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용의 시선] 벼랑 끝 자영업, 땜질 현금지원으론 안 된다

손해용 2024. 7. 25.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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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용 경제부장

최근 방문한 서울 황학동 ‘주방거리’는 눈으로 봐도 손님보다 상인의 숫자가 많았다. 이곳은 폐업 점포의 물건을 사들여 새로 개업하는 자영업자에게 되파는 ‘땡처리’ 시장이다. 골목은 업소용 가스레인지·싱크대, 각종 식기·집기, 탁자·의자 등이 쌓여있을 뿐, 이를 구경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20년 넘게 이곳에서 장사 했다는 A 사장은 “새 제품 가격의 절반 이하로 내놓아도 안 팔린다. 큰 침체기에나 있던 일”이라면서 “폐업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창업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 여기도 돌아가는데, 창업하는 사람이 줄다 보니 중고 거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 자영업 비중, 20년 새 7%P 급감
영세·생계형 많은 구조적 문제
출구전략으로 연착륙 도모해야

서울 황학동 주방거리의 모습. 15일 국세청 국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 신고를 한 사업자(개인·법인)는 전년(86만7292명) 대비 13.7% 증가한 98만6487명으로 2006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가장 큰 숫자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증가 폭(11만9195명)도 최대치를 기록했다. 뉴스1

자영업자의 체감 경기를 엿볼 수 있는 주방거리조차 불황에 빠졌다는 건 한국의 자영업자가 얼마나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실제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의 실태는 수치로 확인된다. 지난해 폐업 신고를 한 사업자(개인·법인)는 98만6487명으로 2006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가장 많다. 전년 대비 증가 폭(11만9195명)도 최대다. 폐업 사유별로 보면 ‘사업 부진’(48만2183명)으로 가장 많았는데, 이는 금융위기 때인 2007년(48만8792명) 이후 역대 두 번째다. 올해 상반기 실업자 중 지난 1년 사이 자영업자로 일했던 ‘자영업자 출신 실업자’는 월평균 2만6000명으로, 1년 새 23.1% 급증했다. 전년도 증가율(5.9%)의 약 4배다. 사업 부진으로 장사를 접은 뒤 실업자가 된 자영업자가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그러다 보니 이젠 취업자 중 자영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20%를 밑도는 게 ‘뉴노멀’로 자리 잡을 정도로 자영업 생태계도 쪼그라들고 있다. 2분기 기준 자영업자는 566만8000명으로 전체 취업자 수(2883만9000명)에서 19.65%를 차지했다. 지난해 4분기 19.89%, 올해 1분기 19.74%에 이어 역대 최저 기록을 분기마다 갈아치우고 있다. 자영업자 비중이 20년 전에는 27%가 넘었던 점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이다.

사실 자영업자 비중은 경제가 고도화할수록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한국의 자영업자 비중이 미국(6.6%)·독일(8.7%)·일본(9.6%) 등 주요 선진국의 2~3배 수준임을 고려하면 앞으로 비중은 더 내려갈 것이다. 문제는 양질의 임금 일자리가 많아져 비롯되는 긍정적인 감소세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6월 9일 서울 시내 한 폐업 상점에 각종 고지서가 쌓여 있다. 연합뉴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부담,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임대료 부담으로 수익성은 악화한 지 오래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영업제한과 소비침체는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이후 각종 재룟값 상승이 장사를 더 어렵게 했고, 물가를 잡으려 올린 금리는 빚으로 버티던 이들을 벼랑으로 내몰았다. 자영업자 입장에선 매출과 비용 모두 곤란한 상황에 부닥치게 된 셈이다.

자영업의 위기는 자영업자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근로 인구 중 자영업자의 비중이 높은 한국 경제의 특성상 자영업의 위기는 경기 침체의 결과인 동시에 원인이 된다. ‘내수 부진→자영업자 감소→소비·고용 타격→ 내수 부진’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다. 지금은 원리금 상환 유예와 만기 연장 등으로 ‘인공호흡기’를 달아줬지만, 자칫 연체가 치솟는다면 금융권의 건전성도 위협할 수 있다.

물론 정부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그간 어느 정부나 다양한 자영업 지원 정책을 쏟아냈다. 현 정부도 소상공인의 대출 부담을 덜어주고 전기료·배달비 등 고정비를 지원하는 25조원 규모의 지원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는 당장의 위기를 모면할 ‘시간 벌기’에 그칠 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서울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역동경제로 서민·중산층 시대 구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및 역동경제 로드맵 행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이 날 발표된 소상공인·자영업자 종합대책의 총 지원 규모는 약 25조원, 지원대상 인원은 최대 82만명가량에 달한다. 대통령실

따지고 보면 자영업 위기의 근저에는 구조적 문제가 깔려있다. 한국은 준비 없이 창업에 뛰어든 생계형 자영업자가 많다. 기술 기반의 창업보다 음식·숙박업 비중이 커 경기에 쉽게 흔들린다. 탕후루가 뜬다고 1년 사이 1000곳이 넘는 탕후루 가게가 생기고, 이제 인기가 시들해지자 줄폐업 위기에 처한 현실은 아무리 봐도 자연스럽지 않다.

구조적 위기는 구조적 처방으로 대응해야 한다. 자영업 감소가 자연스러운 산업 구조조정의 결과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 지금은 위기지만 앞으로 사업을 잘 꾸려갈 곳이라면 단순 지원보다는 경쟁력 제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경영 효율화를 돕는 식이다. 생계형 자영업자에겐 안전망을 제공해야겠지만, 무분별한 탕감 같은 도덕적 해이를 부르는 조치는 경계해야 한다. 출구전략도 필요하다. 경쟁력이 떨어진 사업자는 점포 정리와 채무 재조정을 지원하고, 새로운 일자리로 옮길 수 있도록 재교육·구직 프로그램을 가동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묻지마 창업’을 막기 위해선 기업이 더 많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도록 정치·사회적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손해용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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