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중앙] 인터뷰 | "중산층 70% 육성? 불가능한 얘기…촘촘한 계층 사다리정책 내놔야"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이 본 尹 정부 중산층 정책
“저소득층에 기회 주는 ‘서울런(learn) 프로그램’ 인상적”
“尹정부의 조세정책 중 상속세·종부세 개편에는 공감대”
지난 6월, 몇몇 경제지에 정부의 하반기 국정정책 발표 내용을 예측하는 기사가 실렸다. 정부가 “윤석열 대통령 임기 내 △국민소득 5만 달러 달성 △중산층 70% 육성 △수출 5대 강국 도약 등 경제 비전을 확정하고, 구체적 로드맵을 담은 경제 3개년 계획을 다음달 발표”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7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및 역동경제 로드맵 발표’회의에서는 ‘2035년까지 공공임대 최대 5만 호, 민간임대 10만 호 이상 공급’ 등이 있을 뿐 ‘중산층 70% 육성’과 관련된 구체적 정책은 없었다. 월간중앙과 만난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은 “정부가 내놓은 중산층 70% 육성은 과거부터 지금껏 모든 정부마다 얘기하는 수백 가지 국정 정책 과제 중 하나일 뿐”이라며 “중산층 비중보다 중산층을 넓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지난 20년간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국회의원 보좌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부소장으로 활약한 민생 정책 전문가다.
윤 정부의 대표적인 중산층 정책이 있다면?
“중산층 정책 자체가 없다. 경제지들이 하반기 국가정책 목표로 중산층을 70%까지 끌어올리겠다, 이런 정부 발표를 기사로 낸 건 봤지만 아직까지 내놓은 게 없다. 국민소득 5만 달러 달성하겠다는 목표도 내걸긴 했는데, 국민소득이라는 것이 가만히 앉아서 저절로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지금 대통령이 임기 내에 5만 달러 달성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중산층 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사회통합”
중산층의 기준을 어떻게 보나?
“우리나라 중위소득은 75~200%다. 2인과 3인 가구를 기준으로 했을 때 75% 구간에는 2인 가구 약 270만원, 3인 가구 350만원이 된다. 200% 구간에는 2인 가구가 700만원, 3인 가구는 900만원을 살짝 넘는 정도다. 이 소득 구간 내에 있다면 중산층이다. 문제는 중산층 기준 범위가 넓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도 보유 자산 등에 따라 편차가 크다는 것이다. 결국 소득 기반 중산층 개념, 자산 기반 중산층 개념을 따로 잡아서 본 다음에 양측을 크로스 체크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중산층 정책에서 중요한 것을 꼽는다면?
“중산층이 두꺼워진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거라고 할 수 없다. 하층을 끌어올려 중산층으로 진입시킨다면 가장 좋지만, 반대로 상층이 무너지면서 중산층으로 내려앉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도 중산층이 두꺼워졌으니, 좋은 현상이라 할 수 있나? 아니다. 그래서 중산층 정책은 본질적으로 사회통합 관점이 중요하고, 결국은 사회이동이 가능한 계층사다리 정책이 좋은 정책이다. 중산층 정책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문제의식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걸 저는 ‘가난한 노동자 자녀들에게 미래 산업과 관련된 교육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로 정리하고 싶다. 가장 원칙적이고 바람직한 중산층 확대 정책이고, 이렇게 했을 때 사회통합에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글로벌 경제 흐름과 산업 구조 변화의 흐름을 고려하고 거기에 올라탄 교육정책이 되, 반드시 계층사다리 정책의 형태를 담고 있어야 한다.”
예로 들 만한 정책이 있나?
“이런 문제의식이 담긴 정책으로 ‘계약학과’라는 직업교육제도가 있다. 대학과 기업이 협력해서 맞춤형식으로 인재를 키우는 방식이다. 현재는 산업계 수요만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저소득층 같은 취약층까지 확대해서 반영한다면 굉장히 이상적인 계층사다리 정책이 될 것 같다.”
역대 정부에서 실시한 중산층 정책들로 어떤 것이 있나?
