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옥의 세계경제전망] 첨단산업 위주로 고도화 추구…미·중 대결 심화는 부담
‘고품질 발전’ 내건 중국 경제 전략 방향은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중전회) 세 번째 회의인 3중 전회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는 건 중국 경제의 중장기 로드맵을 제시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중앙위원회는 중국 공산당의 핵심 조직이다. 총서기와 상무위원, 정치국 위원도 모두 중앙위원회 위원이다. 중앙위원회는 5년마다 열리는 전국대표대회(당 대회) 휴회 기간 중 중국 공산당의 주요 정책과 국가 정책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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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진국 함정’에 고속 성장 한계
무역 갈등과 보호무역도 걸림돌
3중전회, ‘신품질 생산력’ 강조
기술 자립·첨단 기술 육성 천명
경기 둔화 우려에 지속성 의문
미국의 기술 봉쇄 격화할 수도
」
중전회는 다음번 당 대회가 열릴 때까지 5년 동안 총 7번 개최된다. 일반적으로 1중전회에서는 새로운 공산당 지도부를 꾸리고, 2중전회에서는 5년간 국가와 정부 운영을 책임질 인사 문제를 처리한다. 3중전회는 경제 등을 포함한 국가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개혁회의’의 성격을 가진다. 덩샤오핑이 추진한 개혁·개방으로의 노선 전환을 공식 선포한 것이 바로 1978년 11기 3중전회다. 중국이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도약할 역사적 변곡점이 됐다. 3중전회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중속 성장 접어든 ‘세계의 공장’ 중국
중국 경제의 청사진을 그리는 3중전회에서 독자적 발전 모델의 핵심으로 꼽은 ‘고품질 발전’은 시진핑 시대의 발전 전략으로, 2017년 제19차 당 대회에서 처음 등장했다. 개념은 다소 모호하다. 첨단 산업이 주도하는 경제 구조와 국가 안보와 국민 삶의 질 향상 등을 포괄하지만, 구체적인 정의가 있는 건 아니다. 첨단 기술과 같은 다른 생산요소가 생산력의 발전을 이뤄야 한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그런 만큼 느리더라도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을 용인하고, 첨단 산업이 이끄는 산업 고도화로 기술 자립을 이루겠다는 의미로 시장은 해석하고 있다.
중국이 경제 성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인 ‘고품질 발전’으로 거함의 기수를 트는 건 ‘중진국 함정’을 피하기 위해서다. 한때 10%를 웃돌던 성장률이 4~5%대로 떨어지는 등 중국 경제는 고속 성장에서 중속 성장으로의 구조적 전환에 직면했다. 값싼 대규모 노동력을 활용해 ‘세계의 공장’으로 이뤄낸 성장 모델이 한계에 다다르고, 미·중 무역갈등과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공급망 대란 등의 거센 파고에 맞서기 위해서는 질적 성장의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고품질 발전’은 미국과의 무역 갈등과 기술 봉쇄를 벗어나기 위한 포석이기도 하다.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업체를 블랙리스트에 올리거나 동맹국에도 중국 내 첨단 반도체 설비 반입을 자제시키는 등 중국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고 있다. 반도체 부문의 경우 핵심 기술에 대한 해외 의존도가 높은 데다 자급률도 높지 않은 상태다. 게다가 오는 11월 치러질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세론’이 힘을 얻는 상황에서 고관세 등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공세는 더욱 거세질 수 있다. 블룸버그는 “(고품질 발전 전략이라는) 모호한 슬로건은 중국이 미국의 무역 규제에 대한 회복력을 가질 수 있도록 첨단 기술 기반 사회를 건설하려는 열망을 나타낸다”고 지적했다.
중국, 첨단 기술 대대적 투자 예고
대외 여건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직면한 어려움도 ‘고품질 발전’으로 전환을 위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부동산 침체와 내수 부진, 막대한 지방 부채 등이 경제를 짓누르며 경기 침체 우려까지 커지고 있다. 3중전회 개막일 전날인 지난 15일 발표된 중국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4.7%였다. 시장 전망치(5.1%)를 밑돌았다. 내수 개선을 위한 이구환신(以舊換新·자동차와 가전제품 교체 시 정부 보조금 지급) 정책과 증시 부양을 위한 중국판 밸류업 프로그램인 ‘신국9조’의 효과도 미미했던 셈이다. 이 때문에 지난 3월 양회에서 밝힌 올해 성장률 목표치(5% 안팎)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왔다.
