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열리는 파리올림픽, 반년 준비한 중계 포인트는..."
[박장식 기자]
대한민국 선수단이 환희를 준비하는 자리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다. 환희의 현장에도, 그 기쁨을 만끽 후 돌아가는 길에도 그의 목소리가 국민들을 반겨 줬다.
KBS 이재후 아나운서는 어느새 '개·폐막식 하면 떠오르는 이름' 중 하나가 됐다. 그는 지난 2014 소치 동계 올림픽의 폐회식으로 올림픽 개·폐막식 캐스터와의 인연을 맺었다. 30년 만에 대한민국에서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과 도쿄 올림픽을 거쳐, 이번 2024 파리 올림픽까지, 10년째 올림픽의 시작과 끝을 맡고 있다.
그의 말은 누군가에게 힘이 되기도 했다. "평창 비장애인 올림픽을 마칩니다"라는 인사는 패럴림픽을 준비하던 선수들에게 힘을 건넸고, "시청자 여러분은 최고의 스포츠 팬이셨다. 올림픽 시청자 종목의 금메달리스트였다"는 인사는 TV 앞 사람들에게 기쁨을 줬다.
▲ '올림픽' 하면 떠오르는 이름이 된 KBS 이재후 아나운서. |
ⓒ 이재후 제공 |
멋모르고 시작한 첫 중계
축구, 쇼트트랙, 그리고 양궁 등 굵직한 종목을 중계한 이재후 아나운서는 '비바K리그' 등으로 팬들에게 인지도가 높다.
이재후 아나운서가 올림픽 개·폐회식 중계를 그가 맡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KBS의 개·폐막식은 서기철 아나운서가 중계하던 시절, 그는 "아마 세대교체 차원이었던 것 같다"며 지난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폐막식 첫 중계를 회상했다.
그는 "처음에는 멋모르고 중계를 했다. 그런데 되게 좋았다. 한 대회를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각 나라가 보여주고 싶었던 역사·문화·예술을 표현하는 공연을 보는 것 아닌가"라며 "이를 공부해서 전달하는 것이 재미있었다"고 전했다.
"2018년 동계 올림픽이 평창이었잖아요. 소치 동계올림픽 폐막 당시 우리나라에서 처음 열리는 동계 올림픽을 소개했어요. 마음이 묘했습니다."
▲ KBS 이재후 아나운서. |
ⓒ 이재후 제공 |
"폐회식이 끝나고 대회 하이라이트 영상이 나오는데, 내 설명이 굳이 필요하지 않겠다 싶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영상이 길어지니까 PD가 '멘트를 하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선수들이 땀 흘리는 장면, 넘어지는 모습, 우는 장면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려고 제가 아는 수식어에 형용사를 모조리 끌어다 썼어요.
그런데 이제 할 말이 더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결국 '아, 이것이 올림픽입니다'라고 했거든요. 그 말을 하자마자 하이라이트 영상이 모두 끝났습니다. 그때 소름이 돋을 정도로 짜릿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후 그는 리우, 평창, 도쿄, 베이징까지, 10년 동안 다섯 올림픽의 시작과 끝을 함께 했다. 인천과 자카르타, 항저우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강원 동계 청소년 올림픽까지 태극기가 올라가는 큰 대회에 언제나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재후 아나운서는 "인천 아시안게임과 평창 동계 올림픽 때 한국을 어떻게 소개할지, 준비를 많이 하고 기대도 많이 했다"면서 "특히 평창 올림픽은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동계 올림픽이니, 국민들도 기대감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사실 평창 올림픽 때는 일단 추위가 기억에 남았다"라며 "우리나라의 공연 문화, 종합대회의 개·폐막식의 수준이 세계와 비교해서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투입할 수 있는 자원이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대한민국의 수준이 대단하다고 느꼈다"고 전했다.
"공부한 정보, 중계방송 때 하나 잘 써도 다행"
개·폐회식 방송을 준비하는 방법도 있을까. 이 아나운서는 "공연·예술이나 문화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넓게 익히려고 한다"라며 "개최국과 개최 도시를 이해하려 한다.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사·문화적인 사건들과 변곡점들을 주로 익힌다"고 말했다.
그는 올림픽 중계에서 가장 어려운 순간을 출전국 입장으로 꼽았다. 200개가 넘는 올림픽 출전 국가나 지역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외교부나 연구기관, 각 국가에서 직접 내놓은 검증된 자료를 이용해 출전국의 특징을 정리하는데 약 반년 정도가 걸린다.
이재후 아나운서가 고심하며 확인하는 건 '대한민국의 관계'다. 시청자들에게는 대한민국과 해당 국가의 연관성을 흥미롭게 느낄거라 생각해서다. 그는 "결국 한국과의 관계는 어떤지, 6.25 전쟁 때 한국에 파병했던 나라인지, 한국에 인지도가 있는 사람은 누가 있는지를 주요하게 찾는다"고 설명했다.
기억나는 국가 소개는 어디일까. 남아메리카의 국가 '가이아나'를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했다는 이재후 아나운서는 "최근 석유가 발견되어서 경제 성장률이 크게 올랐다는 정보를 찾아 안도했다"며 "사실 찾은 정보를 다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중계방송 때 하나 잘 쓰면 다행스럽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며 말했다.
