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개선이 메인 요리라면, AI 교과서는 양념”
지난 21일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진행된 ‘교실혁명 선도교사 연수’(AI 교과서 연수) 프로그램. 초·중·고교 교사 70여명이 인공지능(AI) 교과서를 주제로 한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있었다.
교사들은 국어 문법을 가르친 경험을 풀어놓은 안윤주 경북기계공고 교사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국어 문법은 공부를 좀 한다는 학생들도 손사래 치는 수업이다. 일반계 고교와 중학교에서 온 교사들은 딱딱한 문법 수업을 안 교사가 어떻게 진행했는지 궁금해하는 모습이었다.
안 교사는 교과서 진도를 따라가기에 앞서 실제 사례를 접목한 수업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음운변동이라면 ‘급훈’처럼 표기와 다르게 ‘그푼’으로 발음되는 단어 사례를 먼저 찾도록 하고 변화 양상이 비슷한 단어끼리 묶어보도록 했다. 학생들이 실제 사례를 충분히 익힌 뒤에 교과서 내용을 설명했다.
안 교사는 학생들에게 네 컷 만화로 된 문법 교재 제작을 주문했다. 취업용 자기소개서에 저자라는 이색 스펙을 쓸 수 있다는 말에 학생들이 호응했다. 간단한 작업은 아니었다. 문법을 그림과 글을 통해 압축적으로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확실히 숙지해야 가능한 작업이었다. 학생들은 교재 제작을 위해 교과서를 펴놓고 안 교사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질문 있는 교실’이 실현됐다며 기뻐한 것도 잠시 업무가 폭증했다. 학생마다 문법을 깨치는 과정이 전부 달랐기 때문이다. 질문 수준과 종류도 제각각이었다. 유사 질문을 분류하고 다른 학생에게 도움이 될 질문과 답변을 분석하는 동안 진이 다 빠졌다. 교육 효과는 확실했지만 웬만한 열정 없이는 지속가능한 수업이 아니었다.
안 교사는 앞으로 AI와 에듀테크(교육정보기술)가 이런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1학년을 대상으로 했던 수업이고, 현재는 3학년을 맡아 해당 수업은 중단했지만 앞으로 다시 하게 되면 AI의 분석 기능을 활용해 많은 품을 들이지 않고 AI와 협력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설계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AI 교과서를 내년 3월 새 학기부터 수학·영어·정보·국어(특수) 교과를 시작으로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AI 교과서의 도입 목적은 ‘학생 1대 1 맞춤형 수업’이다. 교사가 학생 수준과 학습 속도에 맞게 지식을 전달하는 업무는 AI의 도움을 받는다. 교사는 단순 지식 전달보다 창의성, 인성, 협력능력, 융합능력 같은 역량을 키우는 수업을 설계하고 학생 생활지도에 좀 더 집중토록 한다는 구상이다.
아무래도 낯선 방식이어서 학교 현장의 우려가 적잖다. 이에 교육부는 AI 교과서 프로토타입(시험판)을 공개하고 전국적으로 연수를 진행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 수행기관 13곳에서 연수를 운영하고 있다. 교사들이 수업을 개선할 부분을 찾아보고 이 과정에서 AI 교과서를 어떻게 활용할지 토론하는 식이다.
이날 연수는 수행기관 중 하나인 ‘미래교실네트워크’라는 교사 연구 단체 주도로 진행됐다. 안 교사 같은 현장 교사들이 자기 수업을 소개하고 성과와 애로사항을 공유하면 동료 교사들이 수업에 AI를 어떻게 접목할지 고민해보는 방식으로 구성했다. 교사들은 “수업 개선이 메인 요리라면 AI 교과서는 양념”이라고 평했다.
박재찬 광주 송정초 교사는 AI 교과서가 제공하는 학생 데이터 활용 방안을 소개했다. 그는 AI 교과서가 학생들이 수업을 얼마나 이해하는지, 모둠(조) 활동 때 수업에서 배운 지식을 어떻게 적용하는지, 수업에서 배운 개념을 어떻게 연결하는지 등 유의미한 정보가 제공될 것으로 내다봤다.
토론이 시작되자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이 가운데 학생 데이터를 분석하면 모둠 활동 시 학습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학생 조합을 찾을 수 있다는 아이디어에 많은 교사들이 고개를 끄떡였다. 교사 입장에선 매우 유용한 데이터일 수 있다. 모둠 구성은 그간 교사의 경험이나 감에 의존해오던 영역이었다.
