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년 부부가 케이팝 콘서트에서 구디백 돌리며 전한 말

장소영 2024. 7. 25.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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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열린 더보이즈 월드투어, 한국어 떼창에 깜짝 프러포즈도

[장소영 기자]

 더보이즈는 세련된 퍼포먼스와 능숙한 무대매너로 팬들에게 다가갔고, 팬들은 때창과 기립 감상으로 더보이즈를 향한 열정을 보였다.
ⓒ 장소영
 
미국 중심부, 백 년 역사의 공간에 한국어 떼창이 울려 퍼졌다. 지난 19일 오후 8시, 맨해튼의 심장부에 위치한 록펠러 센터의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케이팝 아이돌그룹 '더보이즈(THE BOYZ)' 월드투어 콘서트가 열렸다.

'더보이즈는' 이날 공연을 시작으로 총 5개 도시에서 미국 투어를 이어가는데, 독특한 아름다움으로 유명한 뮤직홀 로비는 한 시간 전부터 팬들로 가득했다. 굿즈를 사기 위해 긴 줄을 선 '더비(팬클럽)'들은 차분한 듯 보였지만, 잠깐의 눈인사나 말을 건네는 순간 설렘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케이팝 글로벌 팬덤은 이제 미디어에 소개되는 특별한 현상이나 지나가는 잠깐의 유행이 아니라, 흔한 광경이었다. 케이팝의 노래를 '인생곡'으로 꼽는 이들이 상당하다. 'K pop is my Life, my Soul', 어느 팬의 응원 도구에 쓰여있던 말이다. 

더 이상 낯설지 않는 케이팝 팬덤
 
 백년이 넘은 역사적 공연장인 라디오시티뮤직홀은 공연장 자체가 미국 대중음악사이다. 6000석 규모를 자랑하는 이곳에 한국어 노래 때창이 울렸다.
ⓒ 장소영
 
'더보이즈'가 공연한 라디오시티 뮤직홀은 미국 내에서도 의미 있는 공간으로 꼽힌다. 해 지는 풍경, 일몰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된 이곳은 흔히 '국가 공연장 (Showplace of the Nation)'이라 불린다. 이곳에서 프랭크 시나트라는 그의 명곡 'New york, New york'을 처음 불렀다. 지난 백 년간 토니상을 비롯해 각종 시상식과 태양의 서커스, 아메리카 갓 탤런트 같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쇼의 무대로 사용되어 왔으니 라디오시티 뮤직홀의 전국적 인지도를 따라갈 만한 대중예술 무대는 아마 없을 듯싶다.

지난해 별세한 전설적인 가수 토니 베넷의 95회 생일 기념 겸 은퇴 공연도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열렸었다. 3년 전 여름, 레이디가가와 함께 한 공연이었다. 알츠하이머 때문에 레이디가가의 이름도 잘 기억할 수 없었다는데도, 피아노 전주가 시작되자 95세의 토니 베넷은 눈을 반짝였다. 흔들림 없이 노래하는 영상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었다. 

중년 여성의 깜짝선물
 
 직접 만든 팔찌와 스티커, 젤리 등을 넣은 이쁜 구디백을 받았다.
ⓒ 장소영
 
딸의 손을 잡고 뮤직홀로 들어섰다. 우리는 어쩌면, 동상이몽 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게는 프랭크 시나트라와 세계적인 테너 파바로티가 함께 '마이웨이'를 부르던 무대 앞에 왔다는 설렘이 있었고, 딸은 지인에게서 받은 깜짝 졸업 선물 티켓으로 한국의 아이돌 그룹 무대를 직관한다고 흥분해 있었다.    
주위 좌석에 어린 팬들이 차기 시작하자 괜히 위축됐다. 아이돌 공연장에 이렇게 나이 든 사람이 와도 되는 건가 하고 있는데, 중년 부부로 보이는 두 사람이 몇 줄 앞에 앉았다. 다행이라는 생각을 할 즈음, 그 중년 부부가 주변을 둘러보며 무언가를 나누어 줬다. 팬들의 손에서 손으로 내게까지 건네진 물건은 다름 아닌 작은 구디백이었다. 더보이즈 멤버인 '뉴'의 사진과 젤리, 스티커, 손수 만든 팔찌도 두 개나 들어있었다. 이 많은 구디백을 준비하려면 꽤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였을 텐데 대단한 팬심이란 생각이 들었다. 
 
