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호의 법과 삶] 내 다리는 내 것이다
7살 딸의 발가락뼈에 결핵성 농양이 생겨 발가락을 절단하였으나 발목까지 전염되었다. 아버지는 자연요법 치료를 주장하며 발목 절단을 반대했으나, 의사는 그대로 둘 경우 패혈증으로 악화될 수 있다고 판단해 발목 절단 수술을 했다. 다행히 잘 회복되었다. 아버지는 “딸에게 고의로 상해를 가했다”며 의사를 고소했다. 의사는 당시 의료수준에 부합하는 수술이었다고 항변했으나, 법원은 “치료 목적이라도 고의로 신체에 상해를 가한 의사는 위법성이 있어 형법상 상해죄의 적용을 받는다”며 유죄를 선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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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체에 대한 결정권은 환자권리
헌법과 법률에 설명 의무 규정
설명 듣고 부족하면 질문해야
」
1894년 독일 제국법원의 판결이다. ‘의학적 적응성이 있는 치료라도 환자의 승낙을 받아야 적법하다’는 세계 최초의 판결이었다. 이는 환자의 시각에서 의료를 바라보는 전환점이 되었다. 원시시대부터 죽음 앞에 놓인 환자는 가장 취약한 존재여서 인권은 생각조차 못했다. 환자는 그저 보호받아야만 하는 수혜의 대상이었다. 전문지식과 경험을 가진 의사가 치료방법과 시기를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수동적 객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위 판결로 의료를 바라보는 시각이 공급자인 의사에서 소비자인 환자로 바뀌었다. 1, 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여자, 유색인종, 환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의 인권이 신장되면서 ‘설명의무 이론’으로 발전되었다. 초기 고의행위로 여겨지던 설명의무 위반 행위는 현재 과실행위로 가볍게 책임을 묻고 있다.
우리 헌법 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보건의료기본법 12조는 “모든 국민은 충분한 설명을 들은 후 이에 관한 동의 여부를 결정할 권리를 가진다”고 돼 있다. 의료법 24조의 2는 “의사 등은 환자에게 설명하고 서면으로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우리 대법원도 1979년부터 설명의무 책임을 인정하고, 환자의 권리를 보장해 왔다.
대법원은 “의료행위에 따르는 후유증이나 부작용이 전형적으로 발생하는 위험이거나 회복할 수 없는 중대한 것인 경우에는 가능성이 희소하더라도 설명의 대상이 된다”고 판시했다. 아무리 낮은 확률이라도 발생할 수 있다면 그 위험을 고지하도록 하고 있다. 이때 의사는 환자 스스로 숙고하거나 가족 등과 상의한 후 동의를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
일부 임상현장에서 인쇄된 수술동의서에 형식적으로 사인받는 데 그쳐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백내장 수술 후 안내 출혈로 사망한 사건에 대해 법원은 “수술 시행 부위, 과정, 방법과 후유증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한 후 동의를 받아야 하고, 기왕 병력인 뇌경색을 고려할 때 수술의 위험성 및 부작용에 관하여 더욱 상세히 설명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다하지 아니함으로써 선택권이 침해되었다”고 하여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다. 중증 암 환자의 상급병원 전원 필요성을 설명하지 않은 사건에 대해서도 법원은 “적절히 치료할 경우 90% 정도에서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데, 전원 필요성을 설명하지 않은 과실로 치료 기회를 놓쳐 사망하였다”고 하여 검사에 따른 설명의무위반 책임도 인정하였다. 법원은 특히 미용성형 수술사고에 대해 “미용성형 수술은 외모상 개인적 심미적 만족감을 얻거나 증대할 목적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긴급성이나 불가피성이 매우 약한 특징이 있다. 환자의 성별, 직업 등에 따라 시술의 내용과 필요성, 위험성을 충분히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하면서 정신적 위자료뿐만 아니라 재산적 손해까지도 인정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모든 의료행위 전에 설명하여야 하지만 응급상황에서는 설명의무가 면제된다. 환자의 병상이 급박하거나 중대하여 즉각적으로 응급의료를 실행하지 않으면 사망 또는 심각한 건강 손상의 위험이 있을 때는 우선 응급처치를 하여야 한다. 그런데도 일부 의사는 반드시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오해한 나머지 설명에 시간을 허비하다 실기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도 ‘설명의무’ 규정을 위반한 것이 된다.
의사의 설명의무는 상대적으로 환자에게는 설명을 들을 권리다. 의료계에서는 설명 여부와 상관없이 어차피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의사에게 불필요한 부담만 준다고 불평하기도 한다. 환자를 설득하고 조언하여 자기결정권을 보호하기보다는 설명의무를 게을리했다는 책임을 면하기 위해 환자의 서명을 받는 데만 신경 쓰기도 한다.
환자가 치료 주체로서 인격권이 보호받을 때 의료인의 존재가치도 높아진다. 설명의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환자는 먼저 설명을 요구하고, 부족하면 반복 질문을 통해 충분히 이해한 후 자기 결정을 하는 것이 권리라는 인식부터 가져야 한다. 환자가 부담스러워 설명을 요구하지 못한다면 장애를 입고 나서 뒤늦게 후회하게 된다. 내 몸은 내 것이다.
신현호 법률사무소 해울 대표변호사·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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