예컨대 학생 A는 국어 수업 때는 적극적이지만 수학 시간에는 참여율이 낮다. 학생 B는 그 반대이고, 학생 C는 두 과목 모두 소극적이다. 교사들이 AI 도움을 받아 과목별로 혹은 단원별로 학생의 학습 태도나 학업 성취도 등에 따른 최적의 모둠을 구성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박 교사는 “어릴수록 특히 초등학생은 누구와 모둠으로 묶이는지가 학습 효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어 활용도 높은 데이터일 것”이라며 “이 밖에도 수업에 도움이 될 다양한 데이터가 생성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안나 세종 새뜸중 교사
“수학 포기자도, 사교육도 줄일 유용한 도구일 수 있지만 성패는 결국 교사가 좌우할 겁니다.”
세종시 새뜸중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김안나(사진) 교사는 내년 3월 도입되는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AI 교과서) 도입 전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김 교사는 AI 교과서 제작을 돕고 있는 11년차 교사다. 전국적으로 진행 중인 ‘교실혁명 선도교사 연수’(AI 교과서 연수)에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교단에 선 이후 줄곧 ‘거꾸로 수업’(일방적 지식 전달이 아닌 학생과의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수업) 등 다양한 수업 혁신을 시도하는 열정적인 교사다. 지난 21일 광주에서 진행된 AI 교과서 연수 현장에서 김 교사를 인터뷰했다.
-AI 교과서를 도입하면 수업은 어떻게 변하는가.
“교사라면 누구나 수업을 잘하고 싶지만 현실에서는 장벽이 존재한다. AI와 에듀테크(교육정보기술)가 이를 낮출 수 있다고 본다. 수학의 경우 학생 수준차가 상당하다. 어떤 학생이 2차 함수에서 막혔다. 2차 방정식을 몰라서다. 2차 방정식을 모르는 건 방정식 개념이 부족해서다. 수업에서 학생마다 부족한 부분을 파악해 필요한 학습 자료를 찾아 제공할 수는 없다. AI가 학생을 진단하고 맞춤형 수업 자료를 제공하면 수업 때 멍하게 있는 수학 포기자가 되지 않고 차근차근 따라올 수 있게 된다.”
-AI 교과서에서 가장 기대하는 기능은.
“AI를 맹신해도 안 된다. AI는 1차 데이터만 제공하고 최종 진단은 교사 몫이다. AI가 학생의 성취율이 ‘0%’라고 하면 아이는 큰 충격을 받는다. 실제로는 성취 못한 일부분만 해소하면 나머지는 술술 풀릴 수 있는데도 말이다. 유용하지만 하나의 참고 자료로만 써야 한다. 가장 기대하는 기능이라면 (교사가 AI 도움을 받아) 학생별로 진단과 처방을 내릴 때 유사 문항을 실시간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선생님 이제 이해했어요. 문제 좀 내주세요’라고 할 때 교사가 즉시 문항을 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AI 교과서라면 가능할 것이다.”
-사교육비 경감 가능할까.
“학생 맞춤형 수업이 실현된다면 가능하다. 제 학생 가운데 사교육을 관둔 아이들이 많다. 한 문제를 풀어도 100% 이해하고 친구를 가르칠 수준에 도달하도록 개념·원리를 확실히 알 때까지 공부할 수 있는 수업을 했다. ‘학원 중단하고 오히려 100점 맞았다’고 말하는 학생도 있다. 중상위권으로 자기 조절력이 있는 학생이라면 수업을 자신의 학습 속도에 맞춰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다. 학생마다 학습 속도가 다르다. 각자 진도에 맞춰 차근차근 따라오게 이끌어야 한다. AI 교과서가 도입되면 이 과정이 한층 수월해질 것이다.”
-AI 교과서 도입 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면.
“맞춤형 수업은 교사에게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AI 교과서 도입이 다가 아니다. 예컨대 최근 중고교 교사들은 중간·기말고사에서 수능 수준의 엄밀성을 요구받는다. 인근 학원과 (문항을 틀린) 학생·학부모가 합심해 허점을 파고드는 게 유행처럼 됐다. 점점 심해지고 있다. 한 학기 두 번 출제하는데 오류가 하나 나오면 학교가 뒤집히니 온 신경을 곤두세운다. 이의제기가 있으면 다른 일은 하기 어렵다. 학교 현장이 정말 많이 바뀌어야 한다.”
광주=글·사진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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