올림픽 중계를 하고 준비하면서 그간 느꼈던 점은 무엇일까.
"집 앞 커피숍에 앉아서 종목과 나라에 대해 연구하고 조사해서 찾아볼 때,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 쿠베르탱은 '멀리 극동에 사는 나까지 이 올림픽을 깊게 탐구할 줄 알았을까?' 싶은 고민을 해본 적이 있어요. 올림픽은 어마어마한 대회잖아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선수가 이 무대에 서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고요.
사실 수많은 전쟁을 치렀고, 그 전쟁 속에서 이렇게 하다가는 안 되겠다 싶어 만든 것이 고대의 올림픽이었잖아요. 그런 고대 올림픽의 정신이 쿠베르탱이 근대 올림픽을 만든 지금까지도 이어진다고 생각하고요. 올림픽마저 없었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평화, 이웃과의 공존을 실감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재후 아나운서는 도쿄·베이징 올림픽에 이어 이번 파리 올림픽까지 함께 하게 된 송승환 해설위원을 언급했다. 이어 "내가 모르는 것이 많은데도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고, 준비도 철저하게 잘하는 듬직한 해설위원"이라고 강조했다.
▲ 2020 도쿄 올림픽부터 벌써 세 번의 올림픽을 함께하는 송승환 해설위원과 함께. 이재후 아나운서는 "해설집 그 너머를 보시는 분"이라며 송승환 위원을 소개했다. |
ⓒ KBS |
이재후 아나운서는 감탄한 순간으로 2021년 도쿄 올림픽 개회식을 꼽았다. 트레드밀 위에서 고독하게 질주하는 선수가 나오더니, 어느새 미디어 아트와 무용 공연으로 경기장 전체가 꽉 차는 장면이 있었다. 이 장면의 공식적인 설명은 '코로나19 시기 고독하게 훈련하고 연습한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만난다'는 설명이었다.
그때 송승환 위원은 고 이어령 선생이 책으로까지 펴냈던 '축소지향의 일본'을 함께 표현한 것으로 해석했다. 점에서 선으로, 면으로 이어지는 시각적인 모습을 이어령 선생의 말을 빌려 표현한 것.
이재후 아나운서는 "사실 연출자들도 이 해설을 들었다면 '이렇게 해석될 수 있나' 싶었을 것"이라며, "올림픽 개막식과 폐막식 때 주어지는 해설서 너머의 것들을 알려주시는 분"이라고 부연했다.
이재후 아나운서는 중계방송 중에 사용하는 표현도 따로 준비할까. 그는 "방송은 초까지 정확하게 끝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니, 그런 말 만큼은 중계진이 느낀 감정을 미리 완벽히 준비하곤 한다"며 "특히 도쿄 올림픽 때는 대회 중간에 느껴지는 부분을 틈틈이 준비했다"고 말했다.
특히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식 때는 상투적인 '스타디움 오프닝'이 아닌, 대한민국임시정부 항저우 청사를 방문해 '임정 오프닝'을 했다. 그는 "항저우에 임시정부 청사가 있었으니, 그 부분을 꼭 이야기하면 좋겠다 싶어서 직접 방문해 인트로를 찍었다"고 설명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과 2021년 도쿄 올림픽 당시 그가 말해 화제가 된 "비장애인 올림픽을 마친다"는 표현을 두고 그는 "사실 완벽히 맞는 표현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실 장애인도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으니 내 말이 정확히 맞는 표현은 아니었다"라면서도 "원래 올림픽 운동은 패럴림픽까지 연결되어야 하기에 그 부분을 짤막하게 정리한 '방송 적 표현'이었다. 많이들 좋아해 주셔서 감사했다"고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빨리 열리는 올림픽, 기대 부탁드립니다"
이재후 아나운서는 이번 2024 파리 올림픽에서 개·폐막식 중계는 물론 양궁·역도·오픈워터 스위밍·아티스틱 스위밍, 근대5종의 중계에 나선다.
그는 "지상파 3사가 같은 화면에 같은 등장인물을 놓고 전달하는 사람만 다른 것이 올림픽 중계다. 그런데도 전달하는 캐스터와 해설위원에 따라 시청률이라는 성적표가 정확히 숫자로 나오잖냐. 언제나 부담도 되고, 사실 걱정도 크다"고 고백했다.
이어 "이번 KBS의 슬로건이 '함께, 투게더, 앙상블'이다. 한국어, 영어, 개최국인 프랑스어를 함께 써서 '모두 함께한다'는 의미를 담았다"며 "시청자와 함께 호흡하는 중계방송을 만들기 위해서 세심하게 준비를 많이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번 파리 올림픽 개·폐막식도 보고 있으면 종합 공연의 해설집을 보는 듯하게, 무겁지 않게, 시청자들의 눈높이에서 '이런 것도 있네요, 같이 알아가시죠'라는 느낌으로 겸손하게 호흡하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각오를 밝혔다.
"파리 올림픽이 도쿄 이후 3년 만이니 세상에서 가장 빨리 열리는 올림픽입니다. 좋은 중계방송 만들기 위해서 더 노력하고 싶어서 지금까지 있었던 올림픽 중에서 가장 많이 준비했습니다. 즐겁고, 쉽고, 더 편안하면서 박진감 넘치게 중계할 테니 많은 기대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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