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강에서] 주여, 이제는 여기에

장창일 2024. 7. 25.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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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가 우리 곁을 떠났다.

그의 손끝을 거친 수많은 노래 중 '주여, 이제는 여기에'의 가사다.

'주여, 이제는 여기에'라고 읊조렸던 김민기의 바람은 카이로스를 여는 마중물이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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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일 종교부 차장


김민기가 우리 곁을 떠났다.

배우와 작품을 앞세우며 ‘뒷것 인생’을 살았던 그의 빈소에는 흔한 근조화환이나 조의금도 없었다. 죽음조차 고요했던 이가 남긴 ‘상록수’와 ‘아침이슬’ 같은 명곡이 며칠째 라디오 전파를 탈 뿐이다. 장마 중 소환되는 김민기의 유작은 그가 걸었던 삶의 흔적과 맞닿으며 감동을 더한다.

그의 손끝을 거친 수많은 노래 중 ‘주여, 이제는 여기에’의 가사다.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무얼 찾아 헤매이나 저 눈 저 메마른 손길/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하소서// 아, 거리여 외로운 거리여/ 거절 당한 손길들의/ 아, 캄캄한 저 곤욕의 거리/ 어디에 있을까 천국은 어디에/ 죽음 저편 푸른 숲에 아 거기에 있을까/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여기에 우리와 함께/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하소서”.

복음성가 같은 노래의 가사는 사뭇 비장하다. 느릿한 키보드 연주에 이어지는 묵직한 김민기의 목소리는 흡사 모차르트 레퀴엠 ‘라크리모사’를 연상케 한다. 유신정권하에서 핍박받는 이들을 위로해 달라는 기도이자 처절한 아픔에 침묵하는 예수를 향한 절규의 노래다. 연극 ‘금관의 예수’ 도입부에 쓰였다.

이 노래가 본격적으로 알려진 건 1978년 양희은의 앨범에 수록되면서부터다. 그 전엔 대학가에서 구전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시나이까.’ 50년 가까이 이어진 질문에 주님은 답하셨을까. 언제, 어디에나, 어느 순간에도 우리 곁에 계시는 주님을 떠올린다면 질문만으로도 불경스럽지만 우리 현실을 돌아보면 의문이 들 때도 있다.

이스라엘은 왜 이토록 가혹하게 가자지구를 할퀴는지. 우리 주변엔 여전히 가난이, 차별과 미움이 가득하고 71년째 갈라진 채 대치하는 남과 북은 오물풍선과 대북 확성기를 주고받으며 날이 갈수록 날카로워지는 것인지. 쉽게 답을 얻기 힘든 질문이 해결은커녕 하나둘 더해질 뿐이다.

인간은 기록의 동물이다. 동굴 벽에 수렵의 일상을 새기기 시작하더니 긴 세월이 흘러 양피지와 종이, 첨단 기록장치 등으로 바뀌었을 뿐 뭔가를 남긴다는 속성 자체가 바뀌지는 않았다.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아 기록하기 위해서도 무던히 노력했다.

6000여년 전, 문명이 열릴 때부터 시계가 있었던 이유다. 태양빛이 만드는 그림자를 활용해 시간의 변화를 확인했던 해시계부터 200여개 부품으로 구성된 기계식 시계와 수정·전자에 원자시계까지 기술만 진보했을 뿐 시간의 변화를 엿보는 속성은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다.

시간의 기록과 올림픽도 떼려야 뗄 수 없다. 26일 개막하는 파리올림픽의 공식 타임 키퍼는 1932년부터 올림픽의 순간을 기록해 온 워치 메이커 오메가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초당 4만 장의 디지털 이미지를 생성해 기록하는 신기술을 선보인다고 하니 기술의 발전이 놀랍다.

과학의 발전과 발맞춰 성장해 온 기록의 기술이 붙잡을 수 있는 건 오직 ‘크로노스’다. 지금 이 순간도 무심히 흘러가는 물리적 시간을 뜻한다. ‘카이로스’는 또 다른 개념의 시간이다.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결정적 순간을 일컫는데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시간’으로 표현된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쫓았던 아브라함이나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한 바울의 시간 등이 대표적이다.

‘주여, 이제는 여기에’라고 읊조렸던 김민기의 바람은 카이로스를 여는 마중물이 됐을까. 나에게 임한 하나님의 카이로스는 언제일까. 그 순간이 왔을 때 알아차릴 지혜는 과연 있는 것일까. 김민기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한다.

장창일 종교부 차장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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