“모범적인 정책들을 몇 개 뽑아본다면, 먼저, 이승만 정부의 농지개혁과 의무교육 제도가 있다. 박정희 정부의 숙련공 양성 정책과 직업훈련원 정책, 국산 부품화 정책인 ‘계열화 촉진법’이 있다. 그리고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정보 격차 해소 정책을 들 수 있다. 제가 언급한 이 정책들엔 공통점이 있다. 바로 계층사다리 형태의 정책이라는 점이다.”
각 정책들은 어떻게 계층사다리로 작동됐나?
“이승만 정부 정책부터 보면, 교육법이 1949년에 만들어졌다. 의무교육을 실시해 문맹률을 낮추려는 목적이다. 당시 인구 대부분은 농민이거나 소작농일 때다. 학교에 보내봤자 출세도 못하고 평생 지주 밑에서 살아야 하니 교육에 관심이 없다가 1950년 농지개혁으로 땅이 생기니까 교육열이 오르고, 의무교육으로 문맹률이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사회 계층 간 이동이 대거 시작됐다.
박정희 정부는 숙련공 양성 정책의 일환으로 공고를 늘리고, 직업훈련원을 만들어 국가가 나서서 고급 기술직 종사자를 배출했다. 직업훈련법이 1967년에 제정되는데, 직업훈련원의 주요 대상자가 중졸 후 사회에 조기 취업하는 사람들이었다. 중학교까지밖에 못 다닌 사람들을 대상으로 당시 고급기술에 근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보장해준 거다. 산업 정책이지만, 교육 정책이자 계층사다리 정책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국산 부품화 정책인 ‘계열화 촉진법’이 더해진다. 이 정책으로, 중소기업이 탄탄해지면서 중산층이 두꺼워지는 계기가 됐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시행한 정보 격차 해소 정책의 핵심은 컴퓨터 보급이었다. 당시 컴퓨터는 중상류층만 가질 수 있었는데, 정보화 사업을 명분으로 학교마다 전산실을 만들고 필요한 컴퓨터 장비를 국가가 주도해서 후원했다. 특히 농어촌 지역, 장애인, 저소득층, 장·노년층을 대상으로 집중 지원하고 관련 교육을 실시해 취약계층의 인터넷 이용률과 컴퓨터 보급률을 높였다. 격차를 줄이는 정책으로 교육의 기회를 넓히고 전체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尹 정부 “상속세·종부세 개편에는 공감”
“우리가 편의상 저기술, 중기술, 고기술, 첨단기술 등 4단계의 기술 수준이 있다고 했을 때, 하나씩 기술 수준을 올리는 게 좋은 정책의 핵심이다. 저임금은 중임금으로, 중임금은 고임금으로, 고임금은 초고임금이 되는 역동적인 이동성이 관건이다. 중산층 비중보다 중산층을 넓히는 좋은 정책이 사회에 자리잡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요즘 서울시에서 하고 있는 ‘서울런(learn)’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취약층 자녀들에게 서울시에서 온라인으로 사교육을 시켜주는 건데, 사교육을 금지하는 정책보다 훨씬 더 좋은 정책이다. 그리고 요즘 한국적 현실에서 각광 받는 산업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가 있지 않나. 예를 들어 영상 플랫폼, 반도체, 2차 전지, 웹툰, 방산, AI 등이다. 이런 분야와 관련해 저소득층의 교육 기회를 많이 연결시켜 줄 수 있다면 그게 좋은 정책이다.”
정부는 ‘중산층을 위한 조세 정책’으로 상속세와 종부세 개편을 얘기하고 있다. 이를 두고 민주당에서는 ‘부자 감세’라고 주장한다.
“정치적으로 부자 감세 프레임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예컨대 민주당 내에서 박찬대 원내대표와 고민정 최고위원조차 1가구 1주택, 그러니까 실거주 1주택 종부세 제외 또는 폐지론을 얘기할 정도다. 그 주장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현재 정책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데 대한 공감대가 있다는 거 아니겠나.”
상속세 개편이 왜 필요하다고 보나?
