600억원에서 1200억원으로 2배로 늘려준다. 밸류업 우수기업 여부는 5년간(2025~2029년) 당기순이익 대비 주주환원(배당금·자사주 소각액) 비율이 업종별 평균의 120% 이상인지를 기준으로 삼는다.
밸류업뿐만 아니라 스케일업 우수기업도 마찬가지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5년간(2025~2029년) 매출액 대비 투자액 또는 연구개발(R&D) 지출액 비율이 5% 이상이면서 연평균 증가율이 5% 이상이어야 한다. 5년간 고용을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도 충족해야 한다. 기회발전특구에서 창업하거나 수도권 과밀억제권역 내 기업이 기회발전특구로 이전한 경우도 동일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단 기회발전특구 창업 이전 기업은 한도 없이 가업상속공제를 적용받을 수 있도록 세 부담을 더 완화했다.
받은 만큼 내는 유산취득세 손 못 대…종부세도 빠져
올해 세제 개편 대상으로 주목을 받은 유산취득세 전환은 이번 세법개정안에는 담기지 않았다. 현재 상속세는 내가 실제로 물려받은 재산과 관계없이 모든 유산에 과세하는 방식이다. 상속세는 금액이 커질수록 세율이 높아지는 누진세 체계이기 때문에 현행 유산세 방식이 세 부담이 더 높다.
예를 들어 내가 1억원을 물려받고 내 형제가 50억원을 물려받으면 총 유산액이 51억원이기 때문에 두 사람 모두 최고세율 50%를 부과받게 된다. 가족 단위로 연대 납세 의무를 져야 하는 이 같은 전근대적인 과세 체계가 대폭 손질돼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기재부는 "이번 세법개정안에는 유산취득세 도입을 담지 않았지만 개편 작업은 앞으로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종합부동산세 개편안도 빠졌다. 최상목 부총리는 "윤석열 정부 들어서 종부세에 대해서는 부담을 낮추기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고 아직도 개선해야 할 사항들이 있다"면서 "근본적인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공감하고, 이를 위해서는 지방재정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민해야 하기 때문에 이번 세법개정안에는 담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방에 전액 교부되는 종부세가 갑자기 줄어들 경우 지방재정에 타격이 클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최근 서울을 중심으로 주택 가격이 급등하면서 부동산 세제 개편이 시장 불안을 부추길 수 있다는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발표된 15개 세법개정안은 내달 9일까지 입법예고 후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9월2일 이전 정기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이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 의결 절차를 거친 뒤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면 2025년 1월1일자로 시행된다. 하지만 거대 야당이 상속세 완화를 비롯한 주요 개정안을 부자감세라며 반대하고 있어 여소야대 국회 통과에 난항이 예상된다.
세종=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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