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에 다 물려주려다…‘미디어 황제’ 머독, 세 자녀와 상속분쟁

이승호 2024. 7. 25.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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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과 슈퍼모델 출신 제리 홀의 결혼식에서 머독(가운데)과 장남 라클런(머독 왼쪽), 차남 제임스가 함께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호주 출신의 세계적인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93)이 자녀 3명과 9월부터 법정 다툼을 벌이게 됐다. ‘미디어 제국’의 권력을 장남에게 몰아주려는 머독의 움직임에 나머지 자녀들이 반대하면서다.

2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머독 일가의 갈등은 지난해 말 시작됐다. 머독이 자신의 미디어 그룹 상속과 관련한 가족 신탁(family trust) 규정 변경을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자녀들의 동의를 얻으려고 하면서다.

머독은 자신이 2018년 후계자로 지명한 라클런에게 상속 권한을 몰아주는 방향으로 신탁 조건을 바꾸려 한다. 지난해 9월 신문·출판 기업 뉴스코프와 방송 기업 폭스코프 회장 직을 모두 라클런에게 물려줬는데, 이 지위를 자신의 사후에도 라클런이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 생각이다.

현재의 가족 신탁에선 머독이 사망하면 머독이 가진 경영권을 네 명의 자녀가 넘겨받게 돼 있다. 머독의 첫번째와 두번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딸 프루던스(66)·엘리자베스(56), 아들 라클런(53)·제임스(52)다. 신탁에 따르면 이들 4명은 머독이 숨진 뒤엔 회사의 미래에 대해 동등한 발언권을 갖게 된다.

하지만 머독은 정치적으로 중도 성향인 세 자녀(프루던스·엘리자베스·제임스)의 간섭 없이 회사가 운영돼야 그룹의 보수적인 미디어 편집 방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의 편집 방향이 유지될 때 회사의 상업적 가치를 보호할 수 있어 다른 자녀들에게도 이익이고, 이를 위해선 자신의 뜻에 동조하는 장남에게 경영권을 몰아줘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아버지의 변심에 세 자녀는 강력히 반발하며 신탁 규정 변경 움직임을 인정하지 않고 소송에 나섰다. 지난 6월 열린 아버지의 5번째 결혼식에도 불참하며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지난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호주 출신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왼쪽)이 은퇴한 분자 생물학자 엘레나 주코바와 다섯 번째 결혼식을 올렸다. AP=연합뉴스

관련 재판은 9월 시작될 예정이고, 양측은 모두 호화 변호인단을 꾸린 것으로 전해졌다. 신탁 변경을 주관하는 미국 네바다주 유산관리위 측은 머독이 선의와 오로지 상속인들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면 신탁을 수정할 수 있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머독은 폭스뉴스와 월스트리트저널, 뉴욕포스트 등 미국 미디어는 물론 더타임스 등 영국과 호주의 주요 신문과 TV 방송을 거느리고 있다. 미 경제잡지 포브스에 따르면 머독의 재산은 지난해 기준 173억 달러(약 23조8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고령인 머독의 나이를 고려할 때 이번 법정 다툼은 경영권과 관련한 ‘최후의 싸움’이 될 수 있다는 게 NYT의 전망이다. 그동안 머독의 두 아들은 차기 미디어 황제 자리를 놓고 오랫동안 다퉈왔다.

머독은 당초 제임스를 후계자로 생각하고 각종 사업을 맡겼지만, 부진한 실적을 내자 2018년 라클런에게 그룹 미래를 맡겼다. 하지만 이에 불만을 품은 제임스가 머독 사후 두 누나를 설득해 ‘형제의 난’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전망이 파다했다.

지난 18일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이 참석해 행사를 참관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머독의 두 아들은 정치 성향도 상반된다. 라클런은 폭스뉴스 앵커가 인종 혐오 발언을 할 때 “잘한다”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아버지 머독과 함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해 왔다. 반면 민주당 지지자인 아내의 영향을 받은 제임스는 폭스뉴스 대표로 진보 성향의 CBS방송 사장 출신 인물을 앉혔다. 2020년 대선에서 아내와 함께 조 바이든 후보에게 100만 달러 이상을 기부했다.

NYT는 “머독 가족 간 다툼의 근본적인 배경에는 정치와 권력이 있다”며 “트럼프가 부상하는 동안 머독과 라클런은 회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폭스뉴스를 더 오른쪽으로 밀어붙이는 등 긴밀하게 발을 맞추며 나머지 세 자녀를 점점 불편하게 만들었다”고 전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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