 6000석의 규모를 자랑하는 라디오시티뮤직홀은 해가 지는 풍경인 일몰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 되었다고 한다. 2500개의 화려한 조명과 세계적인 음향 시스템이 공연의 흥을 극대화 시켰다.
ⓒ 장소영
 
'더보이즈'의 공연이 시작되자 팬들은 일제히 기립하며, 라디오시티 뮤직홀의 6000석 모두를 스탠딩 석으로 만들었다. 무대가 바뀌는 사이 뮤직비디오가 재생될 때를 제외하고, 팬들은 두 시간 반의 공연 내내 일어나서 '더보이즈'의 무대를 즐겼다. 멤버들은 "앉아서 편히 노래를 감상하시라고 조용한 노래를 몇 곡  불러 드렸는데, 그마저도 서서 들으시더라. 여러분의 열정에 정말 놀랐고 감탄했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더보이즈'는 2만 5000개의 화려한 조명과 함께 빼어난 퍼포먼스뿐 아니라 능숙한 무대 매너를 보였다. 이곳이 한국의 음악 프로그램 촬영장인지, 뉴욕인지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뉴욕 팬들은 유창한 한국어 구호와 응원, 함성으로 호응했다. 공연을 마무리할 때쯤, 갑자기 더보이즈 멤버 한 명이 객석으로 마이크를 내려 주었다. 카메라가 객석을 비추자, 한 남성 팬이 무릎을 꿇고 여자 친구에게 프로포즈해서, 6000명의 팬들에게 환호와 축복을 받았다. 이들을 향해 팬들은 한국어로 "뽀뽀해"라고 외쳤는데, 이 모습이 어이없기도 하고 재밌기도 해 한참을 웃었다. 이 팬들은 '뽀뽀해'라는 구호를 어디서 배운 걸까. 

공연 중 다리가 아파 여러 번 좌석에 앉았다. 앞쪽을 보니 공연 전 구디백을 나눠 주었던 중년 부부는 미소를 띤 채 두 시간 내내 선 채로 공연을 즐겼다. 미국의 유수한 밴드 공연도 아니고 케이팝 아이돌의 공연을 함께 즐기는 중년 부부라니. 그들의 체력도, 다정함도 내심 부러웠다. 

더보이즈가 전해주는 기쁨
 
 공식 응원도구인 조명이 들어오는 메가폰외에 저마다의 개성이 담긴 플랜카드나 응원도구를 들어보이고 있다. 더보이즈 공연을 보러오기 위해 운전면허를 땄다는 팬의 문구가 재밌다.
ⓒ 장소영
 
콘서트가 끝난 후 그들을 찾아갔다. 구디백을 선물해 준 크리스티나와 인사를 나눴다. "나이 든 사람이 나 혼자라 외로울 뻔했는데, 두 분을 발견하고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는 농담을 했다. 구디백은 음악을 정말 좋아하고 콘서트 가는 걸 좋아하는 딸 클로이가 며칠 걸려 준비한 거란다.

나는 "다리가 아파 죽을 뻔했다고, 혹시 콘서트를 보기 위해 집에서 체력 단련을 하냐"고 묻자 손사래를 치며 "자신은 그저 튼튼한 다리를 가졌을 뿐"이라고 한다. "아내가 잘생기고 젊은 어린 남자들과 사랑에 빠진 거 같은데 괜찮으신가요"라고 크리스티나의 남편에게 농담을 건넸더니 "아무 문제 없다. 사실은 나 역시 그들을 좋아해서 괜찮다"는 답이 돌아왔다.

구디백을 만든 클로이와도 만나보고 싶었는데, 직원들이 우리를 출입구로 보내 만나지를 못했다. 아쉬움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구디백을 살펴보다가 그녀가 남겨놓은 SNS 연락처를 발견했다. MZ들의 소통법이란. 
 
 콘서트를 함께 다니는 가족이 부러웠다. 클로이는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로, 직접 만든 팔찌와 스티커 등으로 구디백을 만들어 이번 더보이즈 뉴욕콘서트 현장에서 팬들에게 나눠주었다. 함께 사진을 찍지 못해 아쉽다고 하자 직접 사진 한 장을 보내주었다.
ⓒ CHLOE
 

팬들에게 한국의 아이돌그룹과 케이팝의 의미는 뭘까. 클로이에게 물었더니 메시지가 왔다.

"더보이즈의 팬이 되면서 나는 더보이즈가 주는 많은 기쁨과 영감을 누리게 되었답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더보이즈를 포함한 케이팝 아티스트들은 언어나 문화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하나로 모아줘요." 

구디백을 준비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했더니, 클로이는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였다. 구디백을 준비한 딸과 이를 나눠주는 엄마와 아빠라니. 클로이 말이 맞다. 음악은 사람들을 하나로 모아준다. 언어, 문화의 차이도, 세대 간의 차이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서로 갈라서고 반목하는 일이 잦은 요즘, 사람들이 하나 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니. 케이팝 아티스트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칭송이 있을까. 

"만약 내가 뉴욕에서 해낼 수 있다면 나는 어디에서도 해낼 수 있을 거야 
뉴욕! 뉴욕! 바로 너한테 달려있어." (if I can make it there, I will make it anywhere. It's up to you! New york, New york!)

시나트라의 노래 가사처럼, 뉴욕에서의 콘서트를 성공적으로 잘 끝낸 더보이즈는 이번 월드투어 어느 공연이든 모두 잘 끝낼 것이다. 또 뉴욕에서 하나로 뭉쳐 함께 즐긴 팬들도 또 다른 곳에서 누군가를 응원하고 또 응원받으며 잘 지낼 것이다. 

공연을 보고 계단 오르기라도 부지런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혹시 다시 올지도 모르는 두 시간 스탠딩 콘서트를 투덜대지 않고 딸과 함께 보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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