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현 목사의 복음과 삶] 상처보다 더 큰 사랑

2024. 7. 25.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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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절대로 다치지 않으려거든 아무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으면 된다. 동물에게도 사랑을 주면 안 된다. 취미와 소소한 사치로 마음을 꽁꽁 동여매라. 모든 연줄을 피하라. 이기심이라는 관 속에 마음을 안전하게 가둬두라. 그러나 안전하고 어둡고 공기가 통하지 않는 그 부동의 관 속에서 마음은 변질할 것이다. 천국을 제외하고 사랑의 위험에서 안전하게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지옥이다.”

C S 루이스의 ‘4가지 사랑’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강도 높은 표현이지만 와닿는다. 사랑은 좋은 것이지만 위험하다. 사랑이 있는 곳에 상처가 있다. 상처가 있지만 사랑을 피할 수 없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처를 받기로 작정한 것과 같다. 상처받지 않고 사랑하는 길은 없다. 어쩌면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약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상처가 두려워 사랑하지 않는 것이 나을까. 사랑하다 상처받는 것보다 사랑하지 않아 생긴 상처가 더 치명적이다.

사랑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그 공허한 가슴은 공동묘지보다 더 적막하고 황량하다. 사랑과 상처는 공존한다. 사랑이 깊을수록 상처도 깊다. 더 많이 사랑하기로 작정한 사람이라면 더 많은 상처를 각오해야 한다. 생면부지의 사람은 나에게 상처를 준 적 없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듯 사랑할수록 상처는 그만큼 깊게 팰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더 오래 기다린다. 사무치는 그리움을 참아내는 쪽은 사랑하는 사람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포기하지 못한다. 싸움을 하더라도 사랑하는 쪽이 지게 되어 있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다. 자식은 부모에게 상처를 준 것인지도 모를 때가 많다. 부모는 자식에게 수많은 상처를 입으면서도 상처라고 말하지 않고 더 사랑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한다.

시인 류시화는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라 했다. 상처를 받았다고 사랑을 멈출 수는 없다. 상처를 안은 채로 사랑하다 또 상처를 받고 그래도 또 사랑하는 것, 그게 신비다. 상처가 전부도 아니고 사랑도 전부가 아니다. 모두 함께 부대끼며 겪어야 할 삶의 부분이다. 사랑하며 상처를 지워간다. 상처를 만드는 것도 사랑이고 상처를 치유하는 것도 사랑이다. 겉으로 보면 멀쩡해 보여도 상처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사람만이 그런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상처가 있다. 정채봉의 ‘상처 없는 새가 어디 있으랴’가 떠오른다. 부엌에도 상처 입은 그릇들이 있다. 아름답게 피어난 꽃들도 자세히 보면 지나간 바람의 흔적으로 생긴 상처를 가지고 있다. 상처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것이다. 상처를 슬픔이나 불행으로 받아들이기보다 평범한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상처는 특정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두가 겪는 일상이다. 하늘에 별이 있듯, 바다에 배가 떠 있듯, 나무와 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듯, 사랑이 있는 곳에는 상처가 있다. 상처를 입지만 그럼에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사랑은 인간을 살게 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숨을 쉬어야 살 수 있듯이 사랑은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에너지다. 사랑이 끝나면 삶도 멈춘다. 살아야 할 이유가 사라진다.

수없는 상처로 얼룩져도 다시 사랑을 찾는 이유도 사랑은 존재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은 사랑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알고 있다. 울고 불며 밤에도 칭얼대며 그 지긋지긋한 밤을 지새우게 해도 방긋 웃는 아이에 끌리는 사랑 때문에 또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사랑에 울고 사랑에 웃는다. 다시는 사랑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하지만 나도 모르게 사랑이 있는 곳에 눈길이 머무는 것은 인간은 사랑하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상처보다 사랑의 힘은 더 크고 위대하다. 상처는 순간이고 사랑은 영원하다. 상처로 쓰라린 가슴을 안고 또 사랑에 나선다. 하나님도 사랑 때문에 상처를 받으셨다. 헨리 나우웬은 ‘상처 입은 치유자’라고 했다. 십자가는 상처보다 더 큰 사랑이다. 아들이 십자가에 매달리실 때 성부 하나님의 가슴에도 상처로 가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이다.

이규현 부산 수영로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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