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 쪄서 냉동 보관할 때, 젓가락을 준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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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미영 기자]
택배 기사님이 제법 무거워 보이는 상자를 들고 왔다. 시부모님께서 보낸 것이다. 시부모님은 식구들 먹을 것이라며 조금씩 기른 작물들을 철마다 바리바리 챙겨 보낸다. 가까이 살아 자주 갖다먹으면 좋으련만 편도 4시간이 걸리는 거리에 사는 이유로 명절이나 생일, 무슨 날에만 겨우 찾아뵙는 것이 늘 죄송스럽다.
택배 박스는 먼 길을 오느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탓에 꼬질꼬질하다. 모서리란 모서리에 야무지게 두른 누런 테이프 자국을 보니 종이상자의 험난한 여정이 그려졌다. 온전하게 우리에게 닿길 바라며 상자 속에 꾹꾹 눌러 담았을 부모님의 마음을 알 것 같아 가슴 한 구석이 포근해진다.
상자 속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옥수수와 양파, 울퉁불퉁 작고 못생긴 감자가 있었다. 바로 그때 상자 한 귀퉁이에 부끄러운 듯 숨어있는 네모진 봉지가 눈에 띈다. '뉴슈가'였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마치 옆에 선 무뚝뚝한 어머님 음성이 지원되는 듯했다.
"옥수수 삶을 때 단 거(?) 좀 넣어야 맛있다! 그냥 삶으면 밍밍하이 맛없다!"
내용물을 확인하고 시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멀쩡하게 갔드나?"
"네! 아주 멀쩡하게 잘 왔어요!"
"가들이(그것들이) 꼬라지는 그래도 우리 농사지은 것 중엔 최상품이다. 몬났다고 밉다카지 말고 맛나게 무라(못생겼다고 미워하지 말고 맛있게 먹어라)"
▲ 제철옥수수 맛있게 삶아 드세요! |
ⓒ 원미영 |
전문적으로 밭농사를 짓는 분들이 아니라서 매년 수확물의 상태는 편차가 크다. 날씨에 따라 작황이 다른 걸 보면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는 말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네 식구가 이걸 다 어찌 먹냐고 배부른 소리를 하니 이웃들과 나눠 먹으라고 넉넉히 보내셨단다.
무릎과 허리가 좋지 않은 노인네들이 '에구구' 앓는 소리를 내며 감자를 캐고, 옥수수를 꺾는다. 그중에서 가장 보기 좋고 멀쩡해 보이는 것들을 고르고, 적당한 상자에 차곡차곡 담는 과정들이 눈앞에 그려졌다. 수년 전, 어린 손주들이 옥수수를 좋아한다는 말에 몇 년째 옥수수와 감자를 빼놓지 않고 심어 기르신다. 안타깝게도 어느새 그 손주들은 감자튀김과 팝콘을 더 좋아하는데 말이다.
친한 이웃 몇몇 사람에게 골고루 챙겨 넣은 보급품(?)을 전달했다. 시부모님 덕에 이웃에게 후한 인심을 쓰게 되었다.
옥수수는 두 종류였다. 하얀 옥수수와 알록달록 검정, 아니 보라색 옥수수. 하얀 옥수수는 껍질을 벗겨 압력솥에 바로 삶았다. 어머님께서 살뜰히 챙겨주신 뉴슈가 한 숟갈과 소금도 조금 넣었다.
압력솥 추가 칙칙 돌면 불을 낮추고 15분 정도 더 삶아 뜸을 들였다. 그러면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는 옥수수가 된다. 끓인 물속에 그대로 넣어두면 알맹이가 다 불어 터지기 때문에 냄비에서 바로 꺼내야 한다.
네 식구가 둘러앉아 맛있게 옥수수 하모니카를 불었다. 팝콘을 사랑하는 아이들도 오늘은 앉은 자리에서 두세 개씩 먹어 치웠다. 넉넉히 삶아 소분한 것은 냉동실에 넣었다. 옥수수는 수확 직후부터 당도가 계속 떨어진다고 하니 최대한 바로 먹는 것이 제일 맛있다고 한다.
▲ 옥수수 알갱이 분리는 이렇게 하세요! |
ⓒ 원미영 |
▲ 옥수수 낱알 |
ⓒ 원미영 |
떼어낸 옥수수 알갱이들은 냉동실에 보관해 두고 밥을 할 때 넣어 먹으면 된다. 쌀알과 함께 탱글탱글 톡톡 터지는 옥수수 식감은 말해 무엇하랴. 버터옥수수는 맥주 한 캔이 생각날 때 근사한 안주가 되어줄 것이다.
장을 볼 때마다 손에 든 식재료를 몇 번씩 들었다 놨다 하는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 냉동실에 가지런히 쌓인 옥수수를 보니 부자가 된 기분이다.
하루 종일 코끝에서 옥수수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다. 입안 가득 베어 문 옥수수가 평소보다 더 보드랍고 달았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작물을 키우고 나누는 시부모님의 소박한 애정이 진하게 전해져 그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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