하반기에는 성장 속도가 더 느려질 것이란 전망도 이어지고 있다. 내수 부진 등으로 성장 동력이 떨어지는 데다 지방 부채가 성장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분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중국 지방정부 부채가 최대 101조 위안(약 1경9179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지난해 말 기준 중국 지방 정부의 공식부채(40조7000억 위안)에 장부상에 잡히지 않는 ‘숨겨진 빚’인 지방 정부의 자금조달 특수법인(LGFV) 부채까지 더한 것이다.
이런 상황 속 ‘고품질 발전’을 위한 질적 전환의 엔진은 ‘신품질 생산력’을 통한 기술 자립 역량 제고와 인재 육성이다. ‘신품질 생산력’은 시진핑 주석이 지난해 9월 하얼빈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처음 언급한 개념으로 자원과 인력을 대량 투입해 성장을 이뤘던 기존 방식에서 탈피해 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생산력을 극적으로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등 첨단 산업의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 정부는 첨단 기술과 제조업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예고했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상반기 중국의 첨단기술 제조업 투자는 10.1% 늘면서 고정자산투자 증가율(3.9%)을 6.2%포인트 웃돌았다. 그 결과 첨단기술 제조업 생산 증가율(8.7%)은 전체 산업생산 증가율(6.0%)을 상회했다. 이런 흐름이 이어지면 경제에서 차지하는 첨단 산업 비중도 높아질 전망이다. 블룸버그는 중국의 GDP 대비 첨단산업 비중도 2018년 11%에서 2026년 23%로 급등하며, 향후 성장 주력 부문이 부동산에서 첨단 산업으로 이동할 것으로 예상했다. 같은 기간 부동산 부분 비중은 24%에서 16%로 줄어들 전망이다.
기술 자립으로 성장 돌파구 모색
중국 정부는 ‘고품질 발전’을 위한 인재 확보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고품질 발전’에 드라이브를 거는 중국이 외국 과학자 유치를 위해 영주권 제공을 포함해 각종 혜택을 주는 그린카드 발급을 검토하고 있다”고 23일 보도했다. 선진 기술을 받아들이기 위한 인재 영입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백관열 LS증권 연구원은 “소비와 부동산과 같은 전통적인 방식의 경기 부양보다 기술 자립 및 첨단 산업 육성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돌파구를 마련해 대내외 리스크를 극복하겠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중국이 ‘고품질 발전’을 내세우며 산업구조 개선과 기술 자립을 통한 경제 체질 개선에 나서는 건 산업 발전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럼에도 ‘고품질 발전’ 전략과 ‘신품질 생산력’이 중국 정부의 한계를 보여준다는 지적도 있다. 켄 청 미즈호은행 아시아 외환 수석 전략가는 “‘고품질 발전’ 전략은 성장의 양을 촉진하기 위한 확장적 정책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3중전회에서 부동산 관련 두드러진 메시지는 찾을 수 없었다. 백 연구원은 “재고 소진을 위한 지속적인 부동산 정책 마련은 예고했지만, 과거 중국 부동산의 ‘고(高) 부채 고 레버리지’ 성장 모델을 근절할 것을 강조했다”고 지적했다.
첨단산업 집중 투자, 침체 부를 수도
중국 정부가 흔들림 없이 ‘고품질 발전’ 전략을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있다. 한정된 자원을 첨단산업 육성에 집중 투입하면 경기 둔화를 초래할 위험도 있다. 경기 하방 압력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부양책의 부재는 경기 침체를 가속화할 수 있다. 실제로 3중전회에서 부동산과 소비 개선을 위한 부양책이 없었던 탓에 시장의 실망감은 커졌다. 경기 부양에 대한 기대감을 잃은 중국 증시는 연일 하락세를 이어갔다.
결국 중국인민은행은 지난 22일 사실상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대출우대금리(LPR)를 전격 인하했다. 5년물 LPR을 연 3.85%로, 1년물 LPR을 3.35%로 0.1%포인트씩 내렸다. 실제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란 지적에도, 중국 정부의 경기 부양 의지를 보여준 것이란 게 시장의 평가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지난 22일 보고서에서 “3중전회에서 언급한 개혁도 금리 인하도 시장이 원하는 ‘빅뱅(big bang)’은 아니지만 이 둘이 함께 이뤄졌다는 건 긴급함을 보여주는 신호”라며 “정책과 금리 발표의 조합은 ‘리틀 뱅(little bang)’이다”라고 했다.
첨단산업 육성과 강화를 추구하는 중국의 ‘고품질 발전’이 미·중 갈등을 더 격화할 수 있고, 그 불똥이 한국에도 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제금융센터는 “반도체와 전기차 등 첨단제품을 둘러싼 경합이 치열해진 가운데 미국과의 강대강 구도가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트럼프의 당선 확률이 크게 높아진 가운데 고율의 관세 등 대중 강경책과 그에 대한 중국의 맞대응에 따른 연쇄 피해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하현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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