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병률과 출판인 이병률을 동시에 만나다니

김규영 2024. 7. 25.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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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늦도록 이어진 북토크, 책 <혼자가 혼자에게> 와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김규영 기자]

이병률 작가가 전북 군산에 도착한 날은 집중 폭우가 무섭게 쏟아졌던 바로 다음 날이었다. 폭우로 인해 침수 피해를 입은 가게들이 많았기에 식당에 가기 전에는 식사가 가능한지 전화로 확인하고, 모르는 가게를 들어갈 때도 피해가 없었는지부터 묻는 것이 인사가 되었다.

평소와 다르게 염려하는 그 마음이 커졌던 것은, 나 또한 세심한 이병률 작가를 만났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다.
  
▲ "혼자가 혼자에게",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정담북클럽은 두 권의 작품으로 이병률 작가를 만났다.
ⓒ 김규영
 
'정담북클럽'은 지난 7월 11일, 두 권의 책으로 이병률 작가를 만났다. 최근 출판된 시집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문학과지성사, 2024) 하나만으로도 이야기가 넘쳐나겠지만, 산문집 <혼자가 혼자에게>(달, 2019)를 함께 다뤘다.
행사에 달린, 'part.2 시인의 출판'이라는 부제처럼 시인 이병률과 여행작가 이병률, 그리고 달 출판사 대표 이병률을 모두 만나고 싶은 욕심 탓이다.
 
▲ 정담북클럽 이병률 작가와 함께 2024년 7월 11일 정담북클럽 part.2 시인의 출판
ⓒ 문가은
  
사전 질문들을 받았기에, 두 작품을 연이어 소개해 준 작가에게 이날 불편한 질문은 없었는지부터 물었다. 그는 그런 질문은 없었다면서, 무엇이든 사적으로도 대답할 수 있다고 하였다.

같은 책을 두고 일주일 전의 모임 '작가없이뒷담화'에서 편하게 의견을 주고받았던 북클럽 참여자들도, 작가와 직접 만나는 '작가두고앞담화'에서는 긴장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작가의 시원시원한 대답은 독자의 마음을 더 열어주었다. 사소해 보여 묻기 망설이던 것도 물을 수 있었다.

소제목 아래 괄호의 의미들
 
▲ "혼자가 혼자에게" 속 괄호들 소제목 아래에는 속눈썹같은 괄호들이 매번 다르게 배치되어 있다.
ⓒ 달 출판사
  
<혼자가 혼자에게>의 소제목 아래에는 괄호가 등장한다. 그러나 매번 다른 방향과 지점에서 돌아다니는 괄호의 정체가 뭔지, 이게 무엇을 뜻하는 건지 몹시 궁금하다는 질문이 나왔다.

작가는 의외로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면서, 아무 뜻도 없는 장식이니, 머리카락 하나가 묻어있다고 생각하라고 했다. 만약 뭔가 뜻이 있는 것 같다면, 그 뜻을 찾아 논문(?)을 써보라며 자기만의 해석과 뜻찾기를 독려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독자는 출판과정을 자세히까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자기 손에 쥔 책의 무게와 크기, 질감과 색감, 글씨체와 줄간격 등에 예민하게 느끼며 반응한다. 무엇이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그 이유는 모르기 때문에, 가끔은 책의 내용에 매료된 것인지, 책의 만듦새에 빠져든 것인지 구분이 어려울 때도 있다.

특히 산문집 <혼자가 혼자에게>처럼 사진이 많은 책의 경우, 글과 사진이 작가의 말을 전달하듯이, 의미없는 괄호 하나에도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을 것 같아 뚫어져라 바라보게 된다. 
 
▲ 글을 낭독하고 있는 이병률 작가 정담북클럽에서. 2024.7.11.
ⓒ 김규영
  
이병률 작가, 아니 달 출판사의 이병률 대표는 이날 독자들에게 책 만듦에 대해 조금 더 알려주었다. <혼자가 혼자에게>의 겉표지 느낌은 일반 종이에 얇고 거친 플라스틱 효과를 주어서, 만졌을 때 반질반질하기보다 까슬까슬한 사포 느낌이 들도록 했단다.

그 밖에도 달 출판사 책들이 각기 다른 외형을 가졌다면서, 한국 출판계가 특히 외형에 열심을 기울이는 편이라고 했다. 한 번은 어느 일본 출판사 관계자가 달 출판사의 다양한 책 외형에 놀라 말하기를, 일본은 대부분의 책 외형이 똑같으며 외형에 힘을 주는 것을 쓸데없는 짓이라고 여기는 풍토가 있다고 했을 정도란다.

이번 시집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은 문학과지성사 출판사에서 나왔다. 문단과 출판계의 관계를 모른다면, 왜 출판사 대표가 자신의 시를 다른 출판사에 내는지도 궁금할 수 있다.

그러나 시를 즐겨 읽는 독자는 문학과지성사 시인선의 의미를 알고 있을 것이다. 1970년대부터 문학과지성사는 창작과비평사(창비)와 함께 우리나라 문학의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대표 출판사다. 그중에 문학과지성사 시인선은 시인의 캐리커쳐가 표지에 들어가는 트레이드마크로 잘 알려져있는, 권위있는 시인선이다.
 
▲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표지대지 교열과정에서 표지는 이렇게 전면을 펼쳐서 확인한다.
ⓒ 문학과지성사
  
이병률 시인은 자신이 과거 문학과지성사에도, 문학동네에도, 창작과비평에도 거절당했던 오래 전의 좌절감을 기억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이번 시인선 번호로 받은 601번이 마치 1번처럼 보이는 것도 기분이 좋고, 이렇게 존경하는 선배들과 나란히 선 것도 같아서 이번 시집 출판이 감격스럽다고 웃으며 말했다.

작가는 표지 대지를 보여주며 설명을 이어갔다. 표지대지는 책등을 중심으로 해 앞표지와 뒤표지, 책날개가 한 장으로 이어진 것을 말하며, 본문 원고와 별도로 교정을 보게 된다고 했다. 

이날 북클럽에서는 오래도록 얘기가 이어졌다. 혼자인 것에 대해서, 여행과 사랑에 대해서, 글쓰기와 자신에 대해서, 끝날 시간이 되어도 질문이 끝나지 않았다. 예정된 시간이 지났지만, 이병률 작가는 끝까지 질문에 답하고 사인을 하고 사진을 찍어주며 독자와 정성스럽게 만났다. 

언젠가 목요일 저녁에 군산을 방문한다면, 인문학창고 정담을 찾아오시길 바란다. 운이 좋다면 정담북클럽과 함께 작가를 만나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 SNS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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