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드레스덴에서 만난 극우정당의 얼굴
전체주의에 호의적인 세력
이상한 주장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급속도로 지지세 넓혀
100년 전 파시즘 되풀이하는
유럽은 지금 분기점에 서 있다
“과거에는 결코 일어날 수 없었던 사건들로 우리 국민은 불안에 떨고 있다. 독일 사회가 근본부터 무너지고 있다.” 지난주 구 동독지역 작센주의 주도 드레스덴에서 만난 극우 정당 시위대의 한 시민은 이렇게 주장했다. 불법 입국자들이 저지르는 범죄행위로 국민들은 치안 불안에 시달리는데 정부는 방관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건너편에서는 집권 사회민주당의 집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맞불집회를 하러 나왔다고 했다. 검은 안경에 검은색 상하의를 입은 강인한 인상이다. 극우 정당의 시위대가 사민당 집회보다 훨씬 더 소란스러웠다.
지난달 초 유럽의회 선거에서 작센주는 극우 독일대안당(AfD)에 31.8%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보였다. 2019년 유럽의회 선거 때 극우 정당이 처음으로 1등을 했는데, 이번에는 2등과의 차이를 더 벌렸다. 통일 이후 계속 주 선거에서 승리했던 기독민주당은 21.8%, 사민당은 6.9%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물론 독일 극우의 돌풍은 작센주만의 현상은 아니다.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 독일대안당은 구 동독지역 5개 모든 주에서 1등을 했다. 여세를 몰아 아직 한 번도 차지하지 못한 지방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움직임은 더욱 빨라지고 있다. 특히 오는 9월 작센주와 브란덴부르크주 등 구 동독지역에서 치러질 예정인 주 선거가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기존 정당들은 총력으로 맞서고 있다.
괴를리츠는 작센주의 동쪽 끝 거의 폴란드 국경에 맞닿아 있는 매우 아름다운 소도시다. 필자가 드레스덴을 거쳐 괴를리츠까지 간 것은 이 도시가 독일 극우의 아성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마침 방문했던 지난 주말 괴를리츠는 마을 축제가 한창이었다. 많은 시민들이 나와 있었다. 거기서 만난 한 시민은 지난해 있었던 괴이한 일을 얘기해 줬다.
도시의 한 클럽에서 폭력사건이 있었고 모두 10명이 연루됐는데, 경찰 조사가 아직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독일대안당 괴를리츠 지부가 이 싸움을 외국인이 주동한 폭력행위로 주장해 도시 전체에서 대대적 시위가 있었다는 것이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10명 중 2명이 시리아 난민 출신이었지만 이 사건을 외국인에 의한 범죄행위로 규정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들은 시민들의 일상이 외국인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고 과장했다는 것이다.
나라마다 극우 정당의 지향점은 조금씩 다르지만 반이민, 난민·자유무역 반대, 유럽연합 반대가 대체적인 유럽 극우 정당의 공통적인 성향이다. 이들은 개방을 통해 사람과 상품이 들어오고, 이것이 내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가난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사람과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을 주창하는 유럽 통합은 응당 타도해야 할 대상이다. 전체주의 국가에 대한 선호, 폭력과 선동에 대한 의존의 경향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분석도 있다. 여기에 더해 탄소중립에 회의적이거나 파시즘에 대한 중도 또는 호의적인 입장을 갖고 있기도 한다.
과거 이상한 사람들의 이상한 주장으로 치부됐던 극우 정당의 주장이 급속도로 대중의 지지를 얻게 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경제가 어렵고 사람들이 살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세계화의 혜택은 극소수에게 돌아가고, 많은 사람이 좋은 일자리를 갖기 어려워졌다는 문제의식에 기존 정당들이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한편 이민과 난민이 갑자기 늘면서 이들이 기존 사회에 동화되지 않고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크게 늘었다.
이런 배경에 더해 극우 정당의 변신도 눈여겨볼 만하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혼란상을 목도하고는 더 이상 유럽연합(EU)을 탈퇴하겠다고 주장하지 않고 이제는 EU 내부에서 개혁하겠다고 한다. 한편 주류 정당으로의 변신을 위해 좋은 교육을 받은 카리스마 있는 외모의 지도자를 영입한다든가, 주장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화법과 전달 방식을 세련되게 하는 등 세세한 측면에서도 극우 정당은 진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괴를리츠에서 극우 정당을 공개적으로 반대했던 인사가 지속적으로 협박받고 있거나, 우파 정치인들이 극우 정당의 의제를 따라가는 행위, 헌법적 질서와 제도에 대한 지속적인 조롱 등은 100년 전 파시즘이 부상할 때 나타났던 이상 현상들이다. 그들의 몰락이 불과 100년도 되지 않았는데 지금 우리는 극우 정당의 부상을 봐야 하는 중대한 분기점에 서 있다. 역사는 과연 반복되는가.
김흥종 고려대 국제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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