“상속세에 대한 조세 전문가들의 해석 중에 이를 ‘지연된 소득세’라고 보는 평가가 있다. 과거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엔 소득세 파악이 잘 안 됐다. 소득도 적고 조세 시스템도 잘 갖춰지지 않았던 때니까. 그러다 보니 결국 살아 있을 때 소득세 덜 냈던 부분을 죽을 때 한꺼번에 내라, 이런 의미가 있었다는 거다. 그래서 저는 현재 우리나라 상황에 맞춰 상속세 그 자체에 대한 개편의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걸 민주당이 정치적으로 부자 감세 프레임으로 공격할 수는 있으나, 상속세 개편의 필요성 자체는 넓게 공감되는 바가 있다.”
법인세 개편도 필요하다고 보나?
“법인세야말로 한국 진보의 이데올로기적인 편향, 이념적 편향이 담겨 있는 세금이다. 기업체에서 번 돈은 반드시 사람에게 흘러 들어간다. 대주주든, 소수 주주든, 노동자든, 외국인 주주든, 그도 아니면 부분적으로 내부 유보돼서 재투자가 되든, 반드시 누군가 받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에게 일정 세율에 따라 소득세를 책정하면 될 일이다.”
법인세를 낮추는 대신 소득세를 더 내라는 건가?
“법인세를 낮춤으로써 기업 활동은 장려하고 최종적으로 돈을 많이 가져가는 사람한테는 다시 소득세를 통해서 걷자는 거다. 법인세는 자본가 계급에, 소득세는 노동자 계급에 ‘때린다’는 생각 자체가 고루한 생각이다. 이 법인세를 보는 시선에 반기업 정서가 반영돼 있다 보니, 법인세를 ‘두들겨 패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다. 기업은 우리 경제를 움직이는 중요한 주체다. 기업의 투자와 고용이 있어야 노동이 있고, 이 노동이 곧 소득증대로 이어진다. 기업이 잘돼야 노동이 잘되는 거다. 지금처럼 지식 기반 자본주의 시대에는 노동자의 소득 증가가 곧 기업의 경쟁력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지금 한국 진보는 은연중에 노동과 자본은 반드시 대립적인 관계라고 보고 있는데, 반드시 대립적인 관계가 아닐 수 있다. 상생적 측면이 훨씬 많다.”
“종부세 폐지하고 재산세와 통합해야”
종부세 폐지론을 주장하고 있는데….
“종부세를 강화하면 훌륭한 사람이고, 완화하거나 폐지를 얘기하면 거의 적폐의 온상처럼 여긴다(웃음). 2022년 대선 직후에 제가 인터뷰나 토론회에서 관련 발언들을 했다. 종부세는 정권 교체 촉진제였다라고 해서 종부세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었다. 알면 알수록 상당히 무리한 세금이다. 얼마 전 고민정 민주당 최고위원이 종부세에 대해 총체적 재설계를 얘기했던데, 정치인 중에서는 처음 공개적으로 화답한 거라고 본다.”
왜 종부세 폐지를 말하나?
“종부세는 토지분 종부세와 주택분 종부세가 있는데, 문재인 정부 때 주택분 종부세가 약 10배 정도 뛰었다. 2012년 기준 서울 지역 아파트 4채당 1채가 종부세 대상자였고, 서울 전체 주택 10채당 1채가 종부세 대상자가 됐다. 서울 전체 주택이 약 400만 채니까, 약 40만 채 정도가 종부세 대상인 셈이다. 문 정부 출범 때인 2017년 종부세 대상이 33만 명이던 반면 2021년엔 95만 명까지 늘었다. 말이 안 되는 거다. 실패한 정책이다. 민주당 쪽에선 종부세를 초부자세로 여기고 왜 줄이려고 하느냐고 말하는데, 종부세는 더 이상 부자세가 아니다. 현재 집값이 얼마인지, 현행 종부세를 적용했을 때 어떻게 되는지, 현실을 잘 모르니까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종부세를 폐지하고 재산세와 통합해야 한다고 본다.”
- 박세나 월간중앙 기자 park.sen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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