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해리스에 '횃불' 넘기자…'거즈' 뗀 트럼프는 막말 포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새 세대에 횃불을 넘기는 것이 전진을 위한 최선의 길이고, 미국을 통합하는 최선의 길이라고 판단했다”며 재선 도전을 포기한 이유를 직접 밝혔다. 자신을 대신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 대해선 “경험 있고 강하며 유능하다”고 했다.
그러자 피격 사건 이후 한동안 통합을 강조해왔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새로운 경쟁 상대 해리스를 향해 “좌파 미치광이(lunatic)”란 막말을 쏟아내며 공격 목표를 해리스 쪽으로 수정했다.
“美, 왕과 독재자가 통치하지 않는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 오벌오피스에서 11분간 이어간 대국민 연설의 핵심은 해리스에 대한 지지와 트럼프에 대한 정치적 심판을 요청하는 데 모아졌다.
그는 “미국의 위대함은 왕과 독재자가 통치하지 않고 국민이 통치한다는 데 있다”며 “민주주의 수호는 어떤 타이틀보다 중요하고 어떤 것도 우리의 민주주의를 구하는 일을 방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여기엔 개인적 야심도 포함되다”며 “나는 이 자리(대통령직)를 존중하지만 내 나라를 더욱 사랑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후보직에서 물러나기로 결정한 이유가 ‘왕과 독재자’로 표현된 트럼프의 재집권을 막는 데 있으며, 그의 재집권을 막기 위해 개인적 야심인 재선 도전을 포기하고 보다 경쟁력이 있는 해리스에게 후보 자리를 내줬다는 의미가 된다.
자신의 역할에 대해선 “(퇴임까지) 6개월간 대통령으로서의 일을 하는 데 집중하겠다”며 “투표권부터 선택권까지 개인적 자유와 시민의 권리를 계속 수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화당 일각에서 제기하는 대통령직 사퇴 요구를 일축하는 말이자, 2020년 대선 결과에 불복했던 트럼프를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견제하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거즈’ 뗀 트럼프, ‘막말 포문’ 다시 열었다
바이든의 연설 직후 트럼프는 지지자들에게 ‘나의 공식 답변’이란 제목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 “바이든과 카멀라가 수백만명의 사람들(불법 이주민)이 우리나라를 침략하도록 허용했고, 우리나라가 재앙(disaster)이 된 것은 모두 그들의 탓”이라며 두 사람을 싸잡아 비난했다.
앞서 바이든의 연설 직전 노스캐롤라이나 샬럿에서 진행된 현장 유세에선 연설 시간 2시간 내내 해리스를 집중 비난하며 공격 목표가 변경됐음을 분명히 했다. 특히 새 경쟁자 해리스에 대한 비난의 수위는 바이든 때보다 높은 편이었다. 트럼프는 지난 13일 발생한 피습 사건 이후 부상을 입은 오른쪽 귀에 거즈를 붙이고 연일 온화한 말로 ‘국민 통합’을 강조해 왔지만, 이날 유세엔 거즈를 떼 버리고 등장했다.
트럼프가 잡은 코드는 ‘색깔론’이었다. 그는 “바이든은 가짜 진보주의자였지만, 해리스는 버니 샌더스보다 더 진보적인 진짜 진보주의자”라며 “마르크스주의 지방검사 해리스의 캘리포니아 사회주의는 아메리칸드림을 영원히 말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해리스가 담당했던 국경문제와 관련 “국경 차르(border czar) 카멀라가 건드리는 모든 게 완전한 재앙으로 변한다”며 “세금으로 불법 입국자에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법안을 지지했던 (해리스 등) 멍청한 IQ 낮은 사람들 때문에 불법 입국이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검사와 범죄자’, ‘미래와 과거’ 프레임 반격
해리스는 ‘검사 대 범죄자’, ‘미래 대 과거’, ‘자유 대 혼란’이라는 핵심 프레임으로 선거판을 재편하려는 모습이다.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 겸 검찰총장 출신인 해리스는 연일 “트럼프는 34건의 중범죄 혐의로 기소됐고, 나는 트럼프의 타입을 잘 안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트럼프와의 유세 맞대결이 진행던 이날은 미래와 과거의 프레임을 강조했다. 그는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에서 흑인 여대생 클럽 ‘제타 파이 베타’ 주최 행사에 참석해 “우리 자녀와 가족, 미래에 대해 전면적으로 공격하는 극단주의자들은 우리를 퇴보시키려고 하지만 우리는 결코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해리스가 트럼프를 비판한 재료로 삼은 건 보수 성향의 헤리티지재단과 전직 트럼프 행정부 출신들이 만든 정책 제안서 ‘프로젝트 2025’다. 트럼프는 해당 보고서에 담긴 정책들이 논란이 될 가능성이 커지자 최근 직접 나서 관련성을 부인하기도 했다.
‘리셋’된 여론 지형…주도권 경쟁 불가피
해리스와 트럼프의 대결이 시작부터 전면전 양상을 보이는 건 여론 추이와 관련이 있다. 이날 공개된 CNN의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는 49% 대 46%으로 해리스를 앞섰고, NPR·PBS의 조사에서도 46% 대 45%의 박빙 우세를 보였다. 반면 앞서 발표됐던 로이터통신의 조사는 해리스가 44% 대 42%로 앞섰고, 모닝컨설트 조사는 다시 45% 대 47%의 트럼프 우세였다.
4건의 조사 결과는 모두 오차범위 내의 수치로 통계적으로 우열의 의미가 없지만, 트럼프의 지지율이 동률에 가까운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경향성은 확인된다.
특히 TV토론 압승과 암살 미수 사건을 발판 삼아 통합을 내세운 성대한 전당대회까지 마친 트럼프의 입장에선 여론의 주목을 끌 대형 이벤트가 사실상 소진된 상황이다. 그러자 트럼프는 해리스의 등장과 함께 즉각 “TV토론을 하자”고 제안했고, 이날 보수 성향의 폭스뉴스는 양측에 9월 17일로 특정한 토론 제안서를 보냈다.
반면 후보자 공식 선출, 민주당 전당대회 등 굵직한 일정을 앞둔 해리스는 상대적으로 침착한 모습을 보이며 지지층 결집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그는 전날 경합주인 위스콘신 방문에 이어 이날 핵심 지지층인 흑인 여성이 주최한 행사에 참석한 뒤 X(옛 트위터)에 “우리는 두드릴 문이 있고, 전화할 사람이 있으며, 통화할 전화기를 가지고 있다”며 선거 운동을 독려했다.
스테판 슈미트 아이오와주립대 교수는 “트럼프가 토론을 제안하고 공세 수위를 높이 것 자체가 불안감의 표현”이라며 “해리스 역시 먼저 자신의 리더십에 대해 증명할 수 있는 첫 인상을 만들어 기세르 전당대회로 이어갈 과제를 안고 있다”고 평가했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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