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렬의 시시각각] 이재명도 한동훈도 말하지 않는 것
소득주도성장(소주성), 인공지능(AI), 로봇, 불황. 고용시장에 관한 한 이들은 공통 임팩트를 갖는다. 일자리를 감소시킨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권의 실험적 정책인 ‘소주성’은 고용시장에 큰 충격을 안겼다. 치솟은 최저임금을 감당하지 못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는 결국 문을 닫거나 고용을 줄였다. 주당 15시간 미만의 초단시간 일자리가 양산됐다. 한국 경제는 지금도 소주성이 남긴 불가역적 고비용 구조에 시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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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가 일자리 창출 전쟁인데
여야는 구체적 비전 제시 못해
반기업법 접고, 기업 뛰게 해야
」
AI는 이미 ‘일자리 킬러’로 활동 중이다. 콜센터, 번역 프리랜서 등 일자리 감축 움직임이 현실화하는 분야가 늘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은 국내 일자리 12%(약 341만 개)가 AI 기술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30년이 되면 지금의 일자리 약 90%에서 직무 90% 이상을 자동화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육체노동 일자리는 로봇과 키오스크에 빠른 속도로 잠식되고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로봇 밀도가 가장 높다. 2022년 근로자 1만 명당 설치된 로봇 대수가 1012대, 세계 평균(151대)의 6.7배다.
잘못된 제도(소주성)와 신기술(AI)의 동시 공습은 한국의 고용시장을 심하게 일그러뜨렸다.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가 태부족한데도 단기 일자리 취업자 급증으로 고용률과 실업률이 역대급 호조를 보이는 ‘고용 착시’가 이어지고 있다.
좋은 일자리는 예나 지금이나 최고의 복지다. 그 일자리 시장이 무너지고 있는데도 우리 정치는 별로 절박하지 않아 보인다. 우선 여의도 권력인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연임이 확실한 이재명 전 대표는 출마 선언에서 “먹고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며 ‘먹사니즘’(먹고사는 문제 해결)을 정치의 화두로 제시했다. “성장의 회복과 지속 성장이 곧 민생이자 ‘먹사니즘’의 핵심”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성장을 이루고, 어떻게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방법론이 충실하지 않다. 이 전 대표는 기초과학·미래기술 투자, 재생에너지 생산·공급 확대를 강조했다. 필요한 일이지만, 그것만으론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의 성장을 담보하기 어렵다. 그의 주장은 이상하게 흐른다. AI 로봇이 인간 노동을 대체하면서 일자리가 필연적으로 줄어들 것이라며 소득·주거·교육·의료 등 모든 영역에서 구성원의 삶을 책임지는 ‘기본사회’가 ‘피할 수 없는 미래’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과연 기본소득으로 풍요롭게 살 수 있나. 그 재원은 어떻게 마련하나. 기업에 세금을 더 거두거나, 나랏빚을 내서 조달한다면 그것이 지속가능한가. 무엇보다 안정적 일자리 없이 먹고사는 문제 해결이 가능하긴 한가.
분명한 것은 일자리는 기업이 만든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먹사니즘’엔 어떻게 기업들을 신명나게 뛰게 할지, 어떻게 기업가 정신이 춤추게 할지 큰 구상이 보이지 않는다. 이 전 대표의 민주당은 ‘반(反)기업’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재계가 ‘불법 파업 조장법’이라며 결사반대하는 노란봉투법 처리를 강행하고 있다. ‘먹사니즘’이 진심이라면 일자리 만들기가 첫째여야 하고, 반기업 정서와 결별부터 하는 것이 맞다.
더 불가사의한 건 여당인 국민의힘이다. 보수 정당이라면서도 생산적인 일자리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 양극화 해소, 기회 사다리 재구축 등 보수가 당장 해야 할 일의 출발점이 양질의 일자리 창출 아닌가. 새 리더로 선출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수락 연설에서 “미래를 위해 더 유능해지자”고 외쳤다. 그러나 일자리 비전 제시는 없었다.
글로벌 경제전쟁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일자리 전쟁이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법이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도, 트럼프의 관세 폭탄도 다 미국 내 일자리를 만들고 지키기 위해서다. 우리에겐 어떤 전략이 있나. 좋은 일자리 창출을 하지 못한다면 이재명의 ‘먹사니즘’도, 한동훈의 ‘유능함’도 다 헛된 것 아닌가.
이상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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