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기다 아니다' 명확한 사람"…그의 압승 뒤엔 4050 여성들

김민정 2024. 7. 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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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경기도 고양 소노 아레나에서 열린 서울·인천·경기·강원 합동연설회에서 한동훈 당대표 후보 지지자들이 응원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지난 23일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열린 경기 고양 킨텍스 앞에는 행사 시작 4시간 전부터 한동훈 대표 지지자 100여 명이 운집했다. 이들은 비옷을 입은 채 행사장 앞에서 ‘변화의 시작 한동훈’이라고 적힌 응원 도구를 흔들더니, 오후 5시 개표 결과 발표가 임박하자 행사장 입구 앞에 나란히 줄 지어 섰다. 빨간색 멜빵바지를 입은 현장 리더 격인 여성 회원 최모(53)씨 안내에 맞춰 착착 움직였다. 득표율 62.8%란 압승 결과가 발표되자, 이들은 일제히 부둥켜 안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연차 휴가를 내고 동갑내기 남편과 20대 딸과 함께 응원을 온 직장인 여성 박모(48)씨는 “우리 부부는 호남 출신인데, 2년 전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를 본 뒤로 ‘인간 한동훈’을 탐구해 왔다”며 “그는 결코 우리를 배신하지 않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지자는 “구태 정치가 변화하기 시작했다”고 외치며 눈물을 보였다. 이들 대부분은 한 대표가 TV 뉴스 생방송 인터뷰를 마치고 킨텍스를 빠져나간 저녁 9시까지 자리를 지켰다.

17일 경기 고양 소노 아레나에서 열린 제4차 국민의힘 전당대회 서울·인천·경기·강원 합동연설회가 종료된 후 한동훈 당대표 후보 지지자가 응원 도구와 쓰고 난 비품들을 쓰레기 종량제 봉투에 담고 있다. 김민정 기자


이날 모인 한 대표 지지자 상당수는 팬 카페 ‘위드후니’ 소속이다. '위드후니'는 2020년 결성됐다. 한 대표가 법무연수원에서 속칭 ‘유배 생활’을 하던 시기였다. 페이스북 페이지 그룹에서 모인 40명이 의기투합해 팬 카페를 만들었고, 4년 만에 회원 수가 9만명까지 늘었다. 한동훈 캠프 관계자는 “간혹 남성 지지자도 눈에 띄지만, 현장에 찾아오는 상당수는 40~60대 여성”이라고 말했다. 과거 우파 정치인에게 볼 수 없는 팬덤 현상에 정치경력 22년의 나경원 의원조차 “굉장히 낯선 풍경”이라고 말했다. '위드후니'는 과연 누구인가. 지난 17일과 23일 양일간 이들을 동행 취재했다.

①4060女, 정치 저(低)관여자 뭉쳤다= 위드후니 초창기 멤버가 주목한 건 문재인 정부 시절 탄압받던 ‘검사 한동훈’이었다. “잘 나가던 검사가 문재인 정권에 찍혀 한해 3차례나 좌천됐는데, 옷을 벗기는커녕 의연하게 견디는 모습에 감동했다”(익명을 요구한 회원), “살아온 삶이 ‘강강약약’이라, 집단 공격에 우리가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했다”(53세 여성 송모씨)는 것이다.

초창기 위드후니 회원 상당수는 그저 개인 한동훈을 좋아할 뿐, 정치적 무관심층이었다고 한다. 55세 여성 김모씨는 “부모님은 ‘태극기 부대’였으나, 난 부모님이 거기 나가는 것조차 아주 싫어했다”며 “애 키우느라 바빠서 정치 자체에 관심이 없었는데, 어쩌다가 한동훈이라는 사람이 눈에 띄어서 ‘입덕’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오후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열린 경기 고양 킨텍스 앞에 한동훈 당대표 후보를 지지하는 이들이 운집해 이름을 연호하고 있다. 김민정 기자


정치인을 돌봐야 하는 대상으로 삼는 건 연예인 팬덤 문화와 유사하다. 총선 패배 후 한 대표가 두문불출할 때 위드후니 게시판엔 “아티스트가 힘들 때 팬이 기부하며 지지 연예인을 잊히지 않게 하듯 우리도 쌀을 기부하자”는 제안이 올라왔다. 전당대회 당일에는 “대통령님 들어가실 때 환하게 박수들 쳐주세요. 그래야 두 분도 더 돈독해진다”며 “위드후니는 ‘내조’가 필요하다. 편하게 정치할 수 있게” 같은 글도 올라왔다.

『73년생 한동훈』의 저자 심규진 스페인 IE대학교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한동훈 팬덤은 당파성보다 인물 서사에 열광한다는 측면에서 기존 정치 팬덤과 다르다”라며 “마치 ‘주인공을 지키라’는 식의 게임적 요소도 있다”고 분석했다.

17일 제4차 국민의힘 전당대회 서울·인천·경기·강원 합동연설회가 열린 경기 고양 소노 아레나 앞에 한동훈 당대표 후보와 장동혁·박정훈 최고위원 후보, 진종오 청년 최고위원후보를 응원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김민정 기자


②韓의 반문 어법도 ‘팬질’ = 상대가 흥분해 몰아붙이면 이를 역공해 상황을 뒤집는 ‘한동훈식 어법’은 보수 진영에서도 “설화 리스크”라는 지적을 받는다. 지난 17일 TV토론에서 나 후보를 향해 “저한테 본인 패스트트랙 사건 공소 취소해달라고 부탁한 적 있으시죠”라고 한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위드후니 회원은 이런 화법에 열광한다. 거대 야당에 맞설 무기라는 이유에서다. 팬카페에선 이를 따라하기도 한다. “나 후보, 원 후보님. 저는 공소취소는 검사가 하는 것으로 배웠는데, 왜 직접 검찰총장에게 부탁하지 않았는지 묻고 싶네요.”(ID ‘바운스’), “공소취소 청탁 거절이 자해 폭로?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정의의 실현이고 한동훈이 추구하는 새 정치의 단면이라고 생각합니다.”(ID ‘옥규’) 등이다.

합동연설회 현장에서 만난 여성 직장인 김모(45)씨도 “한동훈은 ‘기다 아니다’가 명확한 사람”이라며 “판에 박은 정치인의 말이 아닌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17일 경기 고양 소노 아레나에서 열린 제4차 국민의힘 전당대회 서울·인천·경기·강원 합동연설회에 참석한 한동훈 당대표 후보 지지자가 자신이 직접 의뢰해 제작한 후보 응원도구와 티셔츠를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민정 기자


③개딸과 닮았나= 4월 총선과 전당대회 국면을 거치며 급속도로 커진 '위드후니' 덩치를 두곤 당 안팎의 우려가 적지 않다. 정치 고(高)관여층 상당수가 새로 유입되면서 일부 회원이 ‘문자 폭탄’ 같은 기존 강성 팬덤의 구태를 반복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전당대회 기간 중 캠프 관계자가 유튜브 방송에서 “대구·경북(TK) 지역 일부 의원이 한 후보의 당원 간담회를 소홀히 대했다”는 의혹을 제기하자, 일부 회원이 항의 전화를 걸거나 “OOO(친윤 핵심)가 시켜서 한 짓이냐” 같은 문자 폭탄을 날리기도 했다. 국민의힘 A의원은 이날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가 “왜 한동훈 후보를 따돌리느냐” 등 항의에 시달렸다. 하루 동안 발신자 불명의 전화 50여 통을 받은 A의원의 보좌진은 “이틀가량 업무가 마비됐다”고 했다.

카페 운영진은 “우리는 개딸과 차별화돼야 한다” “위드후니도 고단수 정치인이 돼야 한다”는 공지를 올렸지만, 과격 행위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는 “사회 저변에 다양성 문화가 뿌리내리지 못한 상황에서 팬덤 정치가 아무리 차별화를 꾀한들 부정적 양태를 일소하기엔 힘들다”고 말했다. 반면에 조진만 덕성여대 교수(정치학)는 “지금은 구태를 반복하지만, 과거 HOT와 젝스키스 팬들이 경쟁했듯 정치 팬덤도 경쟁을 거치면 언젠가는 순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민정 기자 kim.